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자’로 원세훈 잡은 檢 ‘외부자’ 잡고 MB 겨눈다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국가정보원 댓글 공작 파문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최근 징역 4년의 실형을 선고받으면서 이명박 전 대통령에게 시선이 쏠리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통령-국정원장의 독대가 부활했고, 국정원장의 직속상관이 대통령이라는 점, 원 전 원장이 이 전 대통령의 최측근인 점 등을 고려했을 때 이 전 대통령의 지시·개입 여부에 초점이 맞춰지고 있다.
 
이전 검찰 수사가 국정원 심리전단과 연관된 ‘내부자들’에 초점이 맞춰졌다면, 현재 수사는 사이버 외곽부대라 불리는 민간인의 ‘외부자들’에 집중되고 있다. 이들의 구체적 활동과 청와대 개입 여부에 따라 검찰의 칼날은 ‘최윗선’으로 향할 전망이다.
 
元 유죄로 ‘외곽부대’ 수사 탄력…‘최윗선’ 향하는 칼날
전 靑행정관 연루·군 간부 양심선언 “靑과 국방부에 ‘댓글’ 보고”

 
국정원이 2012년 18대 대통령 선거에 개입했다는 파문을 일으키며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등으로 기소된 원세훈 전 국정원장이 지난달 30일 징역 4년의 유죄를 선고받았다. 2015년 대법원의 보석 허가로 풀려나 있었던 원 전 원장은 이날 다시 법정 구속됐다.
 
‘롤러코스터’ 재판
대선 개입 ‘유죄’ 쐐기

 
이번 파기환송심 선고는 ‘대선 개입’ 의혹에 대해 유죄라고 못 박은 점에서 파장이 크다. 그동안 이 점을 두고 법원의 판단이 엇갈렸던 탓이다. 서울고법 형사7부(부장판사 김대웅)는 이날 원 전 원장의 국정원법 위반 및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모두 유죄로 인정했다.
 
그간 1심과 2심은 국정원의 ‘정치 개입’ 혐의인 국정원법 위반 여부에 대해서는 모두 유죄로 인정했으나, 18대 대선에 개입했다는 ‘선거 개입’ 여부에 대해선 판단이 달랐다. 1심은 선거 개입 혐의를 무죄라고 판단했으며, 2심은 유죄로 판단했다.
 
대법원은 2심에서 선거법 위반 혐의의 주요 증거로 인정된 일부 파일의 증거 능력을 부인하면서 상황은 다시 반전을 맞았다. 대법원은 심리전단 활동 주제와 직원별 트위터 계정 정보 등이 담긴 ‘시큐리티 파일’과 ‘425 지논’ 파일이 단편적이고 추상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다고 판단, 증거 능력을 인정하지 않았다.
 
대법원은 이 사건을 파기 환송하면서 대선 개입 혐의에 대해 판단하지 않았고 이는 다시 쟁점이 됐다. 2015년 7월 파기환송 이후 2년 만에 열린 이날 선고공판에서 재판부는 다시 대선 개입 혐의를 유죄라고 결론지었다. 핵심 쟁점을 두고 상급심을 거칠 때마다 반전을 거듭하던 판결이 유죄로 나온 것이다.
 
재판부는 원 전 원장 등에게 “국정원 직원으로서 정치적 중립을 반드시 지켜야 하나 이를 정면으로 위반했다”며 “특정 정당과 정치인을 지지, 반대해 정치에 관여하고 특정 선거 운동까지 나아가 헌법을 위반한 정도가 매우 중하다”고 질타했다.
 
재판부가 원 전 원장의 선거법 위반 혐의를 유죄라고 본 데에는 이른바 ‘원세훈 녹취록’과 ‘SNS 장악 보고서’가 결정적 증거로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검찰이 파기환송심에 제출한 2009~2012년 국정원 부서장 회의 녹취록 문건과 청와대에 보고된 것으로 알려진 ‘SNS 선거 영향력 진단 및 고려사항’ 등 10여건의 문건이 ‘스모킹건’이 됐다.
 
녹취록에는 ‘야당이 승리하면 국정원이 없어진다, 지방선거 앞두고 공천 단계부터 잘 관리하라, 우호 세력을 정확하게 알려라, 지금 현 정부 대 비 정부 싸움이다. 강 건너 불구경할 문제 아니다’라는 내용 등이 담겨 있다.
 
‘SNS 보고서’와 관련해 재판부는 “‘야당에 점령당한 SNS에서 허위정보가 유통되고 민심이 왜곡되는 것을 차단해야 한다’는 내용이 기재됐다”며 “국정원은 평상시에도 각종 선거에서 여당의 승리를 목표로 대책을 수립한 것으로 보인다”고 지적했다.
 
이 같은 핵심 증거는 파기환송심 결심공판이 열리기 직전 무렵 재판부에 제출됐다. 특히 녹취록은 기존 재판부에 제출된 문건 가운데 삭제됐거나 수정됐던 부분을 현 국정원의 적폐청산 태스크포스(TF)가 복구해 검찰에 제출했다.
 
靑 개입 여부 규명
‘수사 제2막’ 개시

 
국정원 댓글 공작 수사가 원 전 원장의 ‘단죄’로 제1막이 끝난 가운데 ‘윗선’을 밝히는 수사 제2막이 펼쳐지고 있다. 향후 검찰 수사는 이른바 사이버 외곽팀장으로 활동한 ‘민간인 댓글부대’의 구체적인 역할과 청와대 개입 여부 규명에 초점이 맞춰질 전망이다.
 
