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자유한국당이 대선 패배 이후 류석춘 혁신호를 띄웠지만 두 달이 다 되도록 혁신은 지지부진한 상황이다. 북한의 6차 핵실험과 MBC 김장겸 사장 체포영장 발부에 따른 장외투쟁으로 당내 혁신 분위기도 가라앉은 모양새다. 혁신위는 박근혜 전 대통령 탈당을 기정사실화하면서도 친박 인적 청산 범위에 대해서는 확실한 답변이 없다. 당 지도부는 친박 인적 청산이 안 될 경우 바른정당과 합당뿐만 아니라 향후 새로운 인재 영입에도 걸림돌로 작용할 것을 우려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현재 진행하고 있는 전국 당협위원장 253개 지역을 대상으로 한 당무감사 역시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반발로 지지부진하면서 ‘혁신 사면초가’에 빠진 형국이다. 이에 당 지도부 일각에서는 이참에 전국당협위원장 전원에게 ‘일괄사표’를 받고 중앙당 심사를 통해 재공모를 하자는 파격적인 주장도 나오고 있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朴 출당, 친박 2선 후퇴 지지부진 창조적 혁신 주장
- 청년·여성 등 혁신 인재 끌어안기 속 ‘친박’ 솎아내기 ‘반발’

“한식(4월 6일)에 죽으나 청명(4월 5, 6일)에 죽으나(한식과 청명은 보통 하루 사이로 하루 빨리 죽으나 늦게 죽으나 별 차이가 없음을 일컫는 속담) 마찬가지다”

자유한국당 고위 관계자의 한탄이다. 당내 혁신이 지지부진하면서 지속될 경우 지방선거 전에  망하나 지방선거 패배후 망하나 어차피 매한가지라는 한탄이다. 실제로 한국당이 류석춘 혁신위원회를 꾸린 지 꽤 됐지만 박근혜 전 대통령 탈당에 대해서만 ‘탈당 권고’로 가닥을 잡고 정작 친박 인적 청산에 대해서는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朴 출당’ 넘고 보니
또 다른 산이…첩첩산중

설상가상으로 내년 지방선거를 맞이해 조직 재정비 차원에서 실시하고 있는 전국 당협위 253개 지역에 대한 당무감사 역시 원외 당협위원장들의 반발로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나아가 당 사무처 구조조정 역시 당초 예상과는 달리 명예퇴직 신청자가 10명도 안 돼 가시적인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홍준표 당 대표가 꾸준하게 제기한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논의가 속도를 내고 있다. 혁신위는 내부적으로 박 전 대통령에 대해 탈당을 권유하기로 결정했다. 박 전 대통령이 탈당계를 제출하지 않을 경우에는 당헌·당규에 따라 10일 이내에 자동 제명된다. 하지만 이 역시 권고사안으로 최고위원회에서 의결이 돼야 효력이 발생한다.

박 전 대통령이 출당이 최고위에서 의결되더라도 큰 산은 또 남아 있다. 친박계 인적청산이다. 현재는 숨 죽이고 있는 친박계지만 박 전 대통령이 출당되고 자신들에게 칼날이 향할 경우 고질적인 친박·비박 간 계파 갈등이 재현될 수도 있는 상황이다.
지방선거 전 바른정당과 통합을 바라는 홍 대표지만 바른당에서는 친박 청산을 선결 조건으로 내세우고 있다.

