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끄러운 민중의 지팡이’ 내부 개혁부터 시작하라

<뉴시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문재인정부의 경찰 개혁 작업이 시작됐다. 하지만 개혁 작업에 ‘인권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경찰 개혁의 로드맵을 제시할 경찰개혁위원회에서 백남기 농민 사망사건 등 공권력 인명피해 사건 재조사에만 힘을 쏟고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다. 경찰 개혁의 큰 줄기는 인권과 수사권 조정이었다. 하지만 아직까지 개혁위의 주된 업무는 경찰 내 인권 개혁으로 보인다. 굵직한 사건에 대한 재조사는 이슈를 몰고 다닌다. 하지만 진정한 개혁은 내부에 쌓여있는 적폐 청산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정의를 지켜야 할 경찰이 범죄를 저지르고 이에 따라 부과된 징계 부과금조차 내지 않고 있는 게 우리 경찰의 현실이다.
 
징계부과금…징계처분과 별도로 수수금액의 5배 이내 내야
이관받은 세무서에 경찰 징계부과금 징수 건수도 전무 

 
최근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이 경찰청으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17년 8월까지 경찰공무원에게 부과된 징계부과금 총 16억 16만원 중 4억 7,572만 원만 납부돼 징수율이 29.7%에 그쳤다. 미납액은 총 11억 2,443만 원이다.

범죄를 막아야 할 경찰이 범죄를 저질러 징계를 받고도 징계부과금을 내지 않는 실정이다. ‘민중의 지팡이’라는 별칭이 부끄러울 정도다.

징계부과금은 공무원이 금품·향응수수, 공금횡령 등으로 재산상 이득을 취했을 경우 징계처분과는 별도로 수수·유용 금액의 5배 이내에서 부과되는 제도로 2010년부터 시행됐다.
 
서울청 미납액 약 8억
고액 미납자도 제일 높아


지방청별 미납액은 서울청이 7억 9158만 원으로 가장 많다. 서울청 미납액은 전체의 70.4%를 차지한다. 하지만 서울청에 부과된 전체 9억 1,991만 원 중 86.1%가 미납 상태다.

그 다음으로 경기북부청 8342만 원(7.4%), 광주청 7821만 원(7%), 충북청 7050만 원(6.3%), 전남청 2926만 원(2.6%), 부산청 2,641만 원(2.4%), 경남청 2,608만 원(2.3%), 인천청 1,000만 원( 0.9%), 경기남부청 899만 원(0.8%) 순이다. 대구청·울산청·대전청·전북청·경북청·강원청·충남청·제주청·경찰대학은 미납액이 없었다.

고액 미납자 비율도 서울청이 가장 높다. 전체 미납자 43명 중 1억 원 이상 미납자는 모두 서울청 소속 2명으로 각 4억 원, 1억 원이다. 또 2천만 원 이상 고액 미납자 총 13명 가운데 9명이 서울청 소속이다.
 
납부 강제하지 않는 경찰
‘제 식구 감싸기 비난’

 
경찰은 징계부과금 징수율 저조 원인에 대해 미납자 대다수가 파면이나 해임 처분으로 퇴직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퇴직했다고 해서 징계부과금 납부 의무가 없어지는 것은 아닌데도 경찰청은 사실상 납부를 강제하지 않고 있다.

징계부과금은 60일 이내에 납부되지 않으면 관할 세무서에 징수업무가 이관된다. 하지만 세무서에도 경찰 징계부과금 징수 건수는 전무하다.

경찰청은 징수업무를 세무서로 넘기고, 세무서는 손 놓고 있는 사이 징계부과금 납부 대상자들은 아무런 불이익도 받지 않왔다. 세무서 의뢰 후 5년이 지나면 ‘징수 불가능’으로 감면근거가 된다. 시민들이 과태료나 벌금을 제때 내지 못하면 가산금이나 재산압류 등 불이익을 받고, 고액·상습 체납자는 구치소 등에 감치되기도 하는 것과 대조를 이룬다.

이용호 의원은 “징계부과금 징수현황을 보면 공직사회의 ‘제 식구 봐주기’ 관행이 여실히 드러난다”며 “국민에게 쇠방망이, 제 식구에게 솜방망이를 대는 식으로 해서는 공권력이 신뢰를 얻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또 “공직사회의 금품·향응 수수 차단이라는 제도 취지를 살리기 위해 비리 공무원의 공무원연금 압류, 예금 압류를 포함한 징계부과금 징수 강화 방안이 필요하다”며, “국회 차원에서도 대책 마련에 나서겠다”고 덧붙였다.
 
국가공무원 중
경찰이 징계 가장 많이 받아

 
경찰의 징계부과금 징수 노력이 미약한 가운데 국가공무원 중 경찰공무원의 징계가 가장 많은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올 들어 음주운전과 성비위 사건이 예년 수준을 웃돌고 있어 기강해이가 심각한 것으로 드러났다.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장제원 의원이 9일 인사혁신처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12년부터 2016년까지 국가공무원 1만2830명이 각종 징계를 받았다. 이 가운데 경찰공무원이 30% 이상인 4258명으로 집계됐다.

또한 경찰청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이후 지난 8월까지 경찰공무원 354명이 음주운전으로 징계됐으며, 같은 기간 경찰공무원 206명이 성비위 사건으로 징계처리됐다.

음주운전의 경우 올 들어 지난 8월 말 현재 60건이 적발됐다. 이런 추세라면 올해 말 90건에 이를 것으로 추정돼 지난 4년간(2013년~2016년) 평균치 73.5건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성비위 사건도 올 들어 지난 8월 현재까지 52건이 발생해 이미 지난 4년간 평균치 38.5건를 넘어섰다. 2013년 22건이던 성비위 사건 징계는 이듬해 23건으로 늘어난 데 이어 2015년에는 51건으로 급증했다. 지난해에도 58건을 기록했으며, 2017년 말 추정치는 77건이다.

장 의원은 “국민을 보호해야 할 경찰공무원이 오히려 각종 비위로 징계를 받는 일이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며 “특히 대선을 앞두고 있던 올 상반기와 새 정부 출범 이후 음주운전과 성비위 사건이 예년 수준을 뛰어넘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이어 “‘공직기강확립 총력대응기간’ 같은 보여주기식 일과성 대책이 아니라 근무기강을 바로잡기 위한 실질적인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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