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하듯 만들어지는 적폐청산위원회 ‘新적폐 될까 우려’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북핵 위기로 우리나라를 둘러싼 국제사회가 요동치고 있다. 하지만 국내 정부 및 국민들은 침착하게 대응하고 있다. 오히려 각 정부 부처들은 북핵위기보다 적폐 청산에 더 신경을 쓰는 모습이다. 문재인정부의 제1 슬로건은 ‘적폐 청산’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부터 적폐 청산을 외쳐 왔다. 그런 만큼 각 정부 부처에서는 새 정부 수립 이후 앞 다퉈 적폐 청산을 위한 태스크포스를 구성했다. 전 정권에서 이뤄진 잘못된 정책들을 살펴보고 이에 가담한 사람들에게 책임을 묻겠다는 것이다. 하지만 정치 보복 논란이 일면서 적폐청산태스크포스가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지 걱정하는 사람도 많다.

잘못된 정책 살펴보고 가담자에 책임 묻겠다는데
‘죄인’ ‘부역자’ 낙인에 나서려 하는 사람 없을 것


적폐 청산이 문재인정부의 방침이다 보니 각 부처에서는 적폐청산태스크포스를 시작으로 각종 적폐청산위원회가 출범하기 시작했다. 적폐청산위원회 만들기 유행 바람이 불었다고 할 정도다. 현재 교육부, 통일부, 외교부, 문체부, 법무부, 고용부, 국정원 등에서는 적폐청산TF를 출범하거나 적폐청산위원회를 운영·검토하고 있다.
 
댓글 사건, 보수단체 지원 등
청산할 것 많은 국정원

 
적폐 청산에 가장 적극적인 부처는 국가정보원이다. 국정원은 이미 지난 6월 19일 국정원개혁발전위원회를 출범하며 적폐청산TF를 본격 가동했다.

당시 서훈 국정원장은 “위원회의 출범은 제2기 국정원을 여는 역사적인 과정의 출발점이 될 것”이라며 “이번이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국내정치와 완전히 결별할 수 있는 개혁 방향을 제시해 달라”고 말했다.

국정원개혁발전위는 국내정치 개입을 근절하겠다는 서 원장의 의지가 담긴 조직 쇄신책이다. 서 원장은 취임과 동시에 정보담당관제 폐지와 함께 개혁발전위 출범을 약속했다. 적폐청산TF는 국정원개혁발전위 아래에 조직쇄신TF와 함께 설치돼 운영된다.

적폐청산TF는 그동안 제기된 각종 정치개입 의혹 사건에 대한 조사를 담당한다. 2012년 대선 댓글 사건, 국정원 보수단체 지원 의혹, NLL대화록 공개 사건 등이 대상이다.
국정원은 적폐청산TF 구성 후 국정원개혁위원회는 8월 3일 국정원이 과거 민간인 댓글부대를 운영한 사실을 밝혀냈다고 발표했다.

당시 국정원 개혁위원회가 적폐청산TF로부터 보고받아 공개한 바에 따르면 국정원은 원세훈 전 원장 취임 이후 심리전단에서 2009년 5월부터 2012년 12월까지 ‘알파팀’ 등 민간인으로 구성된 사이버 ‘외곽팀’을 운영했다. 국정원은 관계자 30여 명을 검찰에 수사 의뢰했다.

국정원으로부터 자료를 넘겨받은 검찰은 공공형사부와 공안2부 소속 검사로 구성된 국정원 댓글 수사팀을 구성해 본격 수사에 착수했다. 공공형사수사부는 이 사건을 맡아, ‘댓글부대’ 운영 등에 대해 주도적으로 조사를 벌이게 된다. 여기에 공안2부 검사들이 합쳐서, 수사팀 규모는 10여명으로 꾸려졌다. 두 부서의 검사 총 인원이 12명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두 부서의 주력 대부분이 투입되는 셈이다.

국정원 댓글 수사 ‘사령관’은 윤석열 서울중지검장이다. 박찬호 2차장과 진재선 공안2부장, 김성훈 공공형사수사부장이 지휘라인에 있다. 사실상 국정원 재수사팀이 구성된 것이다.

이들은 대부분 2013년 국정원 댓글 수사 경험이 있던 인물들이다. 특히 윤 지검장은 국정원 댓글 수사와 ‘악연’이 깊으며, 진재선·김성훈 부장검사 모두 당시 수사에 참여했던 검사들이다.

