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드롬 일으킨 安 → 구악과 싸우다 차악이 된 안철수?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19일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정치에 뛰어든 지 5년을 맞았다. 안 대표는 18대 대선을 앞두고 출마를 선언한 2012년 9월 19일을 정치입문 시점으로 본다. 입문 초기, 재야(在野)에 있던 그는 기성 정치를 강하게 비판하면서 정치에 염증을 느끼던 국민들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안철수 신드롬’을 일으켰다.
 
하지만 5년이 지난 지금, “악마와 싸우다 악마가 돼 버렸다”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그의 새정치는 빚 바랜 구호로 남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일요서울은 그의 정치 인생 5년의 궤적과 전후(前後)에 대한 전문가·측근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정치 혐오 느끼던 국민들, 기성 정치 비판하는 ‘새인물’에 열광
‘안철수 현상’…지지율 50%로 5%에 서울시장직 ‘통 큰 양보’
2012년 대선 후보 자진 사퇴·창당 선언했다가 합당 잇따른 ‘철수’
‘새정치’ 내걸었으나 지역·계파·이념 ‘3대 구악’ 되풀이…지지층 외면

 
안 대표는 2012년 9월 19일 18대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정치에 입문한 후 두 번의 대선과 두 번의 총선, 두 번의 창당, 두 번의 당 대표를 경험했다. 안 대표는 지난해 4·13 총선을 승리로 이끌면서 다당제 안착 등 눈에 띄는 성과도 냈지만, ‘리베이트 파동’과 대선 패배, ‘제보 조작’ 등으로 위기를 맞기도 했다. 5년간 천당과 지옥을 여러 차례 오간 그는 최근 소회를 묻는 질문에 “지난 5년이 마치 20년은 흐른 것 같다”고 밝혔다.
 
비상과 추락
거듭한 지난 5년

 
그가 대중적으로 주목을 받은 건 2009년 MBC 예능프로그램인 ‘무릎팍도사’에 출연한 이후부터다. 사람을 치료하던 젊은 의사가 컴퓨터 바이러스 치료사로 변신, ‘벤처신화’를 일군 그의 스토리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했다. 카이스트(KAIST) 교수로 재직하던 중 2011년부턴 전국을 순회하며 ‘청춘콘서트’를 개최해 청년 멘토로 급부상했다.
 
특히 안 대표는 기득권 지키기에만 몰두하던 거대 양당을 강하게 비판하면서 기성정치에 혐오를 느끼던 국민들의 뜨거운 환호를 받았다. 이는 정치 참여 의사를 밝히지 않은 한 재야 인사에 50%에 육박한 지지율이 모이는 유례없던 ‘안철수 현상’을 일으켰다.
 
그해 10월 치러진 서울시장 재보선에서 당시 지지율 5%에 그치던 박원순 변호사(현 서울시장)에 아무 조건 없이 후보직을 양보, ‘통 큰 정치’를 선보이기도 했다. 이 같은 지지를 바탕으로 2012년 9월 전격 대선 출마 선언을 하며 현실 정치에 발을 들였다.
 
그는 ‘새정치’를 내세우며 신드롬을 이어갔지만, 당시 문재인 후보와 야권단일화 과정에서 극한 대립을 벌이다 결국 후보직에서 사퇴하면서 돌풍이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특히 야권이 대선에서 패배하자 그는 문재인 후보와 ‘화학적 결합’을 이뤄내지 못했다는 진보 진영의 거센 비난을 받으며 오랫동안 책임론에 시달렸다.
 
대선 직후 미국으로 날아가 정치 일선에 물러나 있던 그는 2013년 4월 서울 노원병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배지를 달게 된다. 그 해 11월 ‘새정치연합’으로 창당을 공식화하며 본격 세(勢)몰이에 나섰지만, 결국 세력 규합에 한계를 느낀 그는 2014년 3월 민주당과 합당을 선언하며 새정치민주연합(새정연)을 출범했다. 이 때부터 본격 ‘철수정치’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안 대표는 당시 새정연 공동대표를 지내며 전면에 나섰지만 같은 해 7월 재보선에서 패배, 책임을 지고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후 당은 문재인 대표 체제가 출범했고 그는 문 대표 체제가 추진했던 당 혁신안을 놓고 극한의 신경전을 벌이다 결국 2015년 말 “두려움을 안고 광야에 서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야권 분열은 안 된다는 진보 진영의 반발이 거셌지만, 야인(野人)을 선택한 안 대표는 2016년 초 민주당 탈당파와 손잡고 국민의당을 창당했다.
 
