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대 38조 원짜리 임금 고지서 발부 재계는 ‘속앓이’ 중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6년 동안 진행된 기아자동자 노동조합 통상임금 1심 재판 결과, 서울중앙지방법원이 정기상여금은 통상임금으로 인정해야 된다고 판결했다. 상급심 판단이 남았지만, 1심 판결만으로도 자동차 업계를 포함한 재계 전체가 ‘최대 38조 원짜리 임금 고지서’ 후폭풍에 휘말린 모습이다. 국내 기업뿐만 아니라, 인건비 부담이 높아진 해외 기업들의 국내 투자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높다.

무너진 ‘신의칙’, 과연 사용자가 감당할 수 있을까
인건비 올라가는 소리에 외국 기업 엑소더스 우려


기아차 통상임금 소송은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해 달라는 골자의 소송이다. 통상임금이란 연장·야간·휴일근로수당이나 연차휴가 미사용 수당 등 각종 수당을 계산할 때 쓰는 임금 개념이다.

근로기준법 제56조에는 법정 근로시간(1일 8시간, 1주 40시간)을 초과해 연장·야간·휴일근로를 한 노동자에게 사용자가 통상임금의 1.5배를 지급하도록 명시돼 있다. 노동자들은 통상임금에서 정기상여금을 빼고 계산해 수당 등을 지급하는 것은 잘못됐다는 주장이다.

기아차의 경우 두 달에 한 번 정기상여금(기본급의 750% )이 나오는데, 이제까지 통상임금을 계산할 때 이 금액을 포함하지 않았다. 이와 관련해 법원이 정기상여금, 중식비, 일비 가운데 정기상여금과 중식비는 통상임금에 해당한다고 인정한 것이다.

또 해당 원금 3126억 원에 지연이자 1097억 등 총 4223억 원을 기아차 노조에게 지급하라고 판결했다. 기아차는 추가 수당 요구가 회사의 경영에 어려움을 초래해 ‘신의성실의 원칙’에 위반된다고 주장했지만 이마저도 인정되지 않았다.

신의칙이란 ‘권리 행사와 의무 이행은 신의를 좇아 성실히 이행하여야 한다’는 원칙이다.

혼란과 공포 속 산업계

재판부의 1심 판결로 인한 기아차의 부담액은 1조 원 가량으로 추산되며, 올해 3분기 적자가 불가피할 것이란 전망이 주를 이루고 있다. 기아차는 판결 직후 항소하겠다는 의사를 밝혀 항소심에서도 노사 간 격론이 전망된다.

재계는 통상임금 판결이 산업 전반의 혼란을 야기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적게는 20조 원, 많게는 38조  원대에 이르는 추가 노동 비용이 발생해 사용자 측이 감당하기 힘들 수 있다는 예상이다.

또 법원이 통상임금은 물론 신의칙까지 기아자동차 노조의 손을 들어주는 취지의 판결을 내렸기 때문에 각 사업장에서 ‘일단 걸어보자’는 식의 묻지마 소송이 빈발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가 2013년 3월 내놓은 ‘통상임금 산정 범위 확대 시 경제적 영향 분석’ 보고서에 따르면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되면 기업이 부담할 추가 비용 추산 규모는 최대 38조5509억 원에 이른다.

과거 3년간 임금 소급분 24조8000억 원, 통상임금과 연동해 늘어나는 각종 수당(초과근로 수당 등)과 간접노동비용(퇴직금 등) 증가분 1년 치 8조8000억여 원, 퇴직급여 충당금 증가분 4조8800억여 원을 더한 금액이다.

2013년 5월 한국노동연구원도 통상임금 범위 확대에 따른 기업의 노동비용 증가액(과거 3년+향후 1년)을 최소 14조6000억 원에서 최대 21조9000억 원으로 계산했다. 통상임금에 고정상여금뿐 아니라 기타수당이 모두 포함되면 약 22조 원이라는 설명이다.

짙은 우려 속에 재계의 목소리는 간절하다. 현실과 너무 동떨어진 판결로 재계가 겪을 문제들이 너무 심각하다는 이야기다. 대기업뿐만 아니라 중소기업들도 임금 양극화 등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를 토로한다.

경영자총협회는 지난달 31일 논평을 내고 “정기상여금을 통상임금으로 인정하면서 신의칙을 적용하지 않은 점은 노사간 약속을 뒤집은 노조의 주장은 받아들면서, 합의를 신뢰하고 준수한 기업은 일방적인 부담과 손해를 감수하라는 것으로 허탈감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중기중앙회는 “중소·중견 부품업체와의 임금격차 확대로 대·중소기업 근로자간 임금 양극화가 더욱 심화될 수 있는데, 완성차업체에서 늘어난 인건비 부담을 협력업체로 전가할 수 있다”고 반발했다.

사방에서 들리는 호소들

특히 “자동차부품산업의 근간 업종인 도금, 도장, 열처리 등 뿌리산업 업계에 큰 타격이 예상된다”고 예상하면서 “ 통상임금에 대한 명확한 입법화와 법률의 균형성, 안정성 확보를 위해 정기상여금이나 식대 등이 포함되지 않는 최저임금 산입범위도 통상임금에 맞추어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국내 기업들의 투자와 채용, 외국 기업들의 경영 환경 등이 악화될 수 있다는 점도 재계의 지적 사항이다. 인건비 등 고정비가 상승할 경우 기업은 투자와 채용을 줄일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주한미국상공회의소(이하 암참)는 판결 전날 보도자료를 통해 “기업의 인건비 상승은 주한 외국 기업의 국내 투자 지속에도 큰 영향을 미칠 전망”이라고 주장했다. 또 암참은 “통상임금 관련 정책 역시 근로자·노동시장의 번영과 기업 경영의 불확실성 제거 및 기업 경쟁력 유지가 모두 고려된 균형 잡힌 결정이 돼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한편 통상임금 판결을 두고 유일하게 노사정이 공감하고 있는 부분은 노동자의 권익 향상과 사용자의 경쟁력 유지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법안을 마련해야 한다는 점이다. 현행 법규정의 통상임금 개념이 복잡하고 모호하기 때문에 판결도 자꾸 엇갈리고 있는 탓이다.

소모적인 노사 간 분쟁을 줄이기 위해 통상임금 관련 법 규정을 단순하고 명확하게 정해놔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노사가 통상임금 문제를 놓고 서로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새로운 대화와 타협의 계기로 삼아 더욱 발전적인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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