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집권한 지 150일이 지났다. 집권 1기 내각의 퍼즐이 완성된 이후 청와대와 여당은 ‘대선 공신록’을 펼치고 논공행상에 돌입했다. 전 정권의 경우 취임 100일이 지나면 공공기관장이 일거에 자진 사퇴를 했던 과거와는 달리 문재인 정부는 인사가 더디다. 무엇보다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한정돼 있고 대선 공신은 넘쳐나면서 내부 물밑 자리다툼이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장들마저 ‘버티기 전략’에 ‘연임’까지 노리면서 인사 적체 현상마저 낳고 있다. 일단 여권에서는 국정감사를 통해 1차적으로 비리 인사를 걸러내고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연말까지 순차적으로 인사를 단행하겠다는 복안이다. 문재인 정부에서 벌어지는 인사 전쟁 속으로 들어가 보자.

- 靑, 10월 국정 감사 종료 후 ‘대대적 물갈이’ 예고
- 집권 여당 254개 당협위원장 ‘1인 추천제’ 논공행상

<뉴시스>

# 사례 하나
‘연봉 8000만 원’ 수준의 대우건설 고문으로 3년을 재직한 A씨는 전직 민주당 당직 출신이다. 하지만 A씨는 박근혜 정부가 들어서면서 ‘낙하산 인사’로 대우건설에 근무했다. 이 인사는 문재인 정부에서 전직 사무처 동료가 청와대에 들어간 것을 알고 더 근무할 수 있는지 물었다가 ‘망신’만 당하고 자리를 나와야 했다. 대우건설은 KDB산업은행이 대주주로 인사에 정부 입김이 센 기업이다.

# 사례 둘
민주당 전 의원인 Y씨는 친노 자금줄로 알려진 인사다. 지난 총선에 불출마한 후 문재인 캠프에서 직을 맡아 대선 승리에 일조했다. Y 전 의원은 정부부처 산하 공공기관장 한 자리를 원하고 있지만 나오는 자리도 없는 데다 경력이 맞지 않아 ‘낙하산 인사’라는 비판이 일 수 있어 매번 퇴짜를 당했다. 현재 Y 전 의원은 국정감사를 받아야 하는 피감기관보다 감사를 받지 않는 협회의 장으로 들어가기 위해 청와대와 여당 고위 인사에 줄을 대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이 지났지만 공공기관 인사는 더디게 진행되고 있다. 청와대 안팎에서는 정권을 잃은 10년 동안 참여정부 인사를 비롯해 백수로 지낸 인사가 상당수여서 가능하면 다 챙겨야 한다는 게 기본적인 방침이다.

사례 1처럼 공공기관도 아니고 준정부기관도 아닌 기업이지만 고문으로 있는 인사도 내보내고 철저하게 자기 사람을 심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하지만 사례2처럼 친노 성향의 전직 의원도 공공기관의 자리가 나지 않아 협회로 눈을 낮춰야 할 정도로 자리가 나오지 않는 것도 현실이다.

통상 대통령이 행사할 수 있는 자리는 공공기관 및 준정부기관, 기타 공공기관을 합치면 332개다. 공기업 35개, 준정부기관 89개, 기타공공기관 208개를 합친 숫자다. 여기에 감사와 임원까지 합하면 2000여 개가 넘는 자리가 있는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반면 지난 문재인 캠프에서 공식 발표한 선대위 참여 인원은 430명이다. 외곽 조직, 자문그룹 등 비공식적 인원을 합치면 1000명에 이를 것이라는 관측이다. 아울러 경선을 치렀던 안희정, 이재명, 박원순 등 캠프 인원, 17개 시도별 도당 선대위 인원, 2012년 참여정부 시절 인사들까지 합칠 경우 챙겨야 할 인원은 1만명이 훌쩍 넘을 것이라는 게 일반적인 예측이다.