지난달 초 국정원 적폐 청산 TF는 이명박 정부 시절 원 전 원장의 국정원 심리전단에서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알파(α)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 30개를 운영한 사실을 확인한 데 이어 최근 18개팀을 추가로 확인했다.
 
수 십여 차례에 걸친 압수수색과 대상자 소환 조사를 통해 검찰은 “국정원 지시로 댓글을 작성했다”는 다수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 민간인 외곽팀장은 국정원 측이 제시한 보안각서에 서명한 뒤 국정원 자금을 받고 온라인에 댓글을 다는 등 여론 공작 활동에 나선 것으로 파악됐다.
 
한편, 국정원 자금이 이들에게 제공된 부분은 원 전 원장의 혐의가 늘어날 수도 있는 대목이다. 국정원 예산이 불법 선거운동에 사용된 것으로 확인되면 배임(국가예산 전용)이나 직권남용 혐의가 추가될 수 있다.
 
무엇보다 현재까지 알려진 민간인 댓글부대로 활동한 이들은 전·현직 국정원 직원뿐 아니라 전직 청와대 행정관, 이명박 전 대통령 지지 단체, 군 사이버사령부 핵심 간부까지 포함됐다. 검찰은 지난달 28일 국정원 퇴직자모임인 양지회 간부 노모 씨를 소환해 조사를 벌였고, 최근 청와대 행정관 오모씨도 출석해 조사를 받았다.
 
오 씨는 이명박 정부 말기인 2012년 4월부터 박근혜 정부 초기인 2013년 6월까지 청와대 시민사회비서관실과 국민소통비서관실에서 행정관으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다.
 
軍 간부, ‘댓글 공작’ 폭로
“청와대·국방부 매일 보고”

 
지난달 30일에는 군 사이버사령부 고위 간부가 과거 군의 댓글 공작 사실을 청와대와 국방부 장관에게 매일 보고했다며 ‘양심선언’을 하고 나서 주목된다. 그는 SBS뉴스에 나와 실명과 얼굴을 공개하며 자신의 증언을 뒷받침했다.
 
그는 자신이 2012년 대선 당시 사이버사령부 530 심리전단 단장과 같은 직급의 3급 군무원이자 부단장 겸 총괄계획과장으로 근무했다고 밝혔다. 이어 그는 매일 청와대와 국방부 등에 ‘댓글 공작 보고서’가 전달됐다고 폭로했다.
 
청와대에는 전산시스템을 이용해 국방비서관실로, 국방부 장관과 합참의장 등에겐 단장이 직접 서면으로 매일 아침 이 보고서를 전달했다는 게 이 간부의 설명이다. 대통령 행보에 대한 비판 여론을 잠재우고, 야당 정치인을 비판하는 식의 댓글이 보고서에 담겼다고 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김관진 전 청와대 안보실장이었으며, 국방비서관은 윤영범 전 한미연합사령부 부참모장이었다. 윤 전 비서관은 댓글 보고를 받은 기억이 없고, 관련 내용을 보고한 적도 없다고 해명했다.

 
<뉴시스>
   정치권, ‘MB 책임론’ 공방
“수사 받아야 vs 보복 적폐”

 
검찰의 댓글 수사가 전방위적으로 진행되면서 그 칼날이 어디까지 겨눌지 초미의 관심사가 되고 있다. 정치권에선 “이명박 전 대통령이 수사받아야 한다”며 ‘MB 책임론’이 본격 대두하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추미애 대표는 지난 1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국정원의 모든 (불법) 책임은 원장의 직속상관인 이명박 전 대통령이 져야 한다”며 “이 전 대통령 재임 시절 국정원장 정보 보고를 받으며 국정원의 불법 탈법이 이뤄졌다는 것은 모르려야 모를 수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의당 추혜선 수석대변인은 지난달 30일 브리핑을 통해 “국정원의 댓글 공작 활동에 이명박 정부 청와대가 주도적으로 개입했다는 증거가 쏟아지고 있다”면서 “대한민국에서 국정원장을 임명하고 지시를 내릴 수 있는 사람은 단 하나뿐이다. 이제 이 전 대통령을 수사선상에 올려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 손금주 수석대변인도 논평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대한민국 민주주의를 농락한 사건”이라며 “꼬리 자르기 식으로 덮을 문제가 아니다. 이제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에게 대선 개입을 지시한 사람이 누구인지 밝혀야 한다”고 이 전 대통령을 겨냥했다.
 
반면 자유한국당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촉구는 “정치보복 적폐”라고 강력 반발하고 나섰다. 정태옥 원내대변인은 지난 1일 논평에서 “국정원 댓글 사건은 국정원의 최고 책임자가 책임지면 되지, 이를 굳이 당시 대통령에까지 연결시키는 정치적 상상력이 놀랍다”라며 “지난번 국정원 적폐TF가 만들어질 때부터 국민들은 전 정권에 대한 보복이 아닌가 심히 우려해 왔는데, 드디어 그 실체가 드러나는 것 같다”고 비판했다.
 
홍준표 당 대표도 지난달 30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5년이 지난 사건을 대통령이 되고 난 뒤에도 그렇게 집요하게 보복을 하고 있는지 참 무서운 정권”이라고 비난했다.
 
바른정당은 원세훈 전 원장의 재판 결과에 대해 “재판부의 판단을 존중하며, 국가 기관의 정치 중립과 선거 불개입 원칙을 다시 한번 확인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란다”고 짧게 논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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