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보유국 인정→北美 평화협정→주한미군 철수’… 막을 ‘카드’가 없다!

[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북한이 지난 3일 기습적으로 6차 핵실험을 강행하면서 ‘풀 베팅’에 나섰다. 핵보유국 지위에 쐐기를 박아 한반도를 둘러싼 ‘게임의 룰’을 바꾸려는 의도로 비친다. ‘핵보유국 인정→北美 평화협정→협상 주도권 확보→주한미군 철수’가 김정은의 ‘시나리오’인 것이다.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우리 스스로 이를 저지할 어떤 수단도 갖지 못했다는 점이다. 핵의 실제적 위협에 직접 노출돼 있는 상황에서도 정부는 여전히 “레드라인을 아직 넘지 않았다”며 안일한 안보 의식을 드러내고 있다. 우리 스스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작금의 사태는 문재인 정부의 ‘제재·대화 투트랙’ 기조의 실패로 인한 결과물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코리아 패싱’을 자초한 우리 정부의 대북 정책에 전면 수정이 불가피한 이유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대화 무용론’·‘코리아 패싱’… 안보 ‘사면초가’ 몰린 文
- 秋 국회 연설문… ‘대화’ 12번 언급한 반면 ‘규탄’은 단 한 번


북한이 기어이 6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북한 핵무기연구소는 지난 3일 성명을 통해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장착용 수소탄 시험에 성공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기상청도 이날 “낮 12시 29분 북한 함경북도 길주군 풍계리에서 규모 5.7의 인공지진파를 감지했다”고 밝혔다. 북한의 역대 핵실험 가운데 폭발 위력이 가장 큰 것이다. 이로써 북한은 핵보유국 지위에 한 발 더 다가서게 됐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북한은 5월 14일을 시작으로 이미 9차례 도발을 감행했다. 지난달 4일과 28일에는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미사일을 발사했고, 지난 29일에는 중장거리탄도미사일(IRBM)을 발사해 일본 상공을 지나가게 하는 등 도발 수위도 점점 높여 가고 있다. 그리고 지난 3일에는 도발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는 핵실험을 강행한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제재·대화 투트랙’ 대북 정책을 고집하며 을지연습에서 미국 전력의 한반도 이동을 자제하는 등 대화 분위기를 띄우는 가운데 일어난 도발이어서 그 파장은 상상을 초월하고 있다.

“강력 응징” 말하면서도
‘레드라인’은 안 넘었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아직까지도 대북 정책 기조에 대한 자성이 없는 실정이다. 문 대통령은 본인이 제시한 ‘레드라인’을 스스로 후퇴시켜 왔다. 비핵화에서 핵 동결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에 핵탄두 탑재 등으로 물러섰다. 그러더니 지난 3일 북한이 6차 핵실험을 감행했음에도 아직 레드라인을 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지난 4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의 발언은 더 큰 우려를 자아낸다. 그는 이날 “남북이 대립하는 적대적 균형이 아니라 민족 공동의 번영과 균형으로 바꿔 나가자”고 했다. 또 “북미-남북한 투 트랙 대화를 추진할 것을 강력히 제안한다”고도 했다. 이날 추 대표의 연설문에는 ‘대화’는 12번이나 등장한 반면 ‘규탄’은 한 번밖에 나오지 않았다.

여당 대표의 이 같은 모습은, 문 대통령이 비록 상황이 엄중한 탓에 ‘강경 대응’을 외치고는 있지만 속으로는 ‘대화’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음을 방증하는 대목이라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국제사회의 대북 기조와 정면으로 대치되는 문 정부의 이 같은 ‘대화’ 고집은 미국과 일본의 공조를 더욱 끈끈하게 만들어 주며 ‘코리아 패싱’을 야기했다.

북한의 핵실험 이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당사자인 우리 정부보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와 이틀 연속 전화 통화를 한 것은 이 같은 ‘코리아 패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다. 미일 정상이 하루에 두 번 통화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다. 반면 같은 기간 북한 위기의 직접 당사국인 한국의 문재인 대통령과는 전화 통화나 직접 협의가 없었다.

‘코리아 패싱’은 비단 미국과 일본으로부터의 ‘패싱’만을 의미하지 않는다. 정작 우리 정부가 줄기차게 대화를 요구하고 있는 북한마저 남한을 완전히 배제하고 핵미사일은 미국과 양자 간 해결할 문제로 보고 있다.

핵 보유한 北, ‘골칫덩어리'
에서 ‘군사강국’으로


일단 6차 핵실험을 통해 북한은 미국, 나아가 국제사회로부터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받고자 할 것이다. 이미 국제사회에선 이번 6차 핵실험으로 북한이 각종 탄도미사일에 충분히 핵을 장착할 만큼 작고 가벼운 핵탄두를 만드는 능력을 갖췄다고 보고 있다.

6차례의 핵실험은 핵보유국 지위의 암묵적 기준으로 통한다.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인정받는 인도와 파키스탄도 5~6차례 핵실험을 실시한 뒤 현재는 하지 않고 있다. 핵확산금지조약(NPT)은 미국·영국·프랑스·중국·러시아 5개국만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지만 국제사회는 3개국을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결국 국제사회가 북한을 인도·파키스탄·이스라엘과 같이 ‘실질적 핵보유국’으로 받아들여야 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이다.

