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무기력한 축구대표팀, 모로코 2진에도 패해…예견된 실패 ‘변형 스리백’ 실험
- 숨기 급급한 축구협회, 축구 몰락 부채질…골든타임도 놓친 안일함으로 일관

 
    [일요서울 | 김종현 기자] 축구대표팀이 가까스로 월드컵 본선에 진출했지만 10월 A매치 평가전에서 그 누구도 희망을 찾지 못했다. 축구대표팀은 울리 슈릴티케 감독 시절 무너진 조직력을 회복하지 못하며 망망대해에 표류하고 있다. 4경기째 무승 행진에, 평가전에서는 7실점을 내주며 최악의 사태를 맞고 있다. 하지만 신태용호의 졸전을 두고 관계자들은 책임회피에 바쁠 뿐이다. 더욱이 4년 전 홍명보 사태를 떠올리게 하며 여전히 개선되지 않고 있는 축구협회의 실책에 축구팬들의 비난이 쏟아지고 있다.

신태용 감독이 이끄는 한국 축구대표팀은 지난 9월 본선 확정이후 열린 10월 유럽 원정 평가전에서 두 경기 모두 무참히 무너지면서 최악의 성적을 받아들었다.

축구대표팀은 지난 10일(이하 한국시간) 스위스 빌 비엔 티소 아레나에서 열린 모로코와의 평가전에서 1-3으로 패했다.

특히 이날 상대팀 모로코는 지난 8일 열린 가봉과의 최종예선 여파로 주전 대부분을 뺀 2진급으로 경기에 나섰음에도 한국은 내용과 결과 면에서 완패했다.

이날 신 감독은 앞서 열린 러시아전과 같은 ‘변형 스리백’ 전술을 기반으로 손흥민(25·토트넘), 이청용(29·크리스털 팰리스), 장현수(26·FC도쿄)를 제외한 8명의 선발 명단을 새 얼굴로 바꿔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새로운 선수 조합으로 이뤄진 ‘변형 스리백’ 전술은 지난 러시아전보다 더욱 처참하게 무너졌다.

상대팀 모로코는 프랑스 네덜란드 등 국가 청소년 대표 출신이 대거 포함돼 현대 축구가 몸에 익은 선수들이 대거 포진해 러시아보다 한층 더 강한 전방 압박과 빠른 타이밍의 패스로 한국을 몰아붙였다.

결국 한국은 전반 10분 만에 오사마 탄나네(23·생테티엔)에게 연속 두 골을 허용했고 후반 1분 이스마일 엘 하다드(27·위다드 카사블라카)에게 세 번째 골을 내주며 끌려갔다.

그나마 후반 21분 손흥민이 페널티킥 골을 성공 시켜 1년 넘도록 이어진 A매치 골 가뭄을 해소한 것이 유일한 위안이었다.

신 감독조차 자조 섞인 목소리를 냈다. 그는 “스코어도 지고 경기 내용도 졌다”고 인정했을 정도로 무기력한 경기였다.

이번 평가전을 두고 실패 가능성은 소집 전부터 흘러나왔다. 대표팀을 23명 전원 해외파로 꾸리기로 하면서 ‘포지션 부족’이라는 치명적 약점이 발생했다.
 
신태용 감독
   부족한 시간,
대표팀 부활 걸림돌


신 감독은 지난 8월 아시아 최종예선 9~10차전에서 조기 소집하느라 이번 2연전에서 국내파를 차출하지 않기로 약속했다.

이에 유럽과 중국, 일본, 중동에서 뛰는 선수들로 대표팀을 구성했다. 문제는 해외파만으론 조직력 결여와 특정 포지션 빈곤 문제가 일찌감치 대두됐다.

이 때문에 신 감독은 풀백 자원 부족의 한계를 대신해 ‘변형 스리백’을 들고 나온 것. 야심차게 꺼내 든 변형 스리백은 전문 풀백 자원이 없어 다른 포지션의 선수들을 윙백으로 놓는 파격적인 전술이다.