윤 지검장은 지난 2013년 국가정보원 댓글 사건 수사를 이끌다가 검찰 수뇌부에 반기를 든 전력이 있다. 국정원 댓글 사건 수사팀장이었던 윤 지검장은 당시 원세훈 국정원장에게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를 적용하고 구속기소 의견을 검찰 수뇌부에 전달했다.

하지만 당시 황교안 법무부장관이 박근혜정권의 정당성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수사팀의 의견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러자 윤 지검장은 검찰 수뇌부의 반대를 무릅쓰고, 국정원 직원들에 대한 체포 및 압수수색 영장을 집행했다.

이에 법무·검찰 수뇌부는 보고와 절차를 지키지 않았다는 이유로 당시 윤 수사팀장에게 정직 1개월의 징계와 좌천성 인사를 단행했다. 이어 윤 지검장을 비롯한 수사팀 검사들도 한직으로 좌천되는 등 고초를 겪었다. 결국 윤 지검장은 약 4년 만에 국정원 댓글 수사를 다시 맡으면서 이전 정권의 치부를 정조준하게 됐다.
 
위안부 합의 들춰보는
외교부, 국제법 검토까지

 
외교부에서는 지난 7월 31일 한·일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문제 합의 과정 전반을 되짚어보기 위해 장관 직속 TF를 출범했다.

위안부 TF는 위안부 합의 관련 협의 경과 및 합의 내용 전반에 대한 사실관계를 확인하는 데 집중할 계획이다. 위안부 합의가 막바지에 갑작스럽게 속도를 낸 배경, ‘불가역적’ 문구와 소녀상 관련 내용이 포함된 배경 등도 들여다 볼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2014~2015년 한일 양국이 위안부 문제를 놓고 모두 12차례에 걸쳐 가졌던 ‘국장급 협의’도 중점 확인한다는 방침이다. 위안부 합의에 따라 설립된 화해치유재단도 대상에 포함된다. 국제법상 문제가 있는지 없는지도 점검 대상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당시 외교부뿐만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와 관련 서류 등도 모두 들여다보겠다는 방침이다. 또한 보안을 준수하는 선에서 외교문서도 검토 대상에서 배제하지 않을 계획이다.

위안부 TF는 피해자 입장에서 관련 협의 과정을 복기하고, 이 과정에서 피해자와 관계자들의 의견도 청취해 나갈 방침이다. 위안부 TF는 올 연말까지 최종 결과를 도출하는 것을 목표로 세웠다. 최종 결과는 대외에 공개할 예정이다.

한편 외교부는 위안부 TF 출범에 앞서 관련 사실을 일본 측에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번 위안부 TF가 한일 양국 현안에 영향을 미칠 거라는 우려가 없지는 않지만, 정부는 과거사 문제와 한일 양국 간 주요 현안은 분리해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탈검찰화’ ‘공수처’ 속도
법무부, 검찰과 마찰 최소화

 
법무부는 지난달 9일 법무·검찰개혁위원회를 발족했다. 학계, 언론계, 법조계, 시민단체 인사들로 구성된 위원회는 앞으로 법무·검찰의 모습을 객관적으로 진단해 국민 눈높이에 맞는 개혁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법무부장관에게 권고하는 활동을 하게 된다.

법무부는 장관 직속 검찰개혁 추진기구인 법무·검찰개혁단을 설치해 위원회 활동을 지원할 예정이다.

위원회는 앞으로 법무부 ‘탈(脫)검찰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전관예우 근절, 검찰 인사제도 공정성 확보 방안 등에 대해 논의할 계획이다.

지난달 말 위원회는 ‘법무부 탈검찰화’에 대한 첫 권고안을 발표하며 탈검찰화를 평검사까지 확대 완료하는 ‘데드라인’을 2019년으로 못 박았다. 이를 위해 위원회는 ‘법무부와 그 소속기관 직제(대통령령) 및 그 시행규칙(법무부령)’을 신속히 개정해야 한다고 권고했다.

이 밖에 위원회는 법무부 범죄예방정책국장, 기획조정실장 등 실국장 자리와 대변인, 법무심의관, 감찰담당관 및 법무실 · 범죄예방정책국·인권국 소속 과장 직위에 외부인사를 임명하는 방안을 2018년 인사까지 마무리하라고 명시했다.

법무부에 파견된 평검사의 경우 법무실·범죄예방정책국·인권국 소속 평검사를 일반직 공무원(외부 인사 포함)으로 충원하는 방안을 2018년 인사 시기부터 진행해, 2019년 인사 시기까지 완료할 것을 권고했다.

