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이명박 전 대통령이 퇴임한 지 4년여가 지났다. 하지만 새롭게 문재인정부가 들어서면서 언론을 통해 박근혜 전 대통령과 함께 이명박 전 대통령의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다. 이 전 대통령 이름과 함께 꼬리표처럼 따라다니는 키워드가 있다. 바로 ‘김경준’ ‘BBK’ ‘다스’다. 김경준 씨는 ‘BBK 주가 조작 사건’으로 실형을 살고 지난 3월 29일 출소해 미국으로 출국했다. 그는 투자자문사인 BBK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최근에는 시사인 주진우 기자가 단독기사를 통해 김 씨와 다스 간 이뤄진 140억 원 거래에 이 전 대통령이 연관됐다는 의혹을 보도하기도 했다. 주 기자는 더 나아가 이 전 대통령과 관련된 각종 의혹을 정리한 ‘주진우의 이명박 추격기’를 출간하기도 했다. 이런 가운데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법원으로부터 ‘국정원 댓글부대’ 관련 국정원법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로 유죄를 선고받자 이 전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여론이 높아지고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 후 BBK 수사까지 가나?

김경준 씨는 지난 2007년 17대 대통령선거 당시 이명박 전 대통령이 BBK의 실소유주라는 주장을 했고, 주가조작으로 회삿돈을 횡령한 혐의 등으로 기소됐다. 이후 2009년 징역 8년, 벌금 100억 원 형을 확정받아 천안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했다.

징역형은 지난 2015년 만료됐지만 검찰이 벌금형의 시효를 연장시켜 그동안 노역장에 유치됐다. 김 씨는 수감 중 징역형 기간과 검찰의 벌금형 시효 연장이 모두 위법하다며 잇따라 소송을 제기했지만, 모두 패소해 형량을 다 채우고 지난 3월 29일 출소했다.

미국 국적인 김 씨는 금고 이상의 형을 확정받은 외국인은 강제 추방되는 출입국관리법에 따라 28일 청주교도소 내에 있는 외국인보호소로 옮겨져 관련 심사를 받았다.
출소 직전 김 씨를 면담한 더불어민주당 박범계 의원에 따르면 김 씨 역시 출국을 원한 것으로 알려졌다. 당시 김씨는 박 의원에게 BBK 사건과 관련한 입장도 밝혔다.

박 의원은 “한 시간 정도 김 씨를 면담했는데 첫마디가 ‘정권이 교체돼 진상이 밝혀졌으면 좋겠다’였다”며 “여러 가지 이유를 들면서 ‘이 전 대통령도 주가조작 유죄’라고 설명했다”고 전했다.

이어 “김 씨가 진상 규명을 위해 본인이 나설 것이고 미국으로 돌아가면 적절한 언론사와 인터뷰도 할 계획이 있다고 전했다”며 “정권 교체 후 진상규명을 위해 한국에 올 수 있도록 법적 조치를 해달라는 요구도 했다”고 덧붙였다.
 
팩트 체크와 함께
미공개 자료 공개 중

 
미국으로 돌아간 김경준 씨는 트위터와 페이스북을 통해 BBK의 실소유주가 이 전 대통령이라는 주장을 뒷받침 할 자료들을 속속 공개했다. 때로는 국내 언론에서 보도된 기사들에 대한 코멘트를 달며 팩트 체크와 함께 부연설명을 하며 이 전 대통령을 공격했다.

지난달 30일에는 이명박 전 대통령이 회장으로 표기되어 있는 마프펀드 브로슈어와 함께 미국 검찰에서 이 전 대통령 측근이 진술한 내용을 공개했다.

브로슈어에는 김씨와 함께 이 전 대통령 사진이 나란히 실려 있으며 이 전 대통령은 ‘chairman’ 김씨는 ‘president’로 표기돼 있다. 같이 올린 검찰 질문을 살펴보면 미국 검찰 측 조사담당이 “당신은 투자를 유치하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이 브로슈어는 이뱅크코리아, 비비케이이(BBK), 엘케이이(LKe)뱅크 등의 투자유치를 위해 만들어진 것인가?”라고 묻는다.

그러자 이 전 대통령 측근은 “경영진이 결정한 내용입니다만, 브로슈어가 투자유치를 위해 제작된 것으로 알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 밖에도 김씨는 다양한 자료들을 수시로 공개하고 있다.

김 씨가 이러한 자료들을 확보할 수 있었던 이유에 대해 그는 “MB가 수없이 소송들을 각종 국가에서 제기해 저를 괴롭히는 데 성공하긴 했으나, 그 와중에 그에게 불리한 증거를 많이 제출해 제가 그 자료들을 확보하게 됐다”고 밝혔다.

