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범 스티븐 리 12년 만에 검거 檢 ‘재수사 시동’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법무부가 지난달 21일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 주범인 한국계 외국인 스티븐 리가 도주 12년 만에 검거됐다고 발표했다. 현재 그는 이탈리아에서 검거 돼 한국 송환을 앞두고 있다. 스티븐 리가 국내 송환을 앞두다 부실수사 의혹이 제기됐던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이 재조명 받으며 재조사 될지 관심이 커지고 있다. 더불어 당시 문제가 됐던 고위층 개입 의혹에 대해서도 새로운 사실이 드러날지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대검 중수부장 박영수·수사기획관 채동욱이 수사 진행
이헌재·전윤철·김진표 등 의혹 많았지만 줄줄이 무혐의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은 2003년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서 당시 변양호 전 재경부 금융정책국장과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등이 론스타 펀드 측과 유착, 불법으로 외환은행의 자산 저평가 및 부실규모 부풀리기를 통해 정상 가격보다 최소 3443억 원, 최대 8253억 원의 낮은 가격에 매각한 혐의를 받았던 사건이다.

이 사건으로 혐의가 인정돼 기소된 사람은 이강원 전 외환은행장, 변 전 국장, 이달용 전 외환은행 부행장, 홍기옥·하종선 변호사 등 5명이다. 하지만 변 전 국장, 이 전 외환은행장, 이 전 부행장은 2010년 10월 14일 대법원으로부터 특정경제범죄 가중처벌법상 배임 등의 혐의에 대해 무죄를 선고받았다.

당시 재판부는 “신주 발행 및 구주 매각과 관련해 임무위배행위가 있었다거나, 외환은행, 코메르츠뱅크, 수출입은행 등에게 손해 또는 그 위험이 발생했다고 볼 수 없다고 한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고 판시했다.

또 “외환은행 매각 과정에 불법행위는 없었다”며 “외환은행 매각은 정책적 판단과 실행의 문제이고, 그로 인해 발생한 손해에 대해 행정적 책임이 아닌 배임죄를 물을 수 없다”고 판단했다. 하 변호사도 2008년 1월 서울중앙지법으로부터 무죄 판결을 받았다.

이 밖에 이헌재·전윤철·김진표 전 재경부 장관, 이정재 전 금감위원장, 이동걸 전 금감위 부위원장, 김광림 전 재경부 차관 등 9명도 검찰의 조사를 받았으나 무혐의 처분을 받거나 참고인 중지 처분됐다.

당시 외환은행 매각은 노무현정부에서 이뤄졌지만 관련 절차들이 대부분 김대중정부에서 이뤄졌던 만큼 정재계 주요 인사들이 수사선상에 오르자 다양한 의혹이 제기됐었다.
 
인수 후 되팔기
출구전략 세운 론스타

 
최근 검거된 스티븐 리는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의 주범이다. 하지만 2006년 검찰이 특별수사팀을 꾸려 대대적인 수사를 벌이자 미국으로 도주했었다.

1998년 한국에 진출한 론스타 펀드는 스티븐 리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강력한 건의로 은행 인수작업에 뛰어들었다.

스티븐 리는 높은 수익이 전망되는 외환은행을 목표로 삼아 공개입찰이 아니라 수의계약을 통해 직접 인수에 나섰다. 이강원 당시 은행장과 접촉, 인수 가능성을 타진하는 한편, 재무 자문사 살로만스미스바니(SSB) 한국지사장 김모씨로 하여금 변양호 재경부 국장, 김석동 금융감독위원회 국장을 만나 인수 청탁을 하도록 했다.

2002년 10월께 외환은행 본협상이 시작될 무렵, 론스타는 10억 달러를 들여 외환은행을 인수한 뒤 단기에 제3은행에 되팔아 차액을 챙기는 ‘출구계획’을 세웠다.

2002년 9월 SSB 김 대표는 이 전 행장을 만나 론스타의 투자 의향을 전달했다. 이후 변 전국장의 소개로 스티븐 리와 유회원 씨가 이 전 행장의 사무실을 방문해 투자의향을 공식적으로 표명했고 다음달 이 전 행장은 10억 달러 투자 조건을 변 전 국장에게 보고했다.

