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시스>
지난 1989년 1월 광주 동구 녹동마을 인근의 부엉산 기슭에서 발견된 유골의 신원이 뒤늦게 밝혀질지 관심이 모아진다. 당시 발견된 유골은 20대 후반 남성으로 추정되며 금니, 흰색 운동화, 녹색 체크무늬 양복바지, 흰색 남방셔츠, 24㎜ 필터 담배 등이 함께 발견됐다. 특히 유골 발견 당시 누락됐던 금니의 존재가 드러나면서 DNA 검사와 함께 28년간의 의문을 풀어낼 열쇠가 될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린다. 일각에선 유전자 검사 기술이 발달한 현재 신원 확인을 위한 절차를 다시 밟을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1989년 작성된 5·18 광주민주화운동 진상조사 특별위원회 보고서에 따르면 녹동마을 주민 윤모(1963년생)씨는 1980년 5월 말경 뱀을 잡기 위해 부엉산 기슭에 올랐다가 피투성이가 된 채 숨져 있는 20대 남성을 발견했다. 겁에 질린 윤 씨는 곧바로 신고하지 않고 낙엽과 풀, 흙으로 시신을 덮어둔 채 산에서 내려왔다고 한다.
 
1987년 7월, 윤 씨는 동생과 뱀을 잡던 중 다시 현장을 찾았다. 그는 두개골이 밖으로 나와 있는 모습을 보고 바위 아래에 유골을 묻었다. 이후 윤 씨는 주남마을에서 발견된 암매장(추정) 유골 발굴 작업을 TV로 보고 용기를 내어 신고했다. 윤 씨는 시신을 본 뒤 신고하기까지 9년이 걸린 이유에 대해 ‘두려움 때문에 신고할 엄두를 못냈다’고 설명했다.
 
윤 씨는 그러나 당시 조사위에 유골의 두개골 근처에서 금니를 발견했다는 사실을 숨겼던 것으로 전해진다. 이 사건을 최초 보도를 했던 박용수 전 CBS 기자는 뉴시스와의 인터뷰에서 “당시 윤 씨가 동생과 유골을 바위 아래로 옮기면서 금니를 빼내 가져갔다고 고백했다. 왜 유골을 옮겼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윤 씨를 설득한 끝에 고백을 받았지만, 그와의 약속 때문에 보도하지 못했다”고 설명했다.
 
윤 씨가 겁에 질린 상황에서도 금니를 빼내 가져간 것은 의문으로 남는다. 문제의 금니는 유골의 신원을 밝힐 수 있는 중요한 근거가 될 가능성이 높다. 1980년대 금니를 할 만한 경제적 수준을 갖춘 사람이 많지 않았기 때문에 추적의 범위를 좁힐 수 있어서다.
 
부엉산 유골은 금니를 한 20대 후반의 남성으로, 사망 당시 흰색 운동화를 신었고 녹색 계열의 체크무늬 양복바지, 흰색 남방셔츠를 입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또 78년~84년 생산된 24㎜ 필터 담배를 피웠다.
 
뉴시스에 따르면 유골을 조사했던 서울대 이정빈(법의학) 교수는 ‘구멍 난 두개골에서 총상 흔적이 안 보이고 사망 시기는 길게 봐도 5년 이내’라고 밝혔다. 반면 유골의 두개골 부분을 검증한 연세대 김종렬(치의학) 교수는 ‘발견 시점으로부터 최소 6년 전 사망했다’는 내용과 ‘총격 가능성’을 담은 감정 보고서를 검찰에 제출했다고 뉴시스는 보도했다.
 
이후 이정빈 교수가 ‘5년 이상 된 것’이라며 기존 입장을 번복했지만 부엉산 유골은 이미 대중의 관심은 떠난 상태였고, 결국 28년이 지난 현재까지 유골의 5·18 연관성은 끝내 가려지지 않았다.
 
현재 유골은 박종태 전남대 법의학교실 교수가 보관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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