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방법원 전경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검찰과 법원의 영장갈등이 점입가경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4일 증거인멸을 지시한 혐의로 구속영장이 청구된 KAI 박모 상무 영장을 법원이 기각하자 한동훈 3차장 명의로 입장문을 내고 “형사소송법 취지를 감안할 때, 영장 기각 사유를 수긍하기 어렵다”며 공개적으로 항의 뜻을 밝혔다. 검찰은 지난 8일에도 양지회 전 간부들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되자 “사법 불신이 우려된다”며 강력히 반발했었다. 문재인정부가 강력한 사법 개혁을 주문하고 있는 가운데 터져 나온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단순한 알력을 넘어 신구적폐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모양새다.

KAI 수사 관련 구속영장, 5번 청구해 3번 기각
법원, 검찰 영장 청구에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는 추세


최근 검찰이 적폐 청산, 인사비리 등으로 구속영장이 신청된 피의자들이 법원으로부터 줄줄이 영장이 기각되면서 수사에 차질을 빚고 있다.

검찰은 지난 7월부터 KAI의 경영 비리에 대한 수사를 벌이고 있다. 수사의 초점은 한국형 기동헬기 수리온 등을 개발하는 과정에서 부실 개발 및 원가 부풀리기가 벌어졌나 하는 의혹이다. 지난 인사에서 서울중앙지검 새 수뇌부로 입성한 한동훈 3차장이 지휘하는 첫 대규모 경영비리 수사로 볼 수 있다.

KAI 수사 관련 구속영장 기각은 이번이 3번째다. 검찰은 5번의 구속영장 청구에서 2번만 영장을 발부받은 것이다.

국정원 댓글사건도 마찬가지다. 검찰은 지난 8일 법원에 공직선거법 위반 공범 혐의로 양지회 전직 간부 노모씨, 증거은닉 혐의로 현 간부 박모씨 등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구속영장도 모두 기각됐다.

법원에서는 영장기각에 대해 “증거인멸죄가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 “도주 우려가 적다” 등의 이유로 구속영장을 기각했다. 하지만 검찰은 계속되는 영장기각에 법리적 하자가 있다며 반발하고 나섰다.
 
계속되는 영장 기각
수사 차질 우려

 
KAI 박모 상무 영장기각에 대해 법원은 “증거인멸죄가 성립하려면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해야 하는데 이 사건에서 증거인멸 지시를 받은 사람은 자신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한 것으로 볼 여지가 있다”며 “타인의 형사사건에 관한 증거를 인멸했다는 점이 충분히 소명되었다고 보기 어렵다”고 구속영장 기각 사유를 설명했다.

다시 말해 박 상무에게 증거인멸 교사죄를 적용하려면, 부하직원의 증거인멸죄부터 우선 입증돼야 하는데 이런 전제가 성립하지 않은 만큼 검찰의 영장청구는 받아줄 수 없다는 게 법원 판단인 것이다.

이에 대해 검찰은 “증거인멸죄는 자기가 아닌 타인의 형사사건에 대한 증거를 인멸한 경우에 성립되지만, 증거인멸 교사죄는 인멸 대상인 증거가 자기가 처벌받을 형사사건에 대한 경우에도 성립된다”고 반박하고 있다.

검찰은 “박 상무는 재무제표 작성을 담당하는 회계부서와 직접 관련이 없어 분식회계로 형사처벌 받을 가능성이 없는 개발부서 실무직원들에게 직무상 상하관계를 악용해 증거인멸을 시켰다”며 “검찰에 제출할 서류 중 경영진과 회계담당자들의 분식회계 혐의와 직결되는 중요 증거서류를 직접 골라내 파쇄하도록 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전 영장전담 판사
판단 기준과 차이 많다”

 
검찰은 이미 지난 8일 법원의 잇따른 구속영장 기각 결정에 대해 “사법제도 자체에 대한 불신으로 귀결될까 우려된다”라고 반발했다. 또 “최근 일련의 구속영장 기각은 이전 영장전담 판사들의 판단 기준과 차이가 많은 것으로서, 납득하기 어렵다”라는 입장을 냈다.

