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이 ‘불’ 지피고 국회가 ‘기름’ 붓고 재계는 ‘빠져 나간다’…무슨 말?

<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재계가 어수선하다. 10월 2일 임시공휴일로 10여 일간의 황금연휴에 이어 국정감사가 시작이다.

이번 국정감사는 오는 10월 12일부터 시작이다. 예년처럼 총수가 증언대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해 기업 임직원이 동분서주한다는 소리가 암암리에 퍼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검찰이 ‘불’지피고 국회가 ‘기름’붓고 재계는 ‘빠져 나간다’는 말이 회자되고 있다.

국정감사를 앞둔 분위기를 정리한 말이라지만 이를 뒷받침할 만한 일련의 일들이 있었던바 묵과할 수 없다는 게 업계의 반응이다. 시나리오를 따라가 봤다.

우선 ‘불’을 지폈다는 검찰 이야기다. 검찰은 상반기 기업수사에 열중했다. 정권이 교체됐고 적폐 청산이라는 명분이었다. 검찰의 칼날은 그 어느때보다 매서웠다. 기업인 사이에서 “나도 좀 살자”는 말이 나돌 정도였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8월 19일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은 정준양 전 포스코 회장 건이다. 포스코에 1592억 원의 손실을 끼친 혐의로 기소됐던 정 전 포스코 회장이 2심에서도 무죄를 선고받았다.

서울고법 형사4부(재판장 김문석)는 18일 검찰의 공소 사실을 입증할 증거가 부족하거나 없다는 취지로 무죄를 선고했다.

정 전 회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의 측근에게 일감을 몰아주는 방식으로 이 전 의원에게 뇌물을 준 혐의로 따로 기소됐다. 이 혐의에 대해서도 앞서 1심이 무죄를 선고했다.

검찰은 지난 2015년 3월부터 8개월에 걸쳐 포스코를 수사했다. 이명박 정권과 가까운 기업인들을 옥죄기 위한 청와대의 하명(下命)에 따른 무리한 수사라는 논란이 일었다. 하지만 정 전 회장, 정동화 전 포스코건설 부회장 등 사건의 핵심 인물들은 줄줄이 무죄 판결을 받고 있다.

뿐만 아니다. 현 정부 출범과 동시에 칼끝은 삼성으로 향했다. 이재용 부회장에 대한 뇌물공여 혐의 입증에 특검의 화력이 집중됐었다. 헌정사상 초유의 사태였던 대통령 탄핵에서 이 부회장은 가장 큰 ‘퍼즐 조각’이었기 때문이다.

이 부회장 공판이 시작된 지 한 달을 넘겼지만, 아직까지도 혐의를 특정할만 한 증거는 나오지 않았다. 이에 일각에서는 검찰이 불씨만 지필 뿐 성과는 없다는 지적이다. 오히려 기업 흠집만 냈다며 역풍을 맞기도 했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 중 하나가 국회의 행보다. 국회는 관련 사건이 있을 때마다 각 정당 논평을 통해 입장을 발표했다. 그러면서 사회적 문제로 확대시켰다. 정경유착의 뿌리를 뽑아야 한다고 주장하거나 강도 높은 검찰 수사를 촉구했다.

특정 사안뿐만 아니라 기업인이 속해 있는 일에 대해서는 유독 큰 목소리를 냈다. 포스코 때도 그랬고 삼성 때도 그랬다. 국정 농단을 수사해야 한다며 관련 회사에 대한 일침을 가하기도 했다.

그래서 국회가 기름을 부었다는 말이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남은 건 재계다. 재계는 나홀로 싸움이었다고 이야기하지만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만큼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 관련 기업들 모두 검찰 수사에 이어 국회의원의 증인 채택으로 국정감사장에 서게 될까 노심초사다.

이미 국회 주요 상임위원회에서는 국감에 출석을 요청할 기업인 명단을 놓고 여야가 협의를 진행 중이다

국회사무처에 따르면 국감 증인으로 선정된 기업인의 수는 계속 늘어나는 추세다. 17대 국회에서는 평균 51.8명이던 기업인 증인이 20대 국회의 첫 국정감사였던 지난해에는 119명으로 늘었다. 전직 기업인이나 공기업 관계자까지 포함하면 이 수는 더 늘어난다. 이에 따라 피감기관을 제외한 일반인 증인 가운데 기업인이 차지하는 비율은 17대 평균 28.4%에서 20대 45.6%까지 크게 올랐다.

이에 정세균 국회의장은 지난 6일 “올해 국감에서는 증인을 과도하게 채택하는 등 ‘갑질’을 해서는 안 된다”며 “필요한 조치를 해 달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번 국감에서는 역대 최대 규모의 기업인 증인 소환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새 정부의 ‘재벌 개혁’ ‘공정시장 질서 확립’ 기조 속에 이뤄지는 국감인 까닭에 여야가 공수를 가리지 않고 기업인 몰아세우기에 집중할 것이란 전망에서다.

여기에 프랜차이즈 업계의 불공정거래 관행, 통신비 인하 문제, 관세청의 면세점 점수 조작 등의 현안이 주요 기업과 얽혀 있다. 특히 이번 국감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존재감을 부각하기에 좋은 무대다.

실제 이정미 정의당 의원은 김철 SK케미칼 사장, 이동우 롯데하이마트, 방준혁 넷마블 의장, 신현우 한화테크윈 대표 등을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채이배 국민의당 의원은 국감 증인 대상 기업으로 삼성전자·금호아시아나·네이버 등 열 곳을 꼽았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다. 최근에는 ‘2017년 정무위 국정감사 주요 증인 요청 명단’이라는 문서가 유출됐다.

주요 그룹 총수를 비롯해 총 46개 기업·금융회사 대표·회장·사장 57명이 명단에 포함됐다. 이는 정무위 소속 모 의원실에서 만든 초안으로 밝혀졌지만, 올해 기업인들이 줄줄이 불려나올 것임이 예고된다는 게 재계의 분위기다.

그러나 증권가 정보지에는 물밑작업이 한창이라는 확인 되지 않은 이야기가 퍼지면서 ‘검찰이 불씨를 지피고 국회가 기름 붓고 재계는 빠져 나간다’는 시나리오가 완성되고 있다.

정보지 내용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모 그룹 회장의 국정감사 증인 신청을 막기 위해 부회장이 직접 상임위 소속 국회의원들을 접촉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이  최근 몇 달 동안 국회내에서 국회의원이나 보좌진들에게 특정 사안에 대한 해명이나 설명을 하고 있다는 것.

해당기업 총수가 증언대에 설 경우  일감몰아주기 논란, 지주회사 전환 회피 등에 대한 의원들의 집중적인 추궁이 이뤄질 것으로 예상되고 케케묵은 과거까지 들춰지면 기업이미지 타격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재계의 한 원로는 “정경유착의 표본”이라고 말하면서도 “매년 되풀이되는 것이 이 시나리오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현 정부의 적폐 청산이 이 부분에 대해서도 메스(수술용 칼)를 들 수 있을지에 대한 의문이다.

한편 이번 국정감사는 10월 12일 부터 시작된다. 올해 국감은 지난해 연말부터 이어진 국정 농단이 아직 진행 중인 가운데 치러지면서 지난 정부에서 추진했던 사업과 관련, 집중 논의될 것으로 전망된다.

다만 올해 국감이 예년에 비해 일정이 짧은 데다 한전을 비롯해 발전자회사들을 제외한 주요 에너지분야 기관 및 공기업들이 19일에 몰려 있어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형식적인 국감이 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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