地選 전 ‘손익분기점’ 찾기… ‘朴 출당’ 두고 ‘주판알 튕기기’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탈(脫) 박근혜’를 놓고 자유한국당 내 백가쟁명이 한창이다. 홍준표 대표가 ‘박근혜 출당→바른정당 흡수통합→지방선거 승리’ 시나리오를 들고 나오면서부터다. 그런데 홍 대표의 야심 찬 시나리오가 시작부터 ‘삐걱’대고 있다. ‘박근혜 출당’을 주도해야 할 혁신위원회 내부의 입장이 모이지 않으면 서다. 혁신위원 10명 중 6명이 박 대통령 출당에 반대하고 있다고 한다. 심지어 류석춘 혁신위원장도 이들 6명의 입장과 다르지 않다고 한다. 친박 중진 A 의원이 물밑 작업에 나선 결과물이라는 전언이다. 지선(地選)이 9개월 앞으로 다가왔다.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당내 불협화음으로 혁신은커녕 제자리걸음만 해온 자유한국당이다. ‘박근혜 프레임’이 지선 전까지 한 번은 털고 가야 할 숙제라는 얘기다. 끝까지 안고 갈 것인지, 아니면 포기할 것인지. 어느 쪽이 무너진 보수의 아성을 회복하는 길일지 조속히 판단을 내려야 한다. ‘TK 수성’과 ‘보수 대통합’, 그리고 ‘지선 승리’로 가는 길은 어느 쪽일까? 정치권의 이목이 집중되는 대목이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전면전’ 부담스런 親朴, 혁신위 6명 ‘최후방 수비수’·유기준 ‘원톱 공격수’ 기용
- 이혜훈 뇌물 수수 의혹, 바른정당 내홍 ‘격화’...  복당파 도미노 탈당?


자유한국당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출당 여부를 조만간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당 혁신위 관계자는 지난달 30일 “박 전 대통령 출당 문제가 공론화된 상황에서 혁신위가 당초 정해 놓은 일정을 고집할 수만은 없다”며 “최대한 빨리 신중하게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혁신위 6명 포섭한 親朴
“15%마저도 등 돌릴 것”


그러나 당내 복수의 관계자들에 따르면 혁신위 내부가 다양한 의견으로 엇갈려 출당 논의에 힘이 실리고 있지 않다고 한다. 10명의 혁신위원 가운데 4명은 홍 대표와 뜻을 같이하고 있는 반면 나머지 6명은 “1심 판결이라도 지켜보고 결정하자”며 박 대통령 출당 자체에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해당 관계자에 따르면 류석춘 혁신위원장 역시 이들과 대동소이한 입장을 견지하고 있다. ‘전면전’은 부담스러울 수밖에 없는 친박계가 혁신위원 가운데 일부를 포섭해 ‘방패’로 이용하고 있는 모양새다. 한국당 내부 상황에 정통한 한 관계자에 따르면 친박 중진 A 의원이 이들 6명의 혁신위원과 류 위원장 포섭에 적극적으로 나선 결과물이라고 한다.

아울러 친박계는 이들 6명을 최후방 ‘수비수’로 기용함과 동시에 같은 친박계지만 운신의 폭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운 유기준 자유한국당 의원을 ‘원톱 공격수’로 활용하고 있다. 유 의원은 지난달 2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1심 판결도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갑자기 출당 문제를 본격적으로 거론한다면 그나마 우리를 지지하던 15%마저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사실을 유념해야 한다”면서 “집토끼가 항상 집에만 있으리라고 안심할 수는 없다”고 경고했다.

그런데 정작 TK 지지율은 “그나마 우리를 지지하던 15%도 등을 돌릴 수 있다”는 유 의원의 말과는 정반대의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여론조사 전문기관 리얼미터가 CBS 의뢰로 지난달 21부터 25일까지 5일간 실시해 28일 공개한 정당지지도에 따르면 TK에서의 한국당 지지율은 지난주(21일) 25%에서 26.3%로 1.3%포인트 올랐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를 참조)

지난 대선에서 탄핵 찬성파가 주축이 된 바른정당에 ‘배신자 낙인’을 찍은 TK다. 그런데 홍 대표의 박 전 대통령 출당 발언 이후에 TK에서 오히려 자유한국당의 지지율이 오르는 뜻밖의 흐름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TK 지지율 상승? 유동층
이동일 뿐, 속단 ‘안 돼’


박 전 대통령 출당에 적극적인 친홍계 의원들은 이번 여론조사 결과에 잔뜩 고무된 분위기다. “박근혜 없는 한국당이 TK에서 바른정당과 다를 게 뭐냐”는 친박계의 주장에 맞설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기세를 탄 친홍계는 지난달 24~25일 열린 한국당 연찬회에서 친박계가 박 전 대통령 탈당 문제와 관련해 ‘침묵’한 것 역시 위의 현상과 같은 맥락에서 해석이 가능하다고 주장한다.

당초 한국당 연찬회에서 인적 쇄신 문제가 분수령을 맞을 것이란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소수 원위원장만 비공개 자리에서 언급했을 뿐, 친박계도 공개석상에서의 반발을 자제했다. 물론 홍 대표의 당 장악력이 거세진 탓이 크게 작용했기도 하나, 보수 전반의 분위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 관계자들은 홍 대표가 지선을 9개월여 남긴 시점에 서둘러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언급한 것 역시 이 같은 보수 진영의 분위기를 미리 인지했던 것으로 관측한다. 박 전 대통령 출당을 언급하더라도 TK지역 역풍을 맞지 않을 정도로 TK 여론이 무르익었다는 판단을 홍 대표가 내렸고 적중했다는 것이다.