외교·안보에 정통한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핵 보유’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골칫덩어리에서 명실상부한 군사강국으로 변모함을 뜻한다”면서 “어쩌면 1970년대 중반 이후 앞선 경제력을 발판으로 한국이 주도하던 남북관계도 역전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아울러 북한이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핵 보유 국가로 인정받게 되면 그들이 핵 폐기를 전제로 한 기존 비핵화 대화에도 응하지 않을 것이다. 핵을 가진 채 미국과 대등한 입장에서 협상 테이블에 앉을 것이고 체제 보장을 얻어내려 할 것이다.

나아가 핵을 빼앗기지 않은 상태에서 상호 불가침 조약을 맺고, 그들 입장에서의 체제 안보를 확보하는 ‘평화협정’을 제안하는 것이 북한의 목표라고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설상가상으로 미국과 북한의 ‘평화협정’은 주한미군 철수와도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한국의 안보에 커다란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워싱턴포스트는 지난달 16일 ‘북한과의 항구적 협정의 모습’이란 제목의 칼럼에서 불량국가 북한 문제를 풀 수 있는 하나의 접근방식으로 북미 간 평화협정을 거론하면서 이 과정에서 주한미군 지위가 가장 민감한 문제로 떠오를 것이라고 지적했다.

한반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이 이뤄진 상황에서 외국군 주둔은 명분이 약한 게 사실이다. 만약 주한미군이 정말로 한반도에서 철수한다면, 과거의 애치슨 라인과 같이 미국의 최종 방어선이 한반도가 아닌 일본으로 이동하게 되는 사태가 발생하게 된다고 전문가들은 우려한다.

더 큰 문제는 이러한 상황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문재인 정부가 주도적으로 할 수 있는 역할이 사실상 전무하다는 것이다. 북한이 남한을 배제하고 미국과 핵 대결을 벌이는 이상 북·미 관계 흐름을 지켜보며 향후 전략을 모색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코리아 패싱’의 원인으로 문 정부의 ‘대화’ 고집과 사드(THAAD) 배치 문제를 깔끔하게 못한 점을 꼽는다. 미·중 간의 눈치를 보다 사드(THAAD) 배치 문제에 미온적 태도로 임한것이 일을 키우고 말았다는 것이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사드 배치에) 시간을 끄니 중국 입장에선 좀 더 압력을 가하면 일이 풀릴 것이라 생각하고, 미국은 미국대로 자기들이 이 정도 해줬으면, 이제 (사드 배치) 해주면 되는 거 아닌가 하는 거다”고 주장했다. 그간 사드 문제를 확실하게 매듭짓지 못하고 오락가락한 태도를 보인 탓에 한국이 미국과 중국 양쪽으로부터 ‘왕따’를 자초했다는 설명이다.

신 교수는 “우리가 주장하는 것만큼 (하지 못하고) 우리가 소외되고 있다”면서 “‘패싱’이란 말은 쓰고 싶지 않지만, 우리가 주장하는 만큼 주도적인 역할을 못하고 있다는 건 분명한 것 같다”고 덧붙였다. 그러면서 “우리가 중국이 아닌 미국의 혈맹이라는 것을 미국이 인지할 수 있도록 몸을 던져서 보여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전술핵 재배치’
국민의당이 ‘관건’


상황이 이쯤 되자 야권은 문재인 대통령의 대북 정책 기조에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는 입장을 내놓으면서 ‘전술핵 재배치’만이 사실상 핵을 보유한 북한에 맞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임을 주장하고 있다.

전술핵 재배치를 당론으로 정한 자유한국당은 7일 미국에 대표단을 보내기로 했다. 김광림 정책위의장은 이날 오전 국회에서 열린 원내대책회의에서 “한국당 당론으로 정한 전술핵 재배치, 그리고 핵을 탑재한 전략자산의 한국 배치가 이뤄져야 한다”며 이같이 밝혔다.

김 의장은 “미국에서도 전술핵 재배치 여론전이 시작됐고 그 여론은 점점 커지고 있다고 한다”며 “한국당은 미국을 방문해 전술핵 재배치에 찬성하고 그 필요성을 인정하는 언론과 정치인들을 만날 것”이라고 소개했다.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 역시 7일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전쟁을 준비한 나라만이 평화를 지켜낼 수 있다”며 “북핵에 맞설 수 있는 핵 보복 능력을 갖춰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어 “북핵은 협상용이며, 북한은 대한민국을 상대로 절대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라고 했던 사람들, 북핵에 대한 강경 대응을 요구하면 '전쟁을 하자는 말이냐'라며 눈을 치켜뜨던 사람들, 지금 다 어디에 있느냐”고 지적했다.

다만 국민의당은 전술핵 재배치를 두고 당내 이견이 돌출하고 있다. 김동철 원내대표는 7일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제기하며 “적어도 그런 말을 할 때는 됐다”고 했지만, 정동영 의원은 “전술핵 재배치 검토 발언을 한 송영무 국방부 장관을 해임하라”는 성명을 냈다.

현재 보수야당은 전술핵 재배치 필요성을 강조하고, 더불어민주당은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당 입장이 더욱 주목받는 상황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