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스베이거스에서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참사 발생

[일요서울 | 곽상순 언론인] 미국 역사상 최악의 총기 난사 사건이 발생했다. 은퇴한 회계사이자 대단한 부자로 알려진 스티븐 패덕(64)이 지난 1일 밤(미국 시간) 라스베이거스 만달레이 베이 호텔 32층 객실에서 지상의 야외 콘서트장에 모인 관중 2만 여명을 향해 총기를 난사했다. 이 일로 58명이 목숨을 잃었고 520여 명이 다치게 됐다. 이후 그는 자살했지만 그가 묵은 호텔 객실에서 반자동소총과 권총 등 화기 23정이 발견됐다. 사망자와 부상자를 합치면 패덕이 길 건너편에 운집한 인파를 향해 발사한 총알은 적게 잡아도 600발이다. 그런데 패덕이 총을 쏜 시간은 3분 남짓이다. 단순하게 계산하면 1분에 200발 이상을 쏜 셈이다.

미국 경찰은 패덕이 1분에 400발, 모두 1200발 가량 발사한 것으로 추산한다. 이는 패덕이 범행 현장에 갖다 놓은 반(半)자동소총 12정이 분당 800발까지 발사가 가능하도록 개조됐기 때문에 가능했다. 반자동소총은 방아쇠를 당길 때마다 한 발씩 발사되는 총이며, 전자동소총은 방아쇠를 당기고 그 상태를 유지하면 탄창의 총알이 다 떨어질 때까지 연속으로 발사되는 총이다. 미국에서 일반인은 전자동소총을 소지할 수 없다.

그런데 이번 사건을 계기로 그간 미국에서 간간히 문제로 지적돼 온 “범프 발사 개머리(bump-fire stock)”, 흔히 줄여서 부르는 “범프 개머리”가 대대적으로 주목받고 있다. 패덕이 시중에서 파는 범프 개머리를 사용해 총을 연속 발사한 것으로 수사 결과 드러났기 때문이다.

범프 개머리는 소총에서 방아쇠와 해머를 연결하는 하층 리시버(lower receiver)에 장착된다. 이 개조된 개머리는 총을 발사하면 사격자의 어깨에 전달되는 반동효과를 사용하여 방아쇠를 당긴 손가락으로 방아쇠가 다시 “부딪히게(bump)” 함으로써 총이 반복적으로 발사되게 만든다. 이런 장치는 인터넷에서 쉽게 구입할 수 있으며 가격은 개당 50달러에서 수백 달러까지 다양하다. 미국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반자동소총은 콜트사 제품인 AR-15이다. 범프 개머리 제품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슬라이드 파이어(Slide Fire)’ 회사 제품인데, 텍사스주에 본사를 둔 회사는 2010년 자사의 범프 개머리 제품이 장애인이 AR-15형 총기를 ‘범프 발사’하도록 도와주는 새 방법이라며 이것을 미국 연방 총기 규제당국을 상대로 홍보하기도 했다. 이 회사는 홈페이지에서 “심한 관절염이나 부분적 신체 마비, 또는 전통적으로 총기를 작동시키는 사람의 능력에 영향을 미치는 다른 질환을 겪고 있는 사람들은 사격 장치를 작동시키기 위해 이제 AR-15와 그들의 팔 전체의 근력(筋力)을 활용할 수 있다”고 광고하고 있다.

전자동소총은 미국에서 엄격하게 규제되는 반면, 반자동소총에 범프 개머리를 추가로 사용하는 것은 합법이다. 범프 개머리는 반자동소총이 전자동소총을 흉내 내도록 해 주지만, 자동적으로 발사하도록 총기를 실제로 개조하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현행 미국 연방 법률 하에서는 합법이라고 전문가들은 설명한다. 그러나 합법이라고 하더라도 범프 개머리는 총기 규제의 취지에 어긋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이 있다. 미 연방수사국(FBI) 간부 출신으로 CNN 방송의 법률 집행 분석가인 제임스 가글리아노는 “이것이 우리의 법률을 피해가는 어떤 것”이라며 “당신은 기계적으로 무기를 변경하고 있지 않지만, 당신이 제압사격을 퍼붓도록 해 주는 애프터서비스 시장 제품을 부착하고 있다”고 CNN 방송에서 법률의 엉성함을 지적했다. 

패덕이 범행에 사용한 무기들에 범프 개머리 같은 장치들이 부착됐다는 수사당국의 발표가 나오자 미국의 일부 국회의원들이 주목했다. 디나 티투스 하원의원(민주당·네바다주)은 “그것은 한마디로 사람들이 무기를 자동소총과 같은 어떤 것으로 개조하도록 허용하는 거대한 법률상의 허점”이라고 CNN에 말했다. 티투스는 범프 개머리를 금지하기를 원하는 여러 하원의원들 중 한 명이다. 다이앤 파인스타인 상원의원(민주당·캘리포니아주)은 10월 4일 반자동소총의 발사율을 자동소총의 발사율로 높이는 소총 부대용품의 제조를 금지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그녀는 “우리가 이것(총기규제)을 왜 멈춰야 하는가?”라며 “무기가 군사용 전투무기가 되는 것을 우리가 막지 못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반문했다. 민주당에서는 그녀를 포함해 모두 27명의 상원의원이 이 법안을 지지하지만 공화당은 이 법안을 지지하지 않는다. 정원 100명의 미국 상원에서 공화당이 52석을 확보하고 있다. 미국 언론 보도에 따르면 미국 상원의원들 중에는 범프 개머리가 뭔지 모르는 사람도 많다. 존 테스터 상원의원(민주당·몬태나주)은 “총기 업계 사람들을 만나 그들이 무엇을 하는지 볼 것이며, 파인스타인 의원의 법안을 보고 적당한 시간에 결정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밥 코커 상원의원(공화당·테네시주)은 그 장치들이 어떻게 작동하며 그것이 법률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그의 보좌관들이 그에게 보여줄 수 있을 때까지 그 법안에 대한 반응을 내놓을 수 없는 입장이라고 말했다. 

전자동소총의 구입은 1930년대 이래 미국에서 금지돼 왔다. 하지만 범프 개머리는 전미(全美)화기법이 제정된 1934년에도, 민간인에 의한 자동소총의 양도나 소지를 금지하도록 그 법이 개정된 1986년에도 존재하지 않았다. 미국 연방기관인 ‘주류·담배·화기·폭발물 단속국’(ATF)의 특별 수사관을 지낸 샘 라바디는 “지난 여러 해에 걸쳐 기술이 진화한 가운데, 내가 믿기에, 그 법률의 최초 작성자들은 아마 이런 종류의 부대용품이 이런 식의 변경에 사용되리라고 내다보지 못한 것 같다”고 말했다. 법률이 현실을 따라잡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총기협회(NRA)는 10월 5일 범프 개머리 같은 장치들에 대한 규제 강화를 지지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NRA는 성명에서 “NRA는 이런 장치들이 연방 법률에 부합하는지 여부를 즉각 검토할 것을 ATF에 촉구하고 있다”며 “반자동소총이 전자동소총처럼 작동하게 하도록 설계된 그 장치들은 추가 규제의 대상이 돼야 한다고 NRA는 믿는다”고 밝혔다. 대형 총기난사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버락 오바마 전 대통령은 총기규제 강화를 부르짖었지만 그의 희망은 희망으로 끝났다. 총기 규제가 강화되지 않는 것은 NRA의 막강한 로비력 때문이다. 도널드 트럼프 현 대통령은 이번 참사에 즈음해 총기규제를 아예 언급하지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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