한편 검찰도 자체 개혁을 위한 개혁위원회를 이달 중 발족하기 위해 본격적인 논의에 들어갔다. 검찰개혁위원회가 법무·검찰개혁위원회와 중복되는게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박상기 법무부 장관은 “수사와 관련한 것은 검찰개혁위에서 해야 하고, 법무와 검찰 전체를 아우르는 제도적인 부분은 법무부에서 해야 할 일”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어 박 장관은 “검찰에서는 구체적으로 수사 관련해서 세부적인 개혁방안들 마련할 거라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문체부, 블랙리스트
피해 복원 직권조사

 
블랙리스트 파문으로 내홍을 겪었던 문체부는 7월 31일 블랙리스트 진상조사위원회를 출범시켰다.

위원회는 기존 블랙리스트 관련 특검과 감사원 결과 등보다 조사 범위를 확대해 진상을 규명하는 한편 부당한 처우를 받은 문화예술계 사안들을 복원하는 작업 등을 우선적으로 해 나가기로 했다.

21명의 위원으로 구성된 위원회는 도종환 문체부 장관과 원로 민중화가인 신학철 화백이 이끈다. 또 3개의 소위원회 중 진상조사소위는 조영선 변호사, 제도개선소위는 이원재 문화연대 문화정책센터 소장, 백서발간소위는 연극평론가인 김미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가 각각 위원장을 맡는다.

운영 기간은 구성일 이후 6개월을 원칙으로 하고 연장이 필요할 경우 위원회 의결을 거쳐 추가로 3개월씩 연장할 수 있도록 했다. 당초 양측은 진상조사위의 위상을 문체부 훈령으로 하느냐 대통령령으로 하느냐를 두고 다소 이견을 보였지만 애초 문체부의 구상대로 훈령으로 하기로 했다.

위원회는 세월호 참사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다이빙벨’ 상영 등을 놓고 불거진 부산국제영화제 외압문제에 대해 직권조사에 나서기로 했다. 이와 함께 서울연극제 대관 배제 및 아르코 대극장 폐쇄 사건도 첫 직권조사 사업으로 결정됐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조사 시작
재발방지대책 마련 나선 교육부

 
교육부는 지난 6일에서야 사회부총리 직속으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와 이를 뒷받침하는 진상조사팀을 설치·운영한다고 밝혔다.

7일에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를 지원하는 진상조사팀을 출범했다. 진상조사위는 역사학자, 역사교사, 시민사회, 법조인, 회계사, 역사 관련 정부 기관 및 공공기관 등의 주요 인사 15명 내외로 구성된다.

진상조사위는 진상조사팀에 주요 조사 과제를 제시하고,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을 결정·집행하는 과정중 절차상 위법이나 부당행위 여부 등을 들여다보게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예산 편성과 집행 과정, 조직 구성과 운영 등의 적절성도 확인하기로 했다. 조사 결과가 나오면 이를 검토해 처리 방안을 심의하고, 재발방지 대책을 마련하게 된다.

진상조사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경위, 의사결정 과정 등에 대한 주요 사실 관계를 파악하고 책임 소재 규명, 재발 방지 대책 수립 등에 나서게 된다.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 백서(가칭)’도 발간할 계획이다.

김상곤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관련 진상 조사는 적폐를 청산하고 교육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한 중요한 첫걸음”이라면서 “진상조사와 재발방지를 위한 후속조치를 통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이 해소되고 사회적 통합에 기여할 수 있길 바란다”고 밝혔다.
 
잘못된 것 바로잡는 게
적폐청산위가 할 일

 
사회 발전을 위해 적폐는 꼭 청산 돼야 한다. 하지만 각 부처별로 운영되고 있는 적폐청산위원회가 ‘전 정권의 정치색 지우기’가 목적이라면 문제가 있다.

정부의 정책은 연속성이 생명이다. 하지만 전 정권에서 추진하던 정책이라고 해서 모두 다 취소한다면 국정을 수행하는 공무원들이나 국민들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게다가 이러한 정책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모두 ‘죄인’ ‘부역자’라는 낙인을 찍어 불이익을 준다면 그 누구도 나서려 하지 않을 것이다.

각 부처별 적폐청산위원회는 이제 막 활동을 시작했다. 앞으로 어떤 적폐가 새롭게 드러날지 모를 일이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위원회 활동의 목적이 잘못된 것을 바로잡는 것이어야지 정치적 목적을 갖고 누군가를 처내기 위해서 운영돼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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