그해 4·13 총선에서 안 대표는 ‘야권 분열 필패’라는 공식을 깨고 38석의 의석과 정당득표율(26.7%) 2위를 기록하는 파란을 일으키며 부활에 성공했다. 특히 호남 지역은 물론 정당득표율에서 라이벌인 민주당(25.5%)을 누르면서 20년 만에 다당제를 안착시켰다. 그는 지난 2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지난 총선 때 혼자서 창당해 40석 가까운 정당을 만들었다”며 “(이 정도 성과를 낸 건) 현역 정치인 중에 저밖에 없다”며 자부심을 드러냈다.
 
하지만 불과 2개월 후 ‘리베이트 파동’이 터지면서 안 대표는 다시 대표직에서 물러나는 시련을 맞았다. 그는 이 리베이트 사건으로 인해 당내 개혁과 시스템 구축해 실패했다며 여러 차례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했다.
 
안 대표는 올해 5·9 조기대선을 앞두고 국민의당 대선 후보로 나서 대통령직에 도전했다. 한 때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와 양강 구도를 이루면서 골든 크로스를 노렸지만, 정체성 논란·TV 토론 실패 등 약점을 노출하며 지지율이 급락, 결국 3위로 대선을 마무리 지었다.
 
대선에 출마하며 의원직을 사퇴해 휴식기를 갖던 그는 ‘제보 조작’ 사건이라는 대형 이슈가 터지면서 또다시 위기를 맞았다. 그는 검찰 조사가 일단락되자 대선 패배와 제보 조작 사건으로 자숙해야 한다는 당 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을 살리겠다”며 전당대회에 출마, 정치 전면에 재등장했다.
 
본인 스스로도 “압축 경험을 했다”고 밝힌 안 대표는 지난 5년간 비상과 추락을 반복하며 산전수전을 경험했다. 롤러코스터와 같은 5년의 시간을 보낸 그다. 그렇다면, 그의 어떤 점이 긍정적으로 변화했고, 어떤 점이 부정적으로 바뀌었을까.
 
소통·전투력 긍정,
‘구태 청산’ 외쳤지만…

 
우선 소통 부분에서 긍정 평가가 나왔다. 데이터앤리서치 엄경영 소장은 “과거보다 스킨십을 많이 늘리면서 수평적 리더십을 보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다”며 “최근 폭탄주도 마시고 전당대회 끝나자마자 경쟁자인 정동영 천정배 후보나 당 원로인 손학규를 찾아가는 등 친화력을 높이고자 하는 모습이 보인다”고 평가했다.
 
아마추어 정치인에서 이제는 프로 정치인으로 변했다는 평가도 나온다. 엄 소장은 “국민들 지지 여부와 별개로 국민의당이 제3당으로서 나름 정치력을 발휘하고 있는 데는 안철수의 정치력이 작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2012년 당시 안 대표의 대선 캠프였던 ‘진심캠프’에 일했던 한 인사는 “(안 대표가) 정치 문법에 익숙해진 모습”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이들의 얘기를 종합하면 얻은 것보다 잃은 것이 훨씬 많았다. 전문가뿐만 아니라 과거 함께 일했던 측근들도 현재의 안 대표에 대해 비판적 의견을 드러냈다. 두문정치전략연구소 서양호 소장은 안 대표의 5년을 “악마와 싸우다 악마가 돼 버렸다”고 평가했다. 새정치를 부르짖으며 구태정치와 싸우다 정작 자신이 구태 정치인이 돼 버렸다는 것이다.
 