2000명이 1년씩만 일해야 1만 명이 모두 문재인 정부에서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 문재인 캠프의 공식 인사들 사이에서도 기관장 자리를 놓고 물밑경쟁이 치열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공석’이 된 공공기관 자리도 많지 않고 그마저도 청와대는 인선을 미루고 있다.

332개 공공기관 중 현재 기관장이 공석이거나 임기 만료된 공공기관은 55개에 이른다. 여기에 임기가 남은 기관장들은 ‘버티기 전략’을 취하고 있다. 문 대통령은 평소 ‘낙하산 인사는 없다’, ‘인위적인 공공기관장 교체는 없다’며 일괄 사표를 받지 않겠다는 발언도 ‘버티기 전략’에 한몫하고 있다.

‘공석’은 많지만…‘일단 국정감사 이후에’

상황이 이렇다 보니 박근혜 정권에서 임명된 공공기관 수장들은 정권이 바뀌었어도 자진 사퇴보다는 임기를 채우겠다는 인사들이 상당수다. 문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 만에야 새누리당에서 3선을 한 김학송 한국도로공사 사장이 임기를 채우지 않고 사의를 밝힌 게 첫 사례다. 이어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 홍순만 코레일 사장이 잔여 임기를 앞두고 자진 사퇴했다.

하지만 나머지 주택도시보증공사 사장, 한국철도도시공단 이사장, 한국토지주택공사 사장, 인천국제공항공사 사장 등 국토교통부 주요 산하 공공기관장은 ‘잔여 임기’를 무기로 ‘버티기 전략’에 들어갔다.

국토교통부뿐만 아니라 가장 산하기관이 많은 산업통상자원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최근에 들어서야 자회사인 한국남동발전, 한국남부발전, 한국서부발전, 한국중부발전의 사장들이 일괄 사표를 냈다. 산자부 산하에는 공기업 16곳, 준정부기관 15곳, 기타 공공기관 10곳 등 41개 공공기관이 있다. 

부처별 상황이 이렇다 보니 청와대와 여당은 전정권 인사들을 내치기 위한 물갈이 작업에 본격 착수했다. 일단 문재인 정부는 18개 전부처에 3급이상 고위공직자 인사 관련 사전에 청와대에 보고할 것을 주문했다. 자칫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를 마련했다.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이 ‘잃어버린 10년’ 동안 백수로 지낸 인사들을 챙기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다.

집권 여당 한 인사는 “최근 청와대에서 전국 254개 당 지역위원장을 통해 지난 대선에서 역할을 한 인사들을 각 당협위원장별로 한 명씩 추천해 줄 것을 주문했다”며 “본격적인 보은 인사가 대거 이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에 발맞춰 6월23일 취임한 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은 8월29일 대통령 업무보고 전 산하 기관장과 미팅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김 장관은 관련 기관장에게 일괄 사직서를 요구해 다 받았고 대통령 업무보고 자리에 사직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여성이지만 ‘강골 정치인’으로 정평이 난 김 장관이 솔선수범해서 문 정부의 인사 적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선 셈이다. 김 장관이 공공기관장에 대해 사직서를 모두 받아 청와대에 넘겼지만 후임 인사는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이에 대해 집권 여당 관계자는 “국정 감사 전 새로 임명하게 되면 야당으로부터 집중 공격을 받아야 한다는 점에서 신임 공공기관장들의 부담이 크다”며 “업무 장악도 안 된 상황에서 출석할 경우 사실상 인사 청문회장으로 변질될 공산이 높아 전정권 인사들이 국정감사를 받게 하고 더불어 물갈이의 기폭제로 활용하겠다는 복안도 있다”고 귀띔했다.