하지만 완벽한 실패작이 됐다. 되레 대표팀 역사상 가장 빈약한 수비력을 노출시켰다. 수비 자원이 부족하다 보니 오른쪽 측면 공격수로만 뛰었던 이청용에게 수비 부담이 큰 오른쪽 윙백 포지션을 맡겼고. 대표팀 공격의 시발점 역할을 맡아온 기성용이 무릎 부상에서 회복해 평가전에 복귀했지만 경기력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또 최전방 원톱 스트라이커를 맡은 황의조와 지동원은 파괴력 없는 움직임과 허술한 골 결정력으로 상대 수비진에게 위협을 주지 못했다.

이에 결과는 참담했다. 신 감독은 경기 후 “선수들의 경기력이 그렇게 떨어질 줄은 몰랐다”며 “참패를 인정한다”고 한탄했다.

신 감독의 한숨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앞서 열린 러시아전에서는 김주영(29·허베이 화샤)의 자책골이 2골이나 터지는 황당한 장면까지 연출돼 축구팬들의 비난이 쏟아졌다.

가장 큰 문제는 이번 평가전의 결과보다는 오는 5월 개막되는 2018 러시아 월드컵까지 몇 번 남지 않은 기회를 통해 신태용호가 살아날 수 있느냐다.

이는 신 감독이 대표팀 사령탑에 부임하면서 제기됐던 촉박한 시간이 발목을 잡고 있다.

대표팀은 오는 11월과 12월, 2018년 1월과 3월 소집되며 5월 최종 엔트리가 확정된다. 총 4차례 소집 기회가 있지만 이중 국제축구연맹(FIFA)가 인정해 해외파가 모일 수 있는 건 오는 11월과 2018년 3월뿐이다.

오는 12월과 2018년 1월에는 국내 및 중국, 일본 리그 소속만 호출할 수 있어 최종 엔트리 확정까지 해외파와 국내파 선수들이 모여 100% 전력을 갖춘 채 훈련할 수 있는 건 단 20여 일에 불과하다.

다급해진 일정 때문에 축구협회는 오는 11월 9일, 14일(예정) 국내에서 A매치 2연전을 벌일 예정이다.

협회 측은 다른 대륙의 러시아 월드컵 예선이 이제 막 끝나 평가전 상대팀은 확정되지 않았으나 유럽이나 북중미, 남미의 본선 진출 팀 혹은 본선에 못 갔어도 그에 준하는 팀을 섭외할 계획이라고 전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11월 A매치에서는 이번 2연전에서 쓸 만한 해외파를 추려낸 뒤 K리그에서 활약 중인 국내파를 섞으면 신 감독이 원하는 포메이션과 선수 구성을 이뤄 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은 젊은 선수 위주였던 이번 평가전에 비해 팀의 무게 중심이 잡히고 부분 전술에서 조직력도 증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특히 전북, 수원 등 상위원 팀 선수들이 다수 합류할 경우 소속팀에서의 콤비플레이를 대표팀에 옮겨놓아 신태용호가 일단 내용에서 자신감을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내다봤다. 다만 전문가들은 신 감독이 이젠 실험을 중단하고 본선까지 7개월 남은 만큼 정예 멤버를 조금씩 추려내 호흡을 맞춰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선홍 서울 감독 겸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은 “베스트 일레븐 윤곽을 잡아 조직의 힘을 키우고 수비도 안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신문선 명지대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소속팀에서 뛰지 못하는 해외파가 많기 때문에 국내파 위주로 팀을 만들어 가는 극단적인 방법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전했다.
 
김호곤 기술위원장
   참담한 결과에도
협회장은 뒷짐


여전히 경기력 향상이 미궁에 빠진 가운데 한국 축구의 몰락을 협회가 자초했다는 비난의 목소리도 거세지고 있다. 축구팬들과 네티즌들 사이에서는 2014년 브라질 월드컵을 앞두고 벌어진 잘못이 반복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신 감독이 대한축구협회의 돌려막기에 희생당하고 있다는 것.

축구협회는 슈틸리케 감독을 경질하고 후임을 물색하는 과정에서 외국인 감독을 선임하기에는 여러 가지 정황이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국내 감독으로 시야를 좁혔다. 그 결과 협회는 신 감독의 손을 들어줬다.

하지만 이 같은 상황은 불과 3년 전에도 벌어졌다. 당시 협회는 월드컵이 1년 남짓한 상황에서 홍명보 전 감독을 선임했다. 결과는 참담했다.