론스타는 예산범위인 10억 달러에 맞추기 위해 주식 가격 협상에 들어갔다. 1주당 평균 매입가가 6000원~8300원이었던 코메르츠 뱅크 및 수출입은행의 주식을 5000원대에 매입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다는 점에서 액면가 이하로 신주를 발행할 경우에만 10억 달러를 맞출 수 있었다.

스티븐 리는 변 국장과 친분이 있는 하종선 변호사에게 부탁, 이 협상을 비교적 쉽게 끌어냈다. 한 달 동안의 실사를 마친 뒤, 2003년 5월 6일 밤 9시 서울 강남에 있는 한 식당에서 3자가 만나 신주는 4000원 또는 4100원, 구주는 5000원에 매각하기로 합의했다.

다음달 스티븐 리와 하 변호사는 변 국장을 같은 장소에서 다시 만나 주식 매입을 보장해 주는 콜옵션을 요구, 수락을 받아냈다.
 
은행지분 제한한 은행법
비밀회의 후 론스타 요청대로


2003년 6월 하순, 사모펀드인 론스타가 은행 인수자격이 있느냐는 문제가 현안으로 대두 됐다. 금융기관이 아니면 은행 지분을 10% 이상 보유할 수 없도록 한 은행법 규정 때문이었다.

론스타의 부탁을 받은 하 변호사는 그해 6월~7월 사이 변 국장 등 관련 공무원을 만나 로비를 벌였다. 로비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그해 7월 15일 조선호텔 식당에서 변 국장 주재 하에 열린 10인 비밀회의는 론스타 요청대로 인수 자격을 주기로 결론 냈다.

이 행장은 회의 직후인 16~21일 사이 5차례에 걸쳐 BIS 비율을 8% 이하로 조작한 자료를 금감원에 제출했다. 25일 금감위는 9명의 위원 중 단 3명만 참석한 약식 간담회에서 BIS 비율 6.16%를 근거로 론스타의 인수 자격을 사실상 승인했다. 3달 뒤인 10월 31일 론스타는 외환은행 주식인수대금을 완납, 지분 51%를 획득함으로써 은행인수 작업을 성공적으로 마무리했다.

하지만 2004년 10월 투기자본감시센터가 론스타 주식취득 승인무효 소송을 제기하면서 상황이 반전됐다. 투기자본감시센터는 1년 뒤인 2005년 9월 매각에 관여한 경제관료 20명을 검찰에 고발했다. 10월에는 국세청도 가세 스티븐 리를 탈세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이듬해 2월에는 금감원이 론스타를 860만 달러 외환도피 혐의로 검찰에 수사 의뢰함으로써 론스타 사건은 걷잡을 수 없는 양상으로 치달았다.
 
투기자본감시센터 고발로
사건 진상 알려져

 
투기자본감시센터의 고발로 ‘외환은행 헐값매각 사건’의 진상이 알려지게 됐지만 당시 고발당했던 인사들 대부분이 무죄로 풀려나면서 의혹이 풀리지 않았다.

이헌재 전 경제부총리의 경우 김앤장 법률사무소 고문으로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했으며 한남동 빌라 구입을 위해 외환은행에서 10억 원을 대출 받은 것이 대가성이 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검찰은 이 전 부총리와 그 가족의 계좌를 모두 추적하고 이메일 등 각종 자료를 분석했지만 외환은행 매각에 관여한 흔적을 찾지 못했다. 10억 원 대출건도 금리 6%가 통상보다 다소 감면된 것이지만 이 전 부총리의 사회적 지위와 재산, 담보제공 등을 감안, 감면된 것으로 결론 냈다. 다른 사람들도 직접적인 혐의를 찾지 못했다.

사건과 관련해 검찰의 수사를 받은 사람은 총 630여명이다. 수사 담당자들도 검사 20명, 수사관 80명으로 총 100명이었다. 하지만 결과적으로 사법부가 론스타에 면죄부를 준 판결이 나오면서 ‘먹튀’ 논란과 함께 비판 여론이 잦아들지 않았다.

당시 대검 중수부장으로 수사를 진두지휘했던 인물은 박영수 특별검사, 수사기획관은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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