당시 법원은 “불필요하거나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이라고 불쾌함을 감추지 않았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법은 8일 입장 자료를 통해 “영장전담 법관은 형사소송법서 정한 불구속 수사의 원칙 및 구속 사유에 따라 개별 사안의 기록을 검토하고 영장실질심사 재판을 거쳐 공정하면서도 신중하게 구속영장 재판을 수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개별 사안에서 도망이나 증거 인멸의 염려 등 구속 사유가 인정되지 않음에도 수사의 필요성만을 앞세워 구속영장이 발부되어야 한다는 논리는 헌법과 형사소송법의 대원칙에 어긋난다”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서울중앙지검이 개별 사건에서의 영장 재판 결과에 불만이 있다는 이유로, 불필요하거나 도를 넘어서는 비난과 억측이 섞인 입장을 공식적으로 표명하는 것은 어느 모로 보나 매우 부적절하다”라고 강조했다.

당시 법원은 “(검찰의) 부적절한 의견 표명은 향후 다른 사건에 영향을 미치려는 저의가 포함된 것으로 오인될 우려가 있다는 점을 밝혀둔다”고까지 말했다. 당시 사법부 내 권력싸움 양상으로 치닫는 것으로 보였다.

하지만 윤석열 서울중앙지검장이 13일 기자단과의 오찬에서 “(영장 기각 유감 표명에) 숨은 뜻이 없다”는 취지의 입장을 내놓았다. 싸움을 자제하는 모습이었다. 그러나 14일 법원이 검찰의 영장청구를 또다시 기각하면서 논란이 재점화 됐다.
 
검찰 반발 이례적
신구 적폐 싸움 지적도

 
검찰이 법원의 법리 해석에 대해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것은 극히 이례적인 일이다. 그런 만큼 최근 법원과 검찰의 갈등은 심상치 않다. 일각에서는 이들의 갈등을 두고 신구 적폐싸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법원과 검찰에는 아직도 구 정권의 적폐 세력들이 곳곳에 남아있다. 이들이 새 정부가 시도하는 사법부 개혁을 방해하기 위해 잡음거리를 만든다는 얘기다.

하지만 법조계에서는 법원과 검찰의 법리공방에 대해 애매한 부분이 있다고 말하기도 한다. 증거인멸죄는 통산 타인의 범죄에 대해 증거인멸을 했을 때 적용하는 범죄다. 피의자가 자신의 범죄행위에 대해 증거를 인멸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따로 처벌하지 않는다는 취지다.

박모 상무의 경우 개발팀 직원에게 자신에게 적용되는 혐의인 분식회계 관련 증거인멸을 시켰다면, 박 상무에게 증거인멸죄를 적용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여기에 이번 영장청구의 경우 적용된 혐의가 증거인멸 교사죄라는 점에서 더 모호한 점이 있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논쟁이 나오는 이유 자체를 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법원이 검찰의 영장 청구에 지나치게 엄격한 잣대를 들이대고 있다는 것이다. 과거 기준이나 관례에 따라 충분히 영장이 발부될 만한 사안에도 기각이 잇따른다는 검찰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법조인들도 적지 않다.

실제 서초동 한 변호사는 “이번 기각만 놓고 보자면 충분히 애매한 부분이 있다”며 “박 상무가 자신의 죄에 대해 증거인멸을 하려고 했냐, 증거인멸이냐 증거인멸교사냐 등을 놓고 다툴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변호사는 “그러나 최근 기각 사유를 보면 종전에는 충분히 발부할 만했던 사안을 기각한다는 느낌이 있다”며 “법 적용에 일관성이 없다는 점에서 검찰 입장에서는 의아해할 만하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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