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 신뢰성 떨어져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최근 부산·아산 여중생 폭행 사건, 강릉 여고생 폭행 사건 등이 알려지면서 학교폭력에 대한 심각성이 더욱 부각되고 있다. 또 이런 폭행사건들로 인해 청와대 홈페이지 국민소통 광장 ‘국민 청원과 제안’에는 소년법 폐지를 청원한 사람이 27만 명을 넘어섰다. 이같이 늘어나는 학교폭력에 대처하기 위해 학교 내에 조직된 학교폭력자치위원회를 신뢰하지 못해 불법 심부름센터까지 의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학교폭력사범 매년 1만4000여 명···피해자들 심각한 후유증 앓아
불법 심부름센터, 150~500만 원이면 피해자와 등하교 함께해


지난 9월 7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더불어민주당 이재정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학교폭력사범은 매년 1만4000여 명에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 2013년 이후 적발된 학교폭력사범은 6만3429명에 달한다.

지난 강릉 여고생 폭행 사건의 가해자들은 메신저로 “(사건) 지난지가 언젠데 지금 와서 난리야”, “상관 없어 저거 어차피 다 흘러가. 나중에 다 묻혀” 등의 말로 지난 7월 벌어진 폭행을 두고 ‘이미 지난 일’, ‘어차피 다 묻혀버릴 일’로 간주했다.

여론의 관심은 잠잠해질 수 있겠으나 피해자들은 평생 지우지 못할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트라우마)를 안고 살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피해자의 치유를 위한 장기적 관심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오는 상황이다.

특히 피해자가 10대 청소년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학교폭력이 불러올 부정적 파급효과가 높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가해자들이 장난이라고 여긴 사건에도 피해자들은 심각한 후유증을 호소하거나 스스로 생명을 끊는 시도를 불러오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임명호 단국대 심리학과 교수는 “피해자는 평생 상처를 안고 살아가야 하는데 청소년은 여생이 길기 때문에 폭력으로 인한 파급 효과가 굉장히 크다”며 “괴로워서 스스로 생명을 끊는 시도 등을 해도 가해자들은 모르는 경우가 대다수”라고 우려했다.

임 교수는 “가해자들은 피해자가 그렇게 힘들어할 줄 몰랐다는 말을 많이 한다”며 “가해자들에게 피해자들이 얼마나 고통스러운지에 대한 교육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학교폭력 사건의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는 또 다른 종류의 문제도 발생할 수 있다.

공정식 한국심리과학연구센터 교수는 “피해자에 대한 적절한 치유가 이뤄지지 않으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심각한 후유증이 발현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며 “이 일환으로 피해자의 분노가 극대화 돼 가해자가 되는 경우도 있을 수 있다”고 밝혔다.

공 교수는 “학교폭력 피해자에 대한 적극적인 치유가 이뤄져야 한다”며 “아이들의 싸움이라고 치부할 것이 아니라 전문화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또 다른 문제점은 학교 내 폭력 범죄 외에도 학교 밖 청소년(학업 중단자)들이 범죄에 노출된다는 것이다.

지난 9월 12일 12일 전북도의회 최영규(익산4·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경찰청 자료를 분석한 결과 전국적으로 학교 밖 청소년 중 학교폭력 가해자는 지난 2012년 2055명에서 지난해에는 5125명으로 두 배가량 증가했다. 학교 울타리를 벗어나 무방비로 범죄에 노출돼 있는 것이다.
 
학폭위 처분
‘불복’ 건수 증가

 
학교 폭력을 학교 안에서 자체적으로 해결해보자는 취지로 지난 2013년부터 의무적으로 열리게 된 학교폭력대책자치위원회(이하 학폭위)의 역할이 엉성하다는 비판적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학폭위 개최 횟수는 부쩍 늘었으나 제 기능을 못 한다는 지적이다.

학폭위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경미하다 하더라도 사건을 담당하게 돼 있으며 사건을 조사한 후 심의를 통해 학교 폭력 피해 학생과 가해 학생에게 적절한 조치를 내리고, 이를 학교장이 이행할 것을 요청할 수 있는 기구다.

그러나 지난 9월 18일 교육부에 따르면 학폭위 처분에 불복해 피해·가해 학생 측 부모가 교육청 등에 재심을 청구한 건수는 2013년 764건에서 지난해 1299건으로 크게 늘었다.

또 김병욱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 받은 ‘교육청 별 학폭위 처분 관련 소송 현황’을 보면 학교 등을 상대로 한 행정소송은 2012년 50건에서 2015년 109건으로 3년 새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 밖에도 지난 6월 울산에서 목숨을 끊은 한 중학생은 올해 초 같은 반 학생들에게 지속적인 괴롭힘을 당하다 지역 상담 시설을 통해 학교에 이 사실을 알렸다. 학교는 학폭위를 열었지만 피해 학생 측엔 참석 통보를 하지 않고 ‘학교 폭력이 아니다’라는 결론을 내린 것으로 알려졌다.

따라서 학폭위의 결정을 신뢰하지 못한 학부모들이 불법 심부름센터에 해결을 의뢰하는 등 아이들 싸움이 어른 싸움으로까지 번지는 양상이다.

불법 심부름센터는 한 달에 150~500만 원가량의 비용을 지불하면 센터 남성 직원들이 피해 학생의 삼촌 행세를 하면서 등하교를 함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온몸에 문신을 하거나 가해학생들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하는 방식으로 학교폭력을 멈출 수 있다고 말한다. 또 등하굣길 동행 외에도 피해학생을 관찰하면서 폭행 증거 사진을 수집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학교 밖 청소년(학업 중단자‧가해자)에게는 폭행과 욕설 등 더 과격한 방법을 다루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불법 심부름센터는 지난 2013년부터 경찰의 집중 단속으로 사라지는 듯했으나 아직까지 교내 주변에서는 ‘학교 폭력을 해결해주겠다’는 전단지를 심심찮게 찾아볼 수 있다. 또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검색되는 불법 심부름센터만 수십 군데에 이른다.

사회관계망서비스(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불법 심부름센터를 옹호하는 글과 댓글들이 올라와 있다. 네티즌들은 “방법은 불법적이지만 잘한 일이다. 이런 걸 심부름센터에서나 해결해줄 수 있는 현실이 한심스럽다”, “솔직히 심부름센터가 정의구현이라 느껴질 정도로 최근 사건들이 너무 심각하다” 등의 글을 게재했다. 실제 불법 심부름센터의 서비스에 만족한다는 글도 게시돼 있는 실정이다.

전문가들은 불법 심부름센터 등을 이용한 해결은 또 다른 폭력 등의 심각한 2차 피해가 발생할 요지가 높다고 지적한다.

한편 김상곤 사회부총리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9월 12일 잇따르는 학교 폭행 사건과 관련해 청소년 집단폭행 예방 관계부처 합동 태스크포스(TF)팀을 구성하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따라서 학교 폭력에 대한 내실 있는 대책이 수립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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