사실상 앞서 언급한 사례2처럼 문 대통령 대선 공신들이 10월 12일 시작되는 국정감사 전 공공기관장에게 갈 경우 상임위별 국정감사에서 이런저런 의혹이나 비리가 불거질 경우 중도하차할 수 있어 청와대가 고육지책으로 인사를 미루고 있는 셈이다. 또한 이런 기류와 함께 새 정부가 들어선 지 5개월이 지났지만 버티는 수장에 대해 집권 여당에서는 국정감사장을 ‘대폭 물갈이’ 기회로 삼겠다는 ‘꿩 먹고 알 먹고’ 전략이 숨어 있는 셈이다.

문재인 정부는 대선 공신들에 대한 인사 적체를 해결하기위해 순차적인 ‘물갈이’를 진행하고 있다. 1단계로 청와대 인사와 정부부처 수장에 대한 인사를 마무리하면서 ‘어공’(별정직 공무원)을 정리했다. 청와대는 물론이고 총리실의 경우 박근혜 정권 당시 들어온 별정직 공무원에 대해 7월 말 8월 초에 수십명을 교체한 것으로 알려졌다. 대표적인 인사가 박근혜 정권 ‘문고리 3인방’으로 알려진 정호성 전 청와대 부속 비서관의 조카다.

박근혜 대통령의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 씨에게 청와대 문건을 전달한 혐의로 구속된 정 전 비서관의 조카는 국무총리실 6급 공무원으로 2013년 5월 특별 채용됐다. 정 전 비서관 조카는 공보실에서 취재 지원 업무 등을 담당했다. 그러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선 지 두 달이 넘어선 7월 말 총리실을 나간 것으로 본지 취재 확인했다.

2단계가 정부부처 산하 기관장으로 앞서 언급했듯이 국정감사 이후 본격적인 인사가 관측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기본적으로 각 부처의 장이 인사 전권을 행사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되, 고위 공직자 인선에 대해서는 사전 보고를 의무화했다.

‘문고리 3인방’ 정호성 조카 7월말 총리실 나가

특히 청와대는 ‘낙하산 인사’, ‘보은 인사’, ‘코드 인사’라는 비판을 피하기 위해서 공공기관장 후임 인선에 전문성을 담보할 것을 아울러 주문했다. 이에 국토부, 행안부 등 18개 부처의 장들은 공신록을 작성하면서 ‘경력’에 맞는 자리에 이력서를 제출할 것을 인사 대기자들에게 주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아울러 3단계로 국정감사와는 별도로 버티는 공공기관장이나 공기업, 협회장에 대해서는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를 통해 대폭 물갈이를 위한 사전 정지작업도 병행하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강원랜드 채용 비리 의혹 수사다.

강원랜드는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의 정권 교체기이던 2012년 11월부터 2013년 4월까지 2차례에 걸쳐 518명의 직원을 채용했고 자체 특별감사 결과 합격자 518명의 무려 95.2%에 해당하는 493명이 내외부의 인사 지시와 청탁으로 선발돼 충격을 줬다. 강원랜드에서는 최흥집 전 강원랜드 사장이 벌인 인사로 함승희(16, 17대 새누리당 국회의원) 현 사장과는 무관하다고 항변하고 있다.

강원랜드뿐만 아니라 검찰은 박기동 한국가스안전공사 사장 구속에 이어 서부발전, 석탄공사, 디자인진흥원 등 4곳의 사무실과 의혹 관련자 주거지를 압수수색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자유한국당 윤한홍 의원은 “공공기관장 물갈이는 감사원 감사 결과나 검찰조사가 공공기관장 교체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라는 시각이 나오고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노조도 문재인 정부 인사 적체 현상 해결에 나섰다. 민주노총·한국노총 공공부문 공대위는 ‘적폐기관장’ 명단 10명을 공개하자 이중 4명(홍순만 코레일 사장, 김옥이 한구보훈복직의료공단 이사장, 방하남 한국노동연구원 원장, 이승훈 한국가스공사 사장)의 공공기관장이 물러나야 했다. ‘내놓지 않으려는 자’와 ‘차지하려는 자’의 보이지 않는 전쟁의 최종 승자가 누구일지 정가는 예의 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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