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도, 기업도, 노동자도 모두 반성해야 발전한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하루가 멀다 하고 드러나는 갑을 논란, 이루어진 적 없는 재벌개혁,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의 등장과 함께 수면 위로 떠오르고 있는 각종 가맹사업법 위반 행위, 여전히 보호받지 못하는 소상공인의 삶, 팍팍하기만 한 노동자들의 일상. 나열하자면 끝이 없는 경제, 산업, 노동 시장의 문제들이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어느 때보다 화두다. 이른바 민심으로 태어난 촛불정부의 시대, 해결되지 못한 채 남아있던 숙제의 답을 찾겠다는 움직임이 가시권에 들어온 모양새다. 하지만 경제 전반에 산적한 과제들은 아직도 명확한 해법이 나와 있지 않은 것이 현실이며, 또 최선의 방법을 결정하는 과정도 난제다. 일요서울은 일선 노동운동가들의 목소리를 통해 탁상공론이 아닌, 문제를 해결하는 가장 현실적인 답을 찾기 위해 [노동운동가 인터뷰 한국 노동자의 삶과 현실을 듣다]를 기획했다. 해답을 얻기 위한 조언과 충고, 갈 길이 먼 현실을 제시해 준 일곱 번째 노동운동가는 이규남 대한항공 조종사 노동조합 위원장이다.

현실과 동떨어진 법, 경영 윤리 저버린 기업들
노동자들은 끊임없이 공부하고 견제하는 역할


이규남 위원장은 현행 노동법이 현실과 맞지 않는 부분이 너무 많아 한계성이 있다고 지적한다. 또 자신이 걸어온 노동 운동 과정을 통해 봤을 때, 그동안 정부의 법 집행 의지가 부족했다고 판단했다.

“현행 노동법은 노동자들의 권한이 매우 제한적으로 설정돼 있다. 노동자들의 경영 참여는 고사하고, 경영과 관련된 조언조차 할 수 없다. 정당한 절차를 거친 파업조차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식’ 법령 해석으로 불법 파업으로 간주된다”

“이러한 문제는 정부의 노동 개혁 의지가 부족해 발생하지 않았나 싶다. 일례로 과거 부당노동행위의 유권해석은 대부분 친재벌적 성격을 보였다. 정부의 의지에 따라 노동자들의 권한은 충분히 높아질 수 있다”

또 정부가 고발자들에 대한 보호와 조사를 성실히 이행하지 않고 있어 일부 기업들이 노동자들을 무서워 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정부가 기업 내부를 고발하는 이들을 보호하지 못한다면 기업이 법을 무서워할 이유가 전혀 없다는 이야기다.

“지금까지 수도 없는 고발자들을 만나 왔다. 자신들이 위험에 처할 것을 알고 있지만, 기업과 공익을 위해 용기를 낸 사람들이다. 그런데 정부는 그런 이들에게 ‘증거를 가지고 오라’고 주문한다. 정황, 증언만으로는 수사가 진행되는 경우가 드물다”

“그 와중에 사용자들은 명예훼손 운운하면서 고발자를 압박한다. 명백한 부당 노동 행위지만, 증거가 없거나 부족하다면 당하고 있어야 한다. 고발자가 등장했을 때 정황만으로도 사용자를 의심해 볼 여지가 있다면 ‘고발자에 대한 보호와 사건 조사’가 있어야 한다”


결국 기업 내부의 고발자가 피해를 감수해야 하는 현실이 지속되면, 이를 자정하고자 하는 노력도 당연히 줄어들어 악순환만 계속된다는 주장이다. 다만 이규남 위원장은 노동 문제의 모든 책임을 정부 탓으로만 돌리지는 않았다.

그가 판단할 때 항공 산업을 비롯한 산업 전반을 망치고 있는 또 다른 이유는 대기업 총수 일가의 잘못된 경영 인식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대기업들 대부분이 비슷한 상황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누군가는 우리나라 대기업 경영 방식의 특징 중 한 가지로 오너 ‘중심’ 경영을 말한다. 하지만 우리나라 대기업들 중 상당수가 오너 ‘개인’ 경영이다. 의사 결정, 지휘 체계는 무너진 지 오래고 기업 회장님 한마디에 사업 방향이 변경되고 결정된다”

“일부 총수들은 자신들이 경영하는 기업을 통째로 ‘내 회사, 내 재산’으로 생각한다. 도덕적 주인의식이 아니라 기업 재산의 ‘사유화’를 말하는 것이다. 내 말이 허위 사실 유포라고 생각해도 괜찮고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당해도 상관없다. 그들은 기업을 사유화하고 있다”


또 이러한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노동자 중심, 일자리 중심 사업을 확장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기업들을 감시하기 위한 노동자들의 인식 개선 역시 우리나라 노동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다.

“쉽게 말해 기업들은 노동자들이 무섭지 않다. 자신들의 회사에 들어오고 싶어 줄서 있는 이들이 수천, 수만 명이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내 말 안 들을 거면 나가라, 어차피 사람 많다’는 것이다. 이러한 현상이 정부가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는 이유 중 하나다”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지만 노동자들도 항상 공부하고, 기업을 감시해야 한다. 회사가 무엇을 잘못하는지, 어떤 부분이 잘못인지를 파악하고 있어야 자신들의 권리도 찾아갈 수 있는 것이다. 여전히 정부도, 사용자도, 노동자도 갈 길이 멀기만 하다”


한편 이규남 위원장은 자신이 몸담고 있는 항공 산업 현장의 문제점들도 작심한 듯 비판했다. 잃어버린 항공종사자들의 파업권, 외국인 조종사 파견 문제, 조종사들 해외유출 현상, 조종사 노동시장 붕괴, 항공종사자 의견 반영 없는 제도 강행 문제 등이다.

“항공운수사업은 필수공익사업장으로 지정돼 파업권이 제한적이다. 현행 필수유지업무는 공익과 상관없이 항공운수사업장의 거의 모든 업무를 필수유지업무로 지정했다. 이로 인해 노동조합이 극도로 위축되고 노동시장이 심각하게 교란된 상황에 빠졌다”   

“벌써 항공 운수 노동자들의 처참한 노동 인권 유린 사건, 조종사 대거 해외 이탈과 같은 노동시장 붕괴, 안전 예산 축소와 항공 안전 후퇴, 노사분쟁의 장기화, 노사 자치질서 붕괴 등 심각한 폐해를 낳고 있다”


“정부가 올바른 항공 안전 행정을 펴기 위해서는 정책 수립 단계에서부터 항공 종사자들의 의견을 충분히 반영해야한다. 조종사 등 노동자들을 이해집단으로 간주해 버리고 제대로 의견을 반영하지 않아 안전을 저해하는 방향으로 정책이 변경되는 일들이 발생한다”

우리나라 기간산업 중 하나인 항공 산업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적해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언젠가 이규남 위원장의 바람처럼 정부와 항공사, 종사자들이 힘을 모아 항공 산업이 건강한 발전을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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