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심 공판서 김 양 “박 양이 폐·허벅지 먹으려고 했다”

[일요서울 | 신현호 기자] 지난달 29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이른바 ‘인천 초등생 살인사건’의 결심 공판이 열렸다. 이날 공범 박모(18)양의 공판이 먼저 이뤄졌고, 이어서 주범 김모(17)양의 공판이 열렸다. 박 양의 공판에는 김 양이 증인으로 출석해 눈길을 끌었다. 재판이 진행되면서 두 소녀가 저지른 범죄의 잔혹성 때문에 방청객은 여러 차례 술렁였다. 박 양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죄가 중하다’며 살인방조에서 살인으로 공소장을 변경했고, 김 양은 그동안 부인하던 ‘계획범죄’를 인정하는 등 재판장의 고개를 여러 번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살인방조 등의 혐의를 받는 박 양의 결심 공판에서 검찰은 살인방조를 ‘살인’으로 공소장 변경했다. 박 양의 죄질이 ‘살인 방조’를 적용하기엔 너무 나쁘다고 판단해서다.
 
이날 오후 2시 박 양의 공판에는 김 양이 증인으로 출석했다. 무표정한 얼굴로 들어온 김 양은 증인석에 섰다. 재판장이 김 양에게 “인적사항에 변동이 있느냐”고 묻자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었다는 듯 가만히 서 있다가, 재차 묻자 박 양 측 변호사를 한 번 쳐다본 뒤 고개를 저었다.
 
자신에게 불리한 질문이었는지 고민한 듯 보였다. 이후 김 양의 목소리는 들릴 듯 말 듯 작았지만 어투는 담담했다. 증인석에 앉은 김 양에게 검사의 질문이 이어졌다. 김 양은 증인으로 출석한 이유를 묻자 증인석에 놓인 마이크를 자신의 입 쪽으로 끌어당기며 “진실을 말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그동안 김 양과 박 양은 각각 다섯 차례의 공판을 거치며 공방을 벌였다. 처음에는 두 사람이 ‘계약연애’를 할 정도로 가까운 관계를 유지했지만, 지금은 완전히 적이 됐다. 김 양은 증언을 통해 박 양과 ‘강압에 의한 관계’였다며 거리를 뒀다.
 
김 양은 누가 먼저 연애를 하자고 했는지 묻는 질문에 “박 양이 먼저 제시했고 기간은 약 100일 정도로 잡았다. 하지만 따로 계약서가 있었던 건 아니다”라고 주장했다. 두 사람의 연애가 이번 재판에서 중요한 이유는 김 양의 ‘살인 동기’ 때문이다. 김 양은 박 양의 지시로 살인을 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지시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는 걸 입증하는 게 김 양으로서는 중요한 상황이다.
 
그동안 박 양은 ‘김 양이 먼저 사귀자고 했다’고 주장해왔다. 두 사람은 실제로 만나 입까지 맞췄는데, 공판에서는 누가 먼저 입맞춤을 시도했는지가 쟁점이 됐다. 김 양은 “내 키는 154㎝에 불과해 170㎝에 달하는 박 양에게 먼저 키스를 할 수 없다”고 주장했다. 김 양은 박 양이 어두운 곳으로 자신을 데리고 가 키스를 했고, 입술을 깨물자 화를 냈다고 했다.
 
김 양은 이날 두 사람 관계의 주도권을 박 양이 갖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자신은 ‘실험 도구였다’며 자신은 지시를 따를 수밖에 없었다고 박 양을 압박했다. 김 양은 당시에 박 양과의 관계가 멀어지는 게 두려웠다고 진술했다.
 
김 양은 “범행 전 박 양이 (범행) 계획을 잘하고 있는지 자주 물었고, 범행 장소와 대상, 처리방법 등을 계속 조언해줬다”고 주장했다. 특히 범행 대상을 초등생 여아로 삼은 데 대해 ‘자신의 키가 작고 힘이 약하기 때문에 성인은 어렵고 초등학생 여성을 대상으로 삼으라는 말도 했다’고 했다. 아파트, 학원 옥상 등 시신 유기 장소도 선정했다. 피의자 특정이 어렵기 때문에 걸려도 괜찮다는 말까지 했다고 주장했다. 김 양이 진술을 이어가는 중 박 양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움직이지 않았다.
 