반면 친박계를 비롯해 박 전 대통령 출당에 반대하는 쪽에선 해당 여론조사 결과에 크게 의미를 두지 않는 모습이다. 1.3% 포인트 정도는 문재인 정부의 ‘포퓰리즘 정책’에 실망한 일부 유동층의 이동으로도 충분히 설명 가능한 수치라는 것이다.

이들이 박 전 대통령을 안고 가야만 하는 근거로 세 가지를 제시한다. 먼저 박 전 대통령 탄핵 직후에 치러진 지난 대선에서조차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는 6.2% 득표율밖에 기록하지 못한 반면 홍준표 후보는 24.0%, 안철수 후보는 21.4%를 기록한 점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

홍 후보가 득표한 24.0%는 박 전 대통령 고정 지지층으로 제쳐두고서라도 기존 보수층 가운데 박 전 대통령에 실망해 한국당 지지를 철회한 지지층이 이동한 곳이 유승민 후보가 아닌 안철수 후보였다고 해석한다.

만약 기존의 보수층이 박 전 대통령에 진심으로 분노했고 탄핵이 정당했다고 생각했다면 당연히 탄핵 찬성파가 주축인 바른정당의 유승민 후보에게 지지를 보내야 했으나 그러지 않았다는 것에 근거를 뒀다.

이들이 두 번째로 드는 근거도 이와 비슷한 맥락이다. 만약 위에서 언급한 여론조사대로 TK 정서가 박 전 대통령 출당 쪽으로 기울었다면, 자연스레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바른정당의 TK 지지율이 올라가야 함에도 전혀 그러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이런 모든 상황을 종합했을 때, 기존 보수층 일부가 한국당을 떠나 있음에도 지난 대선과 TK 여론조사에서 바른정당이 힘을 받지 못하고 있는 현 상황은 이들이 박 전 대통령에게 연민을 가지고 있고 언제든 제집으로 돌아올 여지가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이 박 전 대통령 출당을 강행한다면 이들에겐 언제든지 돌아갈 수 있었던 편안한 집이 사라져 버리게 되는 것이라고 이들은 강변한다.

마지막으로 친박계는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에 대한 입장을 여러 번 번복한 점을 들어 자칫 배신의 프레임이 바른정당에 이어 홍 대표 자신에게도 씌워질 수 있음을 경고한다. 실제로 홍 대표는 대선 후보 시절 박 전 대통령을 ‘향단이’로 깎아내리더니 대선 직전에는 “시체에 칼을 꽂아선 안 된다”며 보수층 결집에 박 전 대통령을 이용했다.

그리고 얼마 뒤 당 대표에 오른 직후엔 돌연 박 전 대통령 출당 카드를 들고 나왔다. 이처럼 홍 대표가 박 전 대통령을 상황에 따라 이용하는 모습으로 비치면서 기존 TK 지지층이 홍 대표에게 바른정당에 새겨진 ‘배신자 낙인’을 똑같이 새길 수도 있다는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만약 이 시점에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보수 중도 통합론’ 카드를 들고 나오면서 보수 진영의 ‘허점’을 공략한다면, 기존 15%의 지지층을 국민의당에 빼앗길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제대로’ 불붙은
‘보수 대통합론’


한편 이 같은 한국당 내 박 전 대통령을 둘러싼 갑론을박에도 불구하고 홍 대표의 박 전 대통령 출당 카드가 보수 대통합에 군불을 땐 것만큼은 분명한 사실이라고 정치권은 말한다. 아울러 이는 바른정당과 국민의당의 정책 연대가 정치 연대로 발전할 가능성도 사전에 차단하는 일석이조의 효과를 가져왔다고 평가한다. 

당초 정치권은 정책연대를 처음 꺼낸 국민의당의 안철수 대표가 지난달 27일 당 대표로 선출되자 두 정당 간 정책연대가 한층 강화될 것이라고 관측했다.

비록 안 대표가 다른 정당과의 연대는 “한가한 이야기”라며 선을 긋고는 있으나 언제든 중도를 표방하고 있는 두 정당의 연대 불씨는 살아날 수 있다고 평가했다. 지지율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는 두 정당의 연대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런 상황에서 홍 대표는 박 전 대통령 출당 카드를 밀어붙였고, 동시에 바른정당에는 끊임없는 ‘러브콜’을 보냈다. 그 결과 드디어 바른정당 내부에서 동요가 일어났다. 비록 이혜훈 대표와 이 대표 측근 의원들은 여전히 자강론을 고수하며 한국당과의 연대 또는 통합을 논할 시기가 아니라는 입장이지만 주호영 원내대표를 비롯한 일부 의원은 보수통합에 무게를 싣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이혜훈 바른정당 대표가 사업가 A씨로부터 명품 가방과 시계를 포함해 수천만 원대 금품을 받았다는 YTN의 보도가 나오자 이 대표 측근 의원들마저 보수 통합론에 동요하기 시작했다는 내부 전언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