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당 체제는 우리 정치사에서 매우 실험적 상황
- 정부 여당 달라진 정치환경 긴장감 더욱 높여야


지난 2016년 총선에서 ‘국민의당 약진’은 한국 정당사에서 매우 주목할 만한 결과물이었다. 진보 보수 이념 지형에서 ‘새로운 정치’를 표방한 ‘제3세력’과 ‘호남’이라는 ‘지역’이 손을 잡고 만든 정당에 대한 국민적 지지는 생각보다 컸다.

정주영-박찬종-이인제-정몽준-안철수 등으로 이어지는 ‘제3세력’에 대한 지지는 대략 13∼15% 정도의 크기를 갖는 것으로 추정된다. ‘제3세력 지지층’은 중도 표방과 탈정치의 성향적 특징을 갖는 것으로 분석된다.

한편, 지난 겨울 촛불민심에 의한 대통령 탄핵이 완성된 이후 가장 먼저 일어난 첫 번째 변화는 보수의 분열이었다.

서울대 강원택 교수는 지난 5.9 대선 결과를 분석하면서 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가 받은 24%와 바른정당 유승민 후보가 받은 6%를 합쳐도 지난 1987년 대선 당시 민정당 노태우 후보가 받은 36%에 훨씬 못 미치는 득표율이었음을 근거로 들면서 이제 보수는 근본적인 변화를 모색해야 할 시점에 봉착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국 보수의 근간을 이루는‘박정희 이데올로기’란 기둥뿌리가 그 딸인 박근혜 대통령이 탄핵당함으로써 함께 뽑혀나갔다는 점은 보수 분열의 결정적 배경이 되고 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존재는 공화당과 신민당을 뿌리로 두는 대한민국 보수-진보 양당 체제에 균열을 가져올 것이고 영남, 호남으로 이어지는 지역주의에도 일정 정도 변화의 바람을 몰고 올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지난 9월 8일~9일 이틀 동안 전국 유권자 1,01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한국사회여론연구소(KSOI) 정당지지율 조사를 보면 더불어민주당 47.9%, 자유한국당 11.9%, 바른정당 6.6%, 정의당 6.3%, 국민의당 4.9%, 기타/지지정당없음이 22.4%로 더불어민주당 지지율이 압도적 우위를 선점하고 있는 가운데 야 4당 지지율 합이 29.7%인 것으로 조사되었다. [표본오차 : 95% 신뢰수준에서 ±3.1%p, 응답률 : 10.9%, 표본추출 유선전화조사(19.8%)+무선전화조사(80.2%)]

하지만 정당지지율과는 별도로 더불어민주당, 자유한국당, 국민의당, 바른정당, 정의당 등 원내 유력 5개 정당으로 구성된 현재의 5당 체제가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중심의 이전 양당 체제보다 더 민의의 다양성을 대변한다는 국민적 인식이 있는 것 같다.

지난 11일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인준안이 국회에서 부결됐다. 총 293명 중 찬성 145표, 반대 145표 기권 1표 무효 2표. 무효표 2표가 찬성표 였다면 인준안은 통과되었을 것이다. 언론에서는 누가 무효표를 던졌는지 취재에 열을 올렸고 각 당에서는 자당 내에서 이탈자가 있었는지를 점검하느라 분주했다.

이번 김이수 헌법재판소장에 대한 인준안 부결 풍경은 현재의 여소야대 5당 체제에서는 자주 보게 될 모습이다. 오히려 높은 대통령 지지도와 정당 지지도에 가려져 ‘의석수’의 위력이 간과된 면이 있었는데 이번 부결 과정을 통해 정부 여당은 ‘뜨끔한 맛’을 된통 본 셈이다.

사실 5당 체제는 우리 정치사에서 실험적 상황이 아닐 수 없다. 특히 협치의 기술이 발달하지 않은 현재의 의정활동 문화에서 5당 체제는 국정운영 동력을 약화시키는 요인이 될 소지가 크다.

더구나 지난 대선 당시 문재인 대통령과 일합을 겨뤘던 각 당의 대선 후보들이 국정운영 첫해에 그것도 ‘허니문(honeymoon)’기간 중에 당의 총사령관으로 원대 복귀한 상황 역시 초유의 일이다.

대개의 경우, 대선 후보 경쟁자들은 당선인의 원할한 국정운영을 위해 한동안 외국에 나가 있거나 칩거의 생활을 보내며 조용히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겨우 백일이 지난 정부 여당에 대해 지난 대선 경쟁자들이 회초리를 들겠다고 나서는 상황이다. 야 4당의 이런 모습은 대통령 지지도를 더 강화시키는 방향 또는 통합과 협력의 리더십을 보여주지 못하는 정부 여당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는 방향 두 가지 중 하나로 귀결될 수밖에 없는데 취임 초에는 전자의 흐름으로 갈 가능성이 높다.  

지금의 야 3당에는 촛불민심이 내준 숙제가 있다.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은 기둥뿌리가 뽑힌 보수의 빈자리를 어떤 내용으로 채워야 하는가에 대한 답안지를 내야 한다. 국민의당 역시 무늬는 야당이지만 그 당의 이념 성향이 보수인지 중도인지 진보인지 무척이나 헷갈리는 정체성에 대해 스스로의 답을 내야 한다. 안철수 대표의 대통령 당선을 위해 모여 있는 당이란 이미지로는 집권의 길을 가기 어렵다.  

아울러 이번 부결 사태와 같은 상황이 반복적으로 나온다면 청와대 정무라인과 민주당 원내대표 중 어느 쪽에서 책임을 져야 하냐 라는 공방이 거세질 수밖에 없다. 그것은 결국 당청의 균열 요인이 될 것이다.   

지금의 여소야대 5당 체제에 대한 실험은 향후 3년간 이어질 전망이다. 문재인 정부 중간평가가 될 2020년 총선은 현재의 5당 체제에 대한 평가도 함께 이뤄지는 선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대한민국 정치의 명운을 가를 진검 승부가 2020년에 이뤄질 것이다.

때문에 정부 여당은 긴장감을 더욱 높여야 한다. 달라진 정치 환경에 대해 보다 깊이있는 통찰과 새로운 접근법을 고민해야 한다. 높은 지지율에 가려진 이면을 볼 수 있어야 하는데 당청 모두 뒤통수를 맞고 말았다. 그런 면에서 이번 인준 부결은 몸에 좋은 쓴 약을 먹은 것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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