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석유공사‧가스안전공사 수장들 ‘왜 이러나’

왼쪽부터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문재인 정부의 내각 인사가 사실상 마무리되면서 수백 개에 달하는 공공기관장에 대한 물갈이가 본격화되는 양상이다. 특히 에너지 공기업에 대한 논란이 뜨겁다. 한국석유공사‧가스안전공사 수장의 비리 의혹이 수면 위로 떠올랐기 때문이다.

감사원,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측근 특혜 채용 ‘사실’···노조 ‘적폐’ 주장
검찰,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 구속···추가 비리 의혹, 줄줄이 밝혀지나


한국노동조합총연맹 울산본부와 한국석유공사 노동조합(이하 노조)은 지난 7월 4일 고용노동부 울산지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한국석유공사에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특별근로감독을 촉구했다.

이들 노조는 “우리나라 대표 공기업 중 하나인 한국석유공사에서는 각종 부당노동행위와 노조파괴 공작이 벌어지고 있다”며 “사측의 측근채용 비리의혹, 비선에 의한 밀실경영, 투기자본에 자산매각 등에 맞서 지난해부터 치열하게 투쟁 중”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측은 조합원을 승진에서 배제하고 쟁의행위 준비기간 조합원 자격을 박탈하거나 교섭 도중 임금을 일방적으로 삭감하는 등 노조를 탄압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노조는 “최근에는 사내 전산망에서 노조 게시판을 폐쇄하고 메일을 무단 삭제하는 등 노조 와해공작을 벌이고 있다”며 “노동존중사회 실현을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할 공공기관 노조의 현실”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노조는 한국석유공사에서 벌어지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이 특별근로감독을 통해 위법행위를 처벌해 줄 것을 요구했다. 이에 고용노동부 울산지청은 한국석유공사를 대상으로 특별근로감독을 진행 중이다.

앞서 지난해 2월 새로운 사장 자리에 오른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은 취임 직후부터 측근 특혜 채용 논란에 휩싸였다. 경영관리본부장과 기획예산본부고문, 리스크고문, 기술고문을 임명하는 과정에서 김 사장과 오래된 지인들을 특혜 채용했다는 것이다.

노조에 따르면 이들 4명 중 3명은 현대그룹에서 같이 근무했으며 한 명은 고등학교‧대학교 동문이다. 또 경영관리본부장과 기획예산본부고문은 채용 계획이 확정된 당일 채용됐다. 전문계약직 채용이지만 경력증명서와 학력증명서를 제출하지 않고 몇몇은 전화로 면접이 이뤄졌으며 면접 기록도 남아 있지 않은 것이 내부 감사 결과에서 드러났다.

한국석유공사 감사실은 채용 후보자들의 증명 서류 감사가 이뤄진 지난해 9월까지 경력증명서, 학력증명서 등이 구비되지 않아 “규정을 위반한 사실이 인정된다”고 채용절차의 부적성을 지적했다.

그러나 김 사장은 직원공고문을 통해 “두 명의 채용은 노조위원장과도 이력서를 가지고 사전에 상의한 바 있는데 이제 와 비선 채용이라고 주장하니 당황스럽다”며 “사장으로서 투자회사의 관리문제 파악, 해결을 위해 취임 초기 사장을 도와줄 사람을 채용할 수밖에 없었다”고 해명한 바 있다.

한국석유공사 노조가 김 사장에 대해 ‘적폐’라고 밝혔던 사항은 ▲성과연봉제 강제 도입을 위한 불법행위 ▲학교동문·현대그룹 출신 등 측근 4명 특혜 채용 ▲울산사옥 매각 시 투기자본 특혜 ▲외유성 출장과 7성급 호텔 숙박 등이다.
 
잇따른 의혹
수면 위로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의 측근 특혜 채용 의혹이 감사원의 감사 결과 사실로 드러나면서 노동조합의 사장 퇴진 압박이 거세다.