국내 사정을 전혀 모르는 외국 변호사들이 이 전 대통령을 변호하다 보니 제출하지 않아야 할 자료 등을 제출하는 실수를 범했다는 설명이다.
 
김경준-이명박 ‘140억 빅딜설’
 
김경준 씨는 그동안 제기됐던 ‘누나의 소개로 이명박 전 대통령을 만났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부인했다. 그는 자신이 이 전 대통령을 찾은 것이 아니라 이 전 대통령이 자신에게 연락을 해 왔다는 취지의 말도 했다.

그러면서 김 씨는 지난달 30일 트위터에 1999년 2월 12일자 매일경제 ‘스미스바니證 전 세계 지점 통틀어 재미교포 운용펀드 최고수익 내’ 기사 등 2건의 기사 사진을 올리며 “전 1999년 당시 미투자은행에서 연봉 22억 원을 받는 ‘투자 천재’로 유명했다”고 밝혔다.

김 씨는 트위터를 통해 140억 원을 다스로 보낸 이유에 대해 주진우 기자를 언급하며 “MB는 국가기관들을 동원해 누나 및 처에게 각종 범죄를 뒤집에 씌워 범죄인 인도 및 고소 등(을) 하려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저를 협박해 돈 등을 뜯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주 기자를 언급한 이유는 주 기자가 지난달 24일 시사인을 통해 ‘다스의 140억 MB가 빼왔다?’라는 기사를 공개했기 때문이다. 기사에는 “2011년 2월 김경준 씨의 크레디트스위스 은행 계좌에서 140억 원이 이명박 전 대통령 소유로 의심되는 다스로 송금되었다. 청와대 그리고 외교부와 검찰이 이를 위해 움직인 정황을 담은 서류를 공개한다”는 내용이 실렸다.

주 기자는 김 씨의 BBK 설립과정을 소개하며 “자본금이 5000만 원에 불과해 투자자문회사의 자격 요건을 채우지 못했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BBK는 이 전 대통령의 차명 회사로 의심받는 다스로부터 190억 원을 투자받았다”고 말했다. 이어 “나중에 다스는 투자금 190억 원 가운데 140억 원을 돌려받지 못했다며 김경준 씨와 다툰다”며 140억에 얽힌 사연을 설명했다.

주 기자는 다스 핵심 관계자 증언을 통해 “140억 원을 돌려받기 위해 청와대가 직접 나섰다. 청와대와 외교부 그리고 검찰이 나서서 미국과 스위스 정부를 설득해 김경준의 계좌 동결을 풀었다”고 밝혔다.

당시 김 씨는 140억 원을 돌려주면 자신도 감옥에서 풀려날 줄 알았던 것으로 보인다. 주 기자는 당시 140억 거래에 대해 ‘빅딜설’이라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하지만 김 씨는 140억을 돌려주고도 풀려나지 못했다.

기사에서 김 씨는 주 기자와의 인터뷰를 통해 “이명박 쪽에서 가족들이 살 수 없을 정도로 괴롭혀 돈을 보낼 수밖에 없었다”며 “돈을 보내면 감옥에서 풀어줄 것이라고 기대했는데 끝내 풀어주지 않았다”고 말했다.
 
원세훈 전 원장 유죄
MB 수사 힘 받는다

 
김경준 씨의 누나인 에리카 김씨는 2011년 횡령, 공직선거법상 명예훼손 혐의 등으로 수배 중이었다.

당시 검찰은 에리카 김 씨를 소환하기 위해 인터폴에 범죄인 인도 요청을 하겠다고 엄포를 놓은 상태였다. 하지만 에리카 김 씨는 그해 2월 1일 동생인 김경준 씨가 다스에 140억을 송금한 후인 25일 귀국해 검찰의 조사를 받았다.

그리고 2월 21일 에리카 김씨는 특경가법상 횡령 혐의에 대해서는 기소유예, 증권거래법·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는 ‘공소권 없음’으로 불기소 처분을 받았다. 가족들을 괴롭혀 돈을 보낼 수밖에 없다는 김경준 씨의 주장이 설득력을 얻는 이유다.

현재 검찰은 지난달 3일 국정원 개혁위가 공개한 자체 조사 결과에 따라 이명박정권 국정원 사이버외곽팀 의혹에 대해 수사 중이다. 이런 가운데 법원이 원세훈 전 국가정보원장 파기환송심에서 관련 혐의를 모두 유죄로 판단함에 따라 수사가 한층 탄력을 받게 됐다.

검찰은 여론조작 과정 배후에 원 전 원장, 나아가 이 전 대통령의 지시 등이 있을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를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정치권 등에서는 부실수사 의혹이 있었던 BBK 재수사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는 만큼 검찰의 행보가 주목을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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