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금호타이어 경영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지난달 27일 박 회장의 자구 계획안을 받아들이지 않고, 채권단 주도로 경영 정상화 작업에 돌입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박 회장의 그룹 재건의 화룡정점으로 꼽혔던 금호타이어 인수작업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가게 됐다.

금호타이어 채권단은 26일 주주협의회를 열고 박삼구 회장 측이 제시한 자구 계획안이 당면한 경영 위기를 해결하기에 미흡하다고 판단, 이를 수용하지 않기로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27일 밝혔다.

박 회장은 하루 앞선 지난달 25일 채권단 주요 멤버인 KDB산업은행 이동걸 회장을 직접 만나 금호타이어 경영권과 우선매수권 포기 의사를 밝혔다. 이날 이 회장 측은 박 회장이 제시한 자구안이 현실적이지 않고 다른 계열사로까지 재무 위험이 번질 수도 있다는 의견을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뉴시스>

이로써 2014년 워크아웃을 졸업한 지 3년 만에 다시 구조조정(자율협약)에 돌입하게 된 금호타이어는 올해 만기가 도래하는 채무만 총 1조 9000억 원에 달한다.

채권단의 만기 연장 등 도움 없이는 정상화가 진행될 수 없고, 연장되더라도 경영정상화를 위한 협력업체 대금과 운전비용 등 신규자금이 계속 들어갈 수 밖에 없는데 이를 지원할 자본 여력이 없다. 결국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경영에서 물러나고 우선매수청구권도 포기하고 말았다.

 

“나쁜 일 있다 보면 좋은 일도 생긴다”

그러나 박 회장은 27일 출근길에서 금호타이어 경영에서 손을 떼게 된 것과 관련해 “나쁜 일이 있다 보면 또 좋은 일이 생기는 것”이라고 말했다. 길게 보면 좋은 일이 생길 수 있다는 뜻으로 이해된다. 박 회장은 한때 재계 8위에 오를 정도로 주목받았던 인물이다.

2002년 9월 그룹 회장직에 오른 뒤 7년 만에 인수·합병(M&A)의 후유증 속에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2006년과 2008년 대우건설과 대한통운을 차례로 인수해 금호아시아나를 일약 재계 11위에서 8위로 올려놓았지만 세계적인 금융위기로 유동성 위기가 닥치면서 `먹은 것을 토해 내야’ 하는 딱한 처지에 놓이게 됐다.

지난 6월 채권단과 재무 구조 개선을 위한 약정을 체결하고, 대우건설을 되팔기 위해 시장에 내놓았다. 이 과정에서 석유화학 부문을 맡았던 박찬구 전 금호석유화학 회장과 갈등을 빚으면서 이른바 `형제의 난’을 일으켰다. 동생인 박찬구 회장을 물러나게 하면서 본인도 동반퇴진한 것이다

2010년 10월 그룹 회장으로 복귀했지만 더 이상 그룹의 오너가 아닌 채권단이 위임한 경영인일 뿐이었다. 채권단은 출자전환 등 워크아웃 과정에서 금호산업 지분 57.6%를 가지게 됐는데 지난해 말 채권단이 이중 50%+1주를 매각하는 조건으로 금호산업의 워크아웃 졸업을 결의했다.

매각 작업은 올들어 본격화 됐는데 이 지분에 대해 ‘우선매수청구권’을 가진 박 회장에게도 금호산업을 되살 수 있는 길이 열리게 됐고 채권단도 같은 값이면 박 회장이 먼저 살 수 있는 권리를 마련해줬다. 결국 12월 29일 박 회장은 대금 납부를 마무리하면서 금호아사아나그룹 오너 자리를 되찾게 됐다. 6년 만의 복귀였다. 하지만 이번에는 금호타이어 인수에서 고배를 마시며 또 한 번 나락의 늪을 경험하게 됐다.

재인수 도전 가능성도 내비쳐   

관련 업계는 채권단이 인력 감축 등을 포함한 대규모 구조조정을 실시할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의견이 많다. 박삼구 회장은 자구 계획안을 통해 140여명 인력 감축을 포함한 중국 공장 지분 70% 매각 등의 방안을 내놨지만, 채권단은 해당 자구 계획안이 미흡하다고 판단했다. 그만큼 채권단이 박삼구 회장의 자구 계획안보다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진행할 것이라는 게 업계 안팎의 시각이다.

다만 , 박 회장은 금호타이어 재인수 가능성은 열어뒀다. 금호타이어가 정상화된 뒤 다시 인수합병(M&A) 시장에 나올 경우 인수에 참여할 의사가 있느냐는 질문에 박 회장은 “우리 그룹이 잘되면 뭐…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게 아니다”라고 말했다. “시간은 언제든지 있다”라며 즉답은 피했지만, 향후 인수 여력이 생기면 다시 도전할 의지가 있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채권단 자율협약 아래 빠른 정상화가 가능하겠느냐는 질문에는 “된다고 본다”면서 “다 같이 충분하며 과거 사례들이 입증한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서는 채권단 자율협약과 관련해 산은에 대한 책임론도 새어나오고 있다. 워크아웃을 졸업한 금호타이어를 상대로 또다시 구조조정에 돌입하겠다는 것 자체가 산은의 ‘실패’를 의미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박삼구 회장에 대한 비판에 가려, 정작 산은의 금호타이어 경영 정상화 실패와 매각 실패는 주목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워크아웃을 졸업한 회사를 상대로 다시 구조조정을 실시한다는 것 자체가 산은의 실책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한편, 금호타이어는 지난 2006년 대우건설 지분 인수와 해외 공장 건립을 추진하다가 유동성 위기로 2010년 워크아웃(기업구조개선절차)에 들어갔다. 2014년 12월 워크아웃을 졸업하고, 이후 중국 타이어업체인 더블스타와 매각 협상을 진행했으나 실적 악화 등으로 결렬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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