지난 5일 한국석유공사 노동조합은 감사원의 결과 발표 직후 보도자료를 내고 정부가 김 사장을 해임할 것을 촉구했다.

이날 감사원은 ‘공공기관 채용 등 조직 인력운영 실태’ 조사를 통해 김 사장이 전문계약직 특별채용에 부당하게 개입해 자신의 후배를 채용한 비위행위를 적발했다. 그러면서 주무부처인 산업통상자원부와 기획재정부에 인사조치가 필요하다며 비위 사실을 통보했다.

감사원의 감사 결과에 따르면 김 사장은 작년 2~3월 인사담당자에게 전 직장 후배와 고등학교‧대학교 후배의 이력서를 직접 건네며 1급 상당의 계약직으로 채용하도록 지시했다. 이 과정에서 ‘단시일(10일) 내에 채용’, ‘근무무조건 조속히 협의’ 등을 요구한 것이 확인됐다. 따라서 두 명의 후배는 별도의 채용공고나 면접 없이 비공개로 채용된 것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김 사장은 감사원의 발표 직후 자신의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장문의 글을 올려 감사 결과에 대해 반발했다.

그는 “감사원의 지적은 절차상 위반이 있었다는 정당한 지적일 것”이라면서도 “지난 전문계약직 채용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시 같은 상황에서 결정한다면 같은 결정을 할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해당 채용이 공사의 구조조정과 정상화를 위해 꼭 필요했고 공사에 큰 도움이 됐다”며 “공사의 규정을 어기면서 채용을 하라고 강요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또 “노조위원장은 두 명 외에는 더는 채용하지 말아 달라고 부탁도 했다”면서 “그런데 6개월 이상이 지난 후 공사의 감사실이 채용 절차상의 문제를 지적하자 시비를 걸고 사장을 공격하고 있다”고 전했다.

감사원의 결과에 탄력을 받은 한국석유공사 노조는 지난 12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김 사장의 경영농단이 멈추지 않고 있고 사실상 경영이 마비돼 버렸다”며 김 사장의 즉각 해임을 촉구했다.

노조는 “한국석유공사 직원 750여명의 서명으로 김 사장의 측근 채용비리를 감사해달라는 국민감사청구 내용이 대부분 사실로 밝혀졌다”고 전했다.

이어 “김 사장은 지난 6월 16일 사장의 경영행태를 비판하는 노조파괴 공작의 일환으로 전산망 관리부서에 ‘노동조합’이라는 문구만 포함돼도 무조건 삭제하라는 지시와 함께 노동조합 게시판을 무단 폐쇄하고 노조위원장의 사내 메일을 무단 삭제 조치했다”면서 “울산지방노동위원회는 심판회의를 열고 노조가 제기한 7건 중 6건을 모두 인정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주무부처 장관의 결정 또는 공공기관운영위원회의 의결로 공기업 사장의 해임을 대통령에게 건의할 수 있는 만큼 이와 관련한 빠른 조치가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노조는 또 “김 사장은 ‘갑질 막말’로도 구설에 오르고 있다. ‘태화강에 가서 빠져 죽어라’, ‘머리가 주인을 잘못 만나 고생이다’ 등 직원에 대한 인신모독과 폄하로 조직을 망가뜨리고 있다”고 비판했다.

김 사장과 노조의 심한 갈등이 지속되면서 향후 김 사장의 거취에도 관심이 쏠리는 시점이다. 또 감사원의 감사 결과대로 정부의 인사조치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관측된다.
 
박기동 사직서 제출
검찰 조사 현재진행형

 
김정래 한국석유공사 사장 외에도 박기동 가스안전공사 사장의 직원 채용 조작 의혹이 떠올랐다.

1980년 공채 1기(기술직)으로 입사해 2014년 공채 1기 사장에 오른 박 사장은 지난 8일 공정한 채용업무를 방해한 혐의(업무방해)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됐다. 가스안전공사 설립 이래 현직 수장이 구속된 것은 처음이다.