1무 2패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았고 이에 분노한 팬들은 귀국 현장에서 엿을 던지며 분노를 표출하기도 했다.

홍 전 감독의 성숙하지 않은 지도력이 영향을 끼쳤지만 절대적으로 부족한 시간은 축구대표팀의 결과를 바꾸기엔 충분하지 않았다.

특히 한국 축구 몰락의 중심에 2013년 축구협회 수장을 맡은 정몽규 회장과 협회 지도부의 안일한 현실 인식이 원인이라는 지적이 쏟아진다.

위기가 반복될 때마다 정 회장은 전방에 나서기보다 실무 담당자들을 내세우는 모양새가 연출되면서 ‘뒤로 숨기만 한다’라는 뒷말이 무성하다.

더욱이 러시아 월드컵 최종 예선을 치르는 동안 불거진 여러 문제를 두고 축구협회의 미온적인 태도가 사태를 악화시켰다는 지적도 나온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인 슈틸리케 감독의 경질에서도 최악의 경기력을 보여줘 경질 여론이 거셌지만 축구협회 측은 ‘대안 부재’를 이유로 늑장을 부리다가 결국 2경기를 남겨두고 부랴부랴 교체했다.

하지만 축구협회가 감독 교체의 ‘골든타임’을 놓치면서 그 부담은 고스란히 새 지휘봉을 잡은 신태용 감독의 몫이 됐다.
 
정몽규 대한축구협회장
   이런 와중에 ‘히딩크 감독설’이 제기되면서 한국 축구는 또 다시 태풍에 휘말렸다. 히딩크 감독의 측근이 김호곤 축구협회 기술위원장에게 지난 6월 히딩크 감독이 한국 대표팀 사령탑에 관심이 있다는 문자메시지를 보내면서 논란이 확산됐다.

축구협회는 ‘정식 오퍼’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했다가 팬들의 요구에 어쩔 수 없이 히딩크 감독을 만났지만 “특정 역할을 맡을 수 없다”는 대답만 받고 일단락 지었다.

그러나 이런 상황에서도 정 회장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또 지난 9월 축구협회 전·현직 임원들이 ‘업무상 배임’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을 때도 정 회장은 공개 사과 대신 홈페이지를 통해 사과문만 올려 비난을 자초했다.

4그룹 확정
한국 축구의 민낯


안정환 해설위원은 모로코 평가전 경기 중계 도중 “단추가 잘못 끼워진 것이 확실하다. 안 좋게만 바라보고 느낄 게 아니라 다시 잘 채울 수 있도록 선수나 감독이나 협회나 여러 축구인들이 노력해야 할 것 같다”고 꼬집었다.

박문성 해설위원은 지난 9일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 “지금 선수들도 욕 먹어야 되고 신태용 감독도 못 했으면 욕 먹을 수 있다”며 “그런데 진짜 욕 먹어야 할 사람들은 어디 있냐”며 축구협회의 잘못을 지적하기도 했다.

한편 10월 A매치 참사 후폭풍으로 한국은 러시아월드컵에서 가장 수준 낮은 팀들이 몰린 4그룹행이 확정됐다.

FIFA는 오는 12월 1일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열리는 본선 조 추첨 때 10월 FIFA 랭킹을 갖고 그룹 배정을 하기 때문에 10월 A매치에서 연달아 패한 한국은 랭킹 포인트가 588점에 불과하다.

러시아행을 확정 지었거나 러시아에 갈 가능성이 있는 국가들의 10월 랭킹포인트를 따져보면 한국은 본선행 32개국 중 시드배정 순위가 29~30위에 그칠 것으로 보인다. 사우디아라비아 파나마 등이 한국보다 아래다.

FIFA경기위원회에 따르면 러시아와 1~7순위 국가가 1그룹, 8~15순위 국가가 2그룹, 16~23위 국가가 3그룹 24~31순위 국가가 4그룹으로 분류된다.

결국 한국은 본선에서 기량 좋은 1~3순위 팀들과 힘든 격전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보인다. 상대팀의 1승 제물로 집중 타깃이 될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오고 있어 본선에서도 여전히 가시밭길이예상된다. 

<사진=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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