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혐‧여혐으로 번지는 ‘성’ 대결

청와대 홈페이지 화면 캡처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여성 징병제’를 주장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에 11만 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동참했다. 과거부터 제기됐던 여성 징병제 신설 여론이 다시금 주목을 받으면서 해당 청원 댓글은 물론 사회관계망서비스(SNS)까지 다양한 반응이 올라오고 있다. 그러나 청원글로 인해 남성혐오, 여성혐오 싸움으로 번지고 있어 ‘성 평등’이 아닌 ‘성 대결’이 조장되는 상황이다.

해당 청원 글, 11만 서명 돌파···시작된 지 이틀 만에 ‘베스트 청원’
박주민 의원 “여성도 국방의무 지고 있어, ‘모병제’가 맞아”···서명 14일 마감


8일 청와대 홈페이지에 따르면 ‘국민청원 및 제안’ 게시판에서 베스트 청원 2위를 달리고 있는 여성 징병제 관련 청원이 이날 오후 1시 기준 11만9006명이 서명했다.

해당 청원은 ‘여성도 일반병으로 군대에 가야 한다’는 내용을 골자로 지난달 30일부터 국민청원을 시작했다.

해당 청원 글에는 “한국에서 추후, 모병으로 방향을 잡을지는 모르겠으나 지금 현 상황은 주적인 북한과 대적하고 있고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강대국에 둘러싸여 있기 때문에 불가피하게 징병을 유지할 수밖에 없다”면서 “(그러나 지금까지) 징병 의무는 남성에게만 부과됐다. 문제는 30년 넘게 저출산이 심각해 병역자원이 크게 부족해졌고 이 때문에 지금은 군 신체검사에서 95%에 가까운 인원이 현역으로 징집돼야 하는 문제가 발생했다”고 지적했다.

이어 “공익 가야할 사람이 현역 끌려가고, 면제여야 할 사람이 현역 혹은 공익으로 끌려가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는데도 정부에서는 부족한 병사 대신 간부를 증원하면 된단 식으로 간단히 말하고 있다”며 “(군 간부만 늘린다는 정책은) 잉여자원만 늘어나게 하는 것이다. 병사들이 해야 할 일을 도울 인원이 늘어난 것이 아니라 반대로 심각하게 부족해지다 보니 신체, 정신적 스트레스 및 체력소모가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해 이로 인한 큰 문제가 발생할 우려가 크다”고 전했다.

또 “여성들도 남성들과 같이 일반병으로 의무 복무하고, 의무를 이행한 국민이라면 남녀 차별 없이 동일하게 혜택을 주는 것이 옳다”면서 “신체 차이로 징병에 차별을 둔다면 여성들은 남녀 간 취업 차별에 할 말이 없어지는 꼴이다. 하루빨리 정부 차원에서 (여성의 국방 의무 이행에 관한) 계획을 세워 진행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해당 청원은 시작된 지 이틀 만에 ‘베스트 청원’에 올랐다. 또 사회관계망서비스와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 등에서 찬반 논란이 거센 상황이다.
 