한때 탈당설이 돌았던 바른당 이종구 의원은 8월25일 ‘친박 8적 청산’을 전제로 보수대통합이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의원은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당 지도부가 연대·합당설에 부정적이지만 서청원·최경환·홍문종·윤상현·이정현·조원진·김진태·이장우 의원 등 이른바 ‘친박 8적’ 청산이 이뤄진다면 합당까지 논의해볼 수 있느냐는 사회자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바른정당 소속 남경필 도지사 역시 9월8일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친박8적 청산이 이뤄져야 통합 가능성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다”며 “국정농단에 적극 협조한 세력을 출당시키지 않으면 한국당과의 통합은 생각해 볼 수 없다”고 밝혔다. 그러면서도 남 지사는 “‘친박8적 출당’은 구성원의 동의가 필요해 현실적으로 어렵기 때문에 위기에 빠진 바른정당이 살아나려면 창당 초심을 지켜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친박 8적’ 중 박근혜 전 대통령의 ‘복심’으로 알려진 이정현 전 대표는 탈당해 무소속인 상황이고 조원진 의원 역시 탈당해 대한애국당 공동 대표를 맡고 있어 실질적으로 당에 남아 있는 핵심 친박계 인사는 6명이다.

하지만 자유한국당에서 보는 친박 인적 청산 범위는 상당히 인색한 상황이다. 당내 분위기는 박 전 대통령 탄핵을 불러온 최순실 국정 농단 파문에 직접적으로 책임 있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과 서청원, 최경환 의원 등 3인방에 대해서 출당 조치를 하고 나머지 인사에 대해서는 안고 가자는 분위기다.

현재 감옥에 있는 김 전 실장은 청와대를 총괄하는 비서실장직에 있으면서 최 씨에 대한 관리를 제대로 못한 점, 그리고 서 의원은 당에 친박 좌장으로서 보좌를 못한 점, 마지막으로 최 의원은 전직 기획재정부 장관 및 경제부총리로서 정부 관료를 제대로 감시하지 못했다는 점을 들어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다.

하지만 서 의원과 최 의원은 일사부재리 원칙에 위배된다는 입장으로 반발하고 있다. 이미 두 의원은 인명진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 시절인 1월 당원권 정지 3년의 징계를 받은 상황이다. 또한 홍 대표는 지난 5.9 대선 패배 이후 보수 대통합을 천명하며 이들에 대한 당원권 정지 징계를 해제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친박8적’청산 vs
‘친박3적’ 정산

상황이 이렇다 보니 서의원과 최 의원이 선거로 선출된 국회의원인 만큼 당 차원에서 당협위원장직 박탈을 통해 사실상 출당 효과를 낼 수밖에 없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현재 진행중인 전국 당협위원장 당무감사를 통해 자연스럽게 서 의원과 최 의원을 비롯한 친박계 인사들의 당협위원장직을 박탈하자는 게 비박계의 속내다.

홍 대표를 비롯한 당 지도부는 당무감사를 시작하며 몇 가지 전제조건을 달았다. 일단 1차 물갈이 대상은 ‘무늬만 당협위원장’이다. 휴대전화만 등록해 놓고 지역구 관리 등 사실상 활동을 하지 않는 ‘유령당협’에 대한 정리에 들어갔다.

아울러 중앙당은 8월31일 전국 당협위원장들에게 지역구 유권자의 0.5%까지 책임당원을 추가로 확보하도록 지침을 내렸다. 일반·책임당원 배가운동을 실시하고 그 결과를 11월말에 발표하는 당협위원장 인선에 반영하겠다는 복안이다. 특히 청년·여성·직능 조직 확대에 방점을 찍고 각 지역별 최소 100~150명의 청년.여성 당원을 필수적으로 확보할 것을 주문했다.

명분은 대선 패배 이후 흐트러진 당 조직을 재정비하고 내년 지방선거에서 확실한 승리를 이끌겠다는 것이지만 이 또한 만만치 않은 실정이다. 친박계에서도 홍 대표가 친박계를 배제하고 자기 사람을 심기 위한 정지작업에 돌입했다고 보기 때문이다.

현재 자유한국당의 경우 253개 당협 가운데 현역 의원이 있는 지역구는 107개다. 이 지역을 제외한 원외당협위원장이 있는 지역은 146곳(공석 25곳)으로 절반 이상이다. 문제는 이들 원외당협위원장 다수가 친박계 인사가 차지하고 있다. 또한 자유한국당을 탈당했다 복당한 12명 의원의 지역구에 뿌리를 내린 기존 당협위원장들과의 갈등도 또 다른 뇌관이다.

