지난 2010년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자국의 다문화정책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선언했다. 메르켈 총리는 이민자들의 다양성을 인정하는 다문화정책은 실패했다며 독일 사회와의 통합을 원한다면 이민자들도 독일어를 배워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주민들, 특히 아랍계 이주민들과의 갈등이 도를 넘어서자 칼을 빼든 것이다. 

  독일의 다문화정책이 실패한 원인은 돈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했기 때문이다. 그 유명한 자녀양육수당(kindergeld)이 발목을 잡았다. 아이만 있으면 수당을 주는 이 정책은 이주민 다자녀의 생산만을 중요시하다 독일인과 이들 간의 종교적 갈등과 폭동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서울시가 높아지는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청년수당'을 지급하고 있다. 사회참여 의지가 있는 미취업 청년들에게 최소 사회참여활동비로 현금을 지급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모든 청년에게 주는 것이 아니고 서울에서 1년 이상 거주하고 있는 만 19세부터 29세까지의 미취업 청년 3000명에게만 혜택이 돌아간다. 각 지자체도 이와 비슷한 프로그램을 실시하고 있다. 

  그러나 청년층 실업률은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고 취업준비생도 역대 최대를 기록하는 등 고용의 질은 여전히 회복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청년수당’에 이어 ‘아동수당’도 지급될 모양이다. 새 정부가 5세 이하 아동들을 대상으로 한 달에 10만원씩 지급하는 '아동수당'을 내년 7월부터 실시하기로 했다. 0~5세 아동에게 월 10만원 지급을 시작으로 단계적으로 이를 인상할 계획도 세워놓았다. 인구 감소를 방지하고 부모의 육아 부담을 줄이기 위함이라고 한다. 국가가 돈을 줄 테니 아이 많이 낳으라는 말이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아동수당’이 정책의 가시성이나 국민인지도 차원에서 매력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볼 때 출산율 제고의 효과적인 정책이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한다. 

   첫째, “많은 국가들이 ‘아동수당’을 이용하고 있다고 정부는 밝히고 있지만 이는 출산율 제고정책 수단이 아니라 아동빈곤을 퇴치하자는 것이 주목적”이라는 것이 이들의 주장이다. 둘째, “모든 아동에게 보편적인 ‘아동수당’을 제공할 경우 자녀출산에 대한 태도나 여건이 서로 다른 가구에게 무차별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것으로, 출산율 제고정책의 효율성 차원에서는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다. 셋째, “현금으로 받는 ‘아동수당’이 부모에게는 좋을지 모르지만 아동의 복지에 쓰인다는 보장이 없다”고 우려한다. 
  
  이들은 저출산 문제를 ‘아동수당’으로 해결할 것이 아니라 저출산 문제의 원인부터 점검하는 것이 순서라고 강조한다. 가구소득의 증가나 여성임금의 증가,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 증가, 청년층의 고용불안과 이로 인한 결혼지연, 결혼가치관의 변화와 불임의 증가 등이 저출산의 원인들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획기적인 일ㆍ가정 양립정책을 통해 육아와 경제활동참여가 병행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정책이 절실하다고 지적한다. 다시 말해, 돈 보다는 아이를 마음 놓고 낳을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미국 하버드대학의 마이클 샌델 정치철학 교수는 그의 저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에서 스위스 핵페기물 케이스를 들면서 돈으로 무엇이든 해결하려는 시장 매커니즘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자기 마을에 핵페기물을 버려도 좋다고 한 스위스의 한 산악 주민들이 그 대가로 돈을 주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는 압도적으로 반대했다. 주민들은 “우리는 뇌물을 받고 싶지 않다. 돈을 받으니 뇌물같이 생각됐다”고 답했다. 시민의식을 갉아먹는 시장주의에 대한 반발이었다. 
  
   샌델 교수는 또 미국에서 소수민족 학생들의 학업증진을 위해 A학점을 받는 학생에게 50달러를, B학점은 35달러를 각각 지급하는 실험이 있었으며, 댈라스에서는 초등학생에게 책 한 권을 일을 때마다 2달러를 주는 프로그램이 실시되기도 하는 등 지난 30년 간 우리 사회에서 돈으로 살 수 없는 것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고 개탄했다.
  
   TV드라마 ‘정도전’을 보면, 중앙 정계에 진출한 이성계가 기근 문제를 놓고 논의를 하고 있던 도당 회의에서 구휼미를 풀자고 했다가 이인임으로부터 다음과 같은 핀잔을 듣는 장면이 나온다. "산과 들로 먹거리를 찾아야할 백성들이 죽치고 앉아 대궐만 쳐다봅니다. 공짜도 반복되면 권리가 됩니다. 처음엔 고마워 하지만 두 번 째는 당연히 여기게 되고 세 번 째에 이르면 불만을 터뜨리게 됩니다. 그리 되면 고려는 망합니다.”
  
   또 노자는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사람에게 물고기를 주는 것은 그에게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주는 것만 못하니라(授人以魚, 不如授人以漁)." 
  
 돈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고 할 수 없는 게 있다. 어련히 알아서 잘 하겠지만 문재인 정부 복지정책 입안자들이 한 번 쯤은 새겨봄직한 말들이다. 다음 세대에 짐을 떠넘기지 않으려면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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