“혐오 논란
성별 양극화 심해져“

 
사회관계망서비스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지금의 남성 징집 체제는 여성 차별이다. 여성에게 최소한의 전시 생존능력조차 주지 않는다는 것은 진정한 여성 차별이 아닌가 생각된다” “교련이 있던 시절처럼 역량이 되면 (여성에게도) 군사 훈련을 시켜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응급 처치 등의 보조 훈련을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군대에서도 출산 휴가, 육아 휴직 등의 복지가 잘 돼 있고 임신하면 근무지 조정도 된다. 그리고 더 개선 중이고 발전하고 있는데 군대 못 갈 이유가 없지 않느냐” “남성은 군대, 여성은 출산이라는 논리는 안 했으면 한다. 군대는 의무고 출산은 선택이다. 해당 청원이 반영되지 않더라도 남성들은 여성보다 2년가량 군대로 인해 뒤처지다 보니 사회로 복귀할 때 여성과 동등한 선상에서 취업할 수 있도록 가산점, 취업 장려금 지급 등이 체계적으로 이뤄져야 한다”는 의견과 “여성이 군대에 가면 무엇이 달라질까. 신체 조건이 다르고 체력적으로 남자가 군 복무에 더 적합하니까 가는 것인데 이성적인 판단 바란다” “여성에게 생존법을 가르치는 것은 동의하지만 남녀 평등이라는 명목으로 여성을 전쟁터로 떠밀고 더 많은 사상자들을 내는 길은 동의할 수 없다. 성별을 떠나 생물학적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사회에서도 직장 상사‧동료에게 성추행을 당하는 여성들이 있는데 여성이 군대에 가면 성폭행 또는 성추행 등의 범죄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리고 이런 범죄가 벌어져도 신고하기 꺼려지는 상황이 오게 될 것” 등의 의견이 엇갈렸다.

전문가들은 남성 병역 의무 사회에서 여성 징병제 청원 요구가 정당성을 가질 수는 있지만 여성혐오와 남성혐오의 논리로 흘러갈 경우 성별 양극화가 더욱 심해질 우려가 있다고 지적한다.

지난 7일 시민들의 다양한 의견을 듣기 위해 광화문 광장으로 향했다.

서울시 중구에 거주하는 A(32‧남)씨는 “현실적으로 여성 징병제보다는 여성 국방세가 더 실용적일 것 같다. 여성 국방세는 여성이 군대를 안 가는 대신 일반병의 월급을 지원해주는 시스템”이라며 “병사들의 월급이 높지 않아 사회 지위적으로 낮게 평가하는 시선이 많기 때문에 여성 국방세로 월급을 급격히 올리면 반발하는 남성들이 줄어들 것 같다”고 전했다.

서울시 양천구에 거주하는 B(51‧여)씨는 “국가가 군인에 대한 처우를 제대로 해주지 않던 부분이 이런 양극화를 불러일으킨 것”이라며 “이러한 부분이 군인(병사) 비하로 이어지고 그에 대한 반박으로 여성도 국방의 의무를 져야 한다는 의견까지 번지고 있는 듯하다. 국가가 나서서 해결하지 않으면 논란은 사그라들지 않을 것으로 사료된다”라고 말했다.

서울시 성동구에 거주하는 C(27‧여)씨는 “현재 한국과 북한의 관계가 국가적인 비상사태로 발전될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 여성 징병제가 시행될 당위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여성 징병제가) 시행되려면 많은 예산과 고민들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해당 청원이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면서 박주민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과거에 한 매체와 진행한 인터뷰도 함께 주목받고 있다. 인터뷰 내용은 ‘여자들도 모두 병역 의무를 지게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한 답변이다.

박 의원은 “그게 그렇게 필요한가. 국방의 의무는 모든 국민이 지는 것인데, 병역의 의무만 남자가 지는 것이고 병역의 의무는 국방의 의무의 좁은 분야”라고 설명했다.
이어 “국방이라는 개념은 보다 더 다양하고 다채롭다. 그런 차원에서 봤을 때 여성이 ‘국방의 의무’를 안 한다고 보긴 어렵다”고 덧붙였다.

또 박 의원은 “모병제가 맞을 것 같다. 현대 군은 무기가 첨단화되면서 그 무기를 다루고 사용하는 데 좀 더 많은 기간이 필요하지만 병영 기간이 짧아지고 있어서 상황이 맞지 않다”라며 “그런 상황과 역행되게 다 군대를 가게 만들자는 건 올바른 해결책이 아닐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한편 여성 징병제 청원 글의 온라인 서명 접수는 오는 14일에 마감한다. 청와대가 이 청원에 응답할지, 아니면 다른 대응책을 내놓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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