서 소장은 “국민들이 기성 정치인에 대해 가장 싫어했던 게 특정지역에 기대는 지역주의, 새로운 변화를 수용하지 않고 기득권화돼 계파를 만들어 당권 대권에 줄 서는 계파주의, 다른 사람에 배타성을 가지고 있는 이념주의, 이 세 가지가 3대 정치 구악”이라고 운을 뗐다.
 
그는 “(이에 비춰) 안 대표는 민주당을 깨고 나가 호남 의원들에 의존하는 지역주의를 보였고 현안 관련에서도 최근 호남홀대론을 얘기해 지역 감정을 조장했으며, 친문패권을 깨겠다고 당을 만들었는데 결국 당 내부에서도 친안 비안 나뉘어 스스로도 계파정치를 극복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념과 관련해 진보와 보수를 아우른다고 하는 것은 그냥 논리적 레토릭(수사)에 머무르고 있고 실제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명확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탈지역 탈이념 탈계파 중 어느 것 하나 보여주지 못할 뿐만 아니라 기성 정치인이 했던 것처럼 3대 구악에 갇혀 있는 것 아닌가”라고 했다.
 
안 대표의 소통이 형식적이라는 비판도 있다. ‘경청의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것이다. 진심캠프에서 요직을 맡았던 다른 인사는 “안철수의 가장 큰 취약점은 남의 얘기를 잘 안 듣는다는 것”이라며 “자기한테 쓴소리하는 것을 굉장히 두려워하고 귀를 막고 꺼려하는 경향이 있다”고 밝혔다. 실제 지난 전당대회에서 안 대표 출마를 반대하던 의원들은 그와 면담 이후 “벽을 보고 이야기하는 것 같다”, “외계인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이와 연장선상에서 과거부터 안 대표와 함께 했던 측근들이 지금은 거의 남아있지 않다는 점도 안 대표의 대표적 약점으로 꼽힌다. 진심캠프의 주역이었던 금태섭 변호사(현 민주당 의원)과 송호창 전 의원, ‘멘토’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 등은 현재 그의 곁을 떠난 상태다. 최근엔 안 대표가 영입한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마저도 일선에서 안 대표의 발언과 행보를 비판하고 있다. 반면 안 대표는 이에 대해 “국민의당 창당 후 제 주변에 가장 사람이 많다”고 반박하는 입장이다.
 
‘청년 멘토’로 다수의 젊은 층 지지를 받았던 사실은 이제 까마득한 옛날이 돼 버렸다는 지적도 나온다. 올해 대선 출구조사에서 2030세대의 지지율은 2012년 대선 출마 무렵에 비해 반토막이 났다.
 
정치권 안팎에선 안 대표가 ‘작은 정치’에서 벗어나 ‘통 큰 정치’를 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진심캠프 인사는 “(안 대표가 현재) 문재인을 싫어하는 사람한테만 어필하는 사람이 돼 버렸다”며 “지금도 안철수가 정치적 생명력을 유지하는 힘은 반문이지 안철수 자체의 힘은 아니라는 생각”이라며 ‘작은 정치’에서 벗어나길 당부했다.
 
이어 그는 “조급하니까 그런 게 정치적 효과가 금방 나타나니까 자꾸 그런 카드를 쓰고 싶어지는데, 좋은 정치가 못 된다”며 “(그렇게 하다간) 대통령은 안 되고 국민의당은 그냥 제3당으로만 머물러서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을 넘어설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적 스탠스를 분명히 해야 한다는 지적도 어김없이 나왔다. 엄경영 소장은 “어디서부터 정치를 해야 되는지 다시 고민해야 할 시점”이라며 “중도 보수에서 정치를 할 건지 범진보에서 할 건지 지금 불분명한데, 이게 해결이 안 되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치생명이 끝날 것”이라고 말했다.
 
‘초심’을 당부하는 발언도 나왔다.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는 지난 20일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지금 새정치 흔적도 발견하기 힘든 상황인데. 왜 이 길에 들어섰는가 또 이 길에 처음 들어섰을 때 가졌던 포부(를 되짚어보면서) 사람들의 평가를 받아들이고 초심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고 제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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