인명진 전 새누리당 비대위원장과 정우택 원내대표는 올해 초 새누리당이 바른정당과 분당된 이후 사고지구당 60개 지역에 대해 당협위원장을 새로 공모해 선출했다. 탈당한 비박계 지역구 국회의원과 원외당협위원장의 자리를 채움으로써 당내에서 추가 탈당을 고려 중인 의원들에 대한 경고 차원 성격이 강했다. 신임 당협위원장이 친박계로 채워진 배경이다.

하지만 이은재 의원을 포함한 13명의 지역구 의원이 다시 복당해 한국당으로 오면서 기존 당협위원장들과 갈등이 폭발 직전이다. 특히 경기·인천의 경우 안성의 3선 김학용 의원, 안산 단원을 박순자 의원, 인천남갑 홍일표 의원과 황은성 안성시장, 임이자 비례대표 의원, 이중효 모디스코리아 대표이사가 각각 한 치 양보 없는 신경전을 벌이고 있다.

복당한 현역 지역구 의원들은 통상 현역 의원이 당협위원장을 맡는 게 지역구 발전이나 세 확산에 유리하다는 입장이지만 새로 임명된 당협위원장들은 지도부가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닌 정상적인 절차를 밟아서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한발 더 나아가 탈당했다가 복당한 인사들이 다시 당협위원장직을 다시 언급할 처지는 아니라고 선을 긋고 있다.

13개 지역뿐만 아니라 나머지 친박계가 다수인 47개 원외당협위원장들 역시 마찬가지다. 당 지도부는 당무감사를 통해 복당 의원과 새로 임명된 당협위원장의 갈등을 최소화하면서 자리를 정리해야 하고 나아가 친박계 인적 청산뿐만 아니라 친홍준표 인사들을 심어야 하는 3중고에 시달리고 있는 셈이다.

이에 11월까지 대대적인 당협위원장 교체를 목표로 하는 당무감사가 제대로 이뤄지기기 쉽지 않은 구조다. 공교롭게도 이 시기가 박 전 대통령의 1심 판결이 예정돼 있고 친박 인적 청산도 함께 이뤄져 홍 대표 진영과 친박 간 갈등이 최고조로 치달을 공산이 높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당내에서는 지방선거도 치르기 전에 당이 친박·비박 갈등으로 와해될 수 있다는 우려가 확산되고 있다. 당내 분란은 결국 바른정당과 보수 대통합도 물 건너가게 될 것이고 지방선거 패배는 불 보듯 뻔한 상황이다. 1여다야 구도로 치러진 지난 대선과 마찬가지로 지방선거까지 패배할 경우 보수 정당은 존립기반마저 무너질 수 있다는 위기감도 높다.

全당협위원장 전원사퇴 後
재공모 ‘새 피 수혈’

결국 당 일각에서는 친박 비박 현직 원외 등 복잡한 당내 사정으로 당 혁신이 진척을 보지 못할 거라면 차라리 253개 당협위원장들의 전원 사직서를 중앙당에 제출하고 백지위임하는 파격적인 시도가 이뤄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대두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당 관계자는 “혁신도 제대로 해야지 지금처럼 하다간 지방선거 전에 당이 망할 수 있다”며 “차라리 현역이건 원외건 친박이건 비박 할 것 없이 전국 당협위원장들이 전원 사퇴하고 중앙당에서 재공모를 할 필요가 있다”며 “당내외 인사들로 구성된 당협위원장 자격심사위를 구성해 당무결과를 토대로 재심사하고 자격이 안 되는 당협위원장 대신 젊은층과 여성층 등 혁신 세력을 끌어안는 파격적인 안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 인사는 “안철수 전 대표가 다시 돌아오고 바른정당과 더불어 혁신 경쟁도 벌여야 하는 만큼 내년 지방선거도 지난 대선의 재판이 될 수 있다”며 “보수 우파도 달라질 수 있다는 평가를 받아야 바른정당과 통합도 지방선거 승리가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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