청주지방법원 충주지원 황병호 영장전담판사는 이날 그의 구속전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을 진행한 뒤 “주요 혐의가 소명됐고 도주 우려와 증거인멸 염려가 있어 구속 필요성이 인정된다”며 영장을 발부했다.

검찰에 따르면 박 사장은 최근 2년간 가스안전공사 사원 공개 채용 과정에서 최종 면접자의 순위 조작에 관여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지난 13일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박 사장은 지난 2016년 5월 최종합격자 심의를 위한 인사위원회 전 면접 전형 집계 결과를 보고받자 “인사 정책상 일부 인원의 조정검토가 필요하다”면서 “합격시킬 사람은 ‘O’, 탈락시킬 사람은 ‘X’표시를 하는 방법으로 총 18명의 순위를 임의로 바꾸라고 지시했다.

감사원이 지난 12일 공개한 ‘공직비리 기동점검’ 결과에 따르면 가스안전공사는 2015년 65명, 2016년 79명의 신입‧경력직원을 서류‧필기‧면접 등 3단계 전형을 거쳐 채용했다.

박 사장은 지난 2015년 1월 인사위원회 개최 전에 면접 전형 집계 결과를 보고받고 “현장에 적합한 인재를 뽑기 위한 것”이라며 특정 응시자 이름에 화살표를 표시하고 6명의 면접 점수 순위를 임의로 변경하도록 지시한 것으로 전해졌다.

따라서 합격권 밖이었던 4명이 합격하고, 합격할 수 있었던 4명이 탈락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은 박 사장의 혐의에서 임원으로 재직할 때 업무 관련 업체 관계자들로부터 수천만 원 상당을 받은 점도 포함했다.

검찰은 지난달 29일 서울 송파구에 소재한 전국 보일러 설비협회의 사무실을 압수수색해 뇌물수수관련 자료를 분석해 왔다. 여기서 검찰이 확인한 액수만 수천만 원에 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박 사장은 산업통상자원부에 사직서를 제출했으나 수리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의 구속을 시작으로 검찰의 칼끝이 어느 곳을 향할지 예측할 수 없어 혐의 추가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상태다.

감사원 수사 의뢰로 시작된 신입사원 채용 비리 의혹은 검찰에서 수사를 시작하며 참고인과 피의자 신분으로 조사받은 직원만 50여 명을 훌쩍 넘어섰다.

이 과정에서 외유성 해외 출장 의혹과 임원 인사 관련 금품 수수 의혹, 각종 계약과 용역 관련 비리 의혹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자 내부 직원들도 크게 동요하며 일부에서 업무 공백이 현실화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검찰 조사를 받던 박 사장이 SNS를 통해 두 차례나 직원들에게 협박‧회유성으로 느껴질 수 있는 글을 보내 것이 기름을 부은 것으로 관망된다.

박 사장은 이 문건에서 채용 비리 의혹을 부인하는 것을 넘어 검찰 조사를 받는 관련 직원들을 향해 “인간 이하의 진술을 하고 있다”며 “사장의 등 뒤에서 비수로 목을 찌르는 반인륜적인 행동을 검찰에서 극에 달하도록 진술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그들의 패륜과 언행은 용서할 수 없는 루비콘강을 건너고 말았다”며 “내가 아는 모든 폐악을 실타래 풀듯이 풀어서 하나하나 단죄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 같이 수사가 진행 중인 사안과 관련해 피의자 신분인 박 사장이 조사를 받는 직원들을 포함한 관리자급 직원들에 글을 보낸 것은 수사에 영향을 주려는 의도로밖에 볼 수 없는 대목이다.

그는 인사채용 비리와 뇌물수수 혐의에 대해 “정당한 이유가 있었다. 돈을 받은 것은 맞지만 대가성은 없었다”며 강하게 부인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박 사장을 구속하며 모습을 드려낸 검찰의 칼날이 어느 곳을 향할지 여론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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