김 양은 공판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수차례 진술을 번복했다. 이번 결심 공판에서도 그동안 ‘심신미약 상태로 우발적 범죄였다’고 주장하던 것과 달리 ‘계획된 범죄였다’고 말을 바꿨다. 충격적인 증언도 나왔다. 김 양은 피해자 A양을 살해한 뒤 시신을 훼손한 과정을 자세하게 설명했다.
 
그는 범행 당시 손가락과 폐 일부, 허벅지 일부를 손바닥 크기로 잘라 박 양에게 전달했다. 그 이유에 대해 김 양은 박 양의 지시에 따른 것이며 “손가락은 (박 양이) 소장하기 위해서, 폐와 허벅지는 먹기 위해서 달라고 했다”라고 진술했다.
 
김 양의 증언에 방청석이 한차례 크게 술렁였다. 일부 방청객은 울음을 터뜨렸고, 더 듣기 힘들다는 듯 법정을 뛰쳐나가는 장면도 연출됐다. 김 양은 이어지는 검사의 질문에 전혀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수차례 공판과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잘 훈련된 대답으로 판단됐다. 예를 들어 검사가 ‘문자 메시지를 이렇게 보낸 이유가 뭐냐’고 물으면 ‘그건 이런저런 의미다’라고 즉시 대답하는 식이다. 말을 더듬거나 주눅 들지도 않았다.
 
김 양은 A양 살해 직전 포털 사이트에 ‘완전범죄’ ‘밀실살인’ 등을 검색했다. ‘도축’ ‘뼛가루’도 검색했다고 했다. 도축은 훼손을 위해, 뼛가루는 뼈를 처리하기 위해서 검색했다고 했다. 김 양은 또 부모의 직업 특성상 ‘고어(선혈이 낭자한 잔혹함)’에 대해 알기 쉬웠다고 말했다. 김 양 아버지의 직업은 의사로 알려졌다. 김 양은 박 양에 의해 실험 대상이 된 것 같다며 박 양이 무섭다고 했다.
 
김 양은 시신 훼손 직후 박 양과 세 차례(8분·3분·6분) 통화하고 만나 시신 일부를 넘겨줬다. 김 양은 박 양에게 건네준 신체 일부를 묘사하면서 처음으로 흐느끼기도 하고 말을 더듬기도 했다. 그러나 다른 얘기로 넘어가자마자 언제 그랬냐는 듯 다시 담담한 말투로 바뀌었다.
 
방청객 곳곳에서는 탄식이 흘러나왔다. 검찰의 질문이 끝나고 박 양 변호사 측의 질문이 이어지자 ‘잘 모른다’,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말로 일관하다가 변호인 측의 항의를 받기도 했다.
 
변호인 측은 ‘검찰의 질문에는 거침없이 대답하면서 변호인의 질문에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며 자신에게 유리한 진술만 하고 있다’고 했다. 김 양은 이에 대해 자신의 기억력이 좋지 않으며, 날짜 감각이 없다고 했다. 날짜 감각이 없다고 할 때는 웃기까지 했다. 살인 동기를 묻는 변호인 측의 질문에 “나에겐 중요하지 않다. 박 양에게 중요한 일이다”라고 했다.
 
증언이 끝나고 김 양은 재판장 밖으로 나갔다. 이어서 검찰은 박 양에게 ‘살인 혐의’로 무기징역을 구형했다. 박 양은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느냐는 판사의 말에 울먹이며 “어리석은 일로 인해 한 아이가 죽은 것에 대해서 많이 반성하고 있다”면서도 “사체 유기는 인정하지만 살인은 인정할 수 없다. 한 번의 기회만 주신다면 반성을 잊지 않고 살겠다”고 말했고 박 양의 공판은 끝났다.
 
박 양의 공판이 길어져 예정 시간보다 1시간 반이 지나 김 양의 공판이 시작됐다. 김 양의 공판은 증인 없이 빠르게 진행됐다. 검사는 심신 미약은 인정될 수 없다며 최대형인 20년을 구형했다. 검찰은 김 양이 주장하는 아스퍼거증후군과 범죄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판단했다.
 
판사는 김 양에게 최후 변론의 기회를 줬지만 죄를 뉘우친 박 양과 달리 “할 말 없다”고 말하고 결심 공판은 마무리됐다. 두 사람의 선고 공판은 이달 22일 오후 2시에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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