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 ‘461억 원’ 투자했는데...

남재철 기상청장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기상청이 ‘오보청’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은 것에 이어 해양 기상관측 장비 도입에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으나 무용지물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기상청이 해양 기상 관측 자료를 국내 최초 국산 수치모델인 파랑수치 예보 모델에 활용하지 않아 수년간 부정확한 해양기상 예보를 해 왔다는 것이다. 또 해양 기상 관측 자료가 예보관들이 실황 예보를 하는 데 참고자료 정도로 사용됐다는 문제도 제기돼 질타를 받고 있는 실정이다.

9월 부산 ‘물폭탄’ 오보 논란···최근 5년간 강수 유무 적중률 46%
114대 해상 기상 관측 장비 도입···관측 자료는 예보관들의 참고자료로만?


기상청이 ‘오보청’이라는 오명을 받은 최근 사례를 살펴보면 지난 9월 11일 갑작스레 쏟아진 폭우로 부산 일대가 마비됐다. 오전 7시 27분경 연제구 거제동의 한 굴다리에 차량이 고립돼 119구급대원들이 6명을 구조했다. 오전 8시경에는 부산진구 범천동 안락노인정이 침수돼 노인 2명이 구조됐다.

이 밖에도 서구 천마산터널 공사장 인근에서 토사가 쏟아져 주차된 차량 여러 대를 덮쳤고 같은 지역 한 아파트 신축 현장 인근 도로변 전신주가 쓰러져 도로가 통제되는 사태도 벌어졌다. 쉴 새 없이 쏟아지는 폭우로 부산 지역의 유치원과 초‧중‧고등학교 1047곳은 임시 휴업했다.

이날 기상청은 부산을 포함한 남부지방에 시간당 30mm 이상의 강한 비와 최대 150mm 이상의 강수량을 예보했다. 하지만 부산 영도구에는 기상청 예상보다 2배나 많은 358.5mm의 비가 쏟아졌다. 부실 예보에 부산 시민들은 무방비 상태로 폭우에 노출됐다.

이 밖에 기상청이 예보 적중률 문제로 체면을 구긴 사례는 부지기수다. 기상청은 매년 폭염과 장마철이 되면 연례행사처럼 ‘오보청’이란 오명을 뒤집어쓰고 있다. 오죽 신뢰성이 떨어지면 ‘기상청 체육대회가 열리는 날은 어김없이 비가 온다’는 우스갯소리가 나올까.

감사원이 지난 8월 22일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최근 5년간(2012~2016년) 기상청의 강수 유무적중률은 46%에 그쳤다. 비가 올 것으로 예보한 5193회 중 실제 비가 내린 경우는 3228회로 62%에 불과했다. 비가 오지 않은 경우는 1965회로 38%, 비가 내리지 않을 것으로 예보했으나 비가 온 경우도 1808회로 집계됐다.

기상 전문가들은 기상청의 예보 정확성이 빗나가는 이유로 우리나라 실정에 맞지 않는 수치 예보 모델을 쓰고 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우리나라와 영국은 기상 환경이 달라 현재 사용 중인 영국의 수치 예보 모델을 그대로 쓰기에는 무리가 있다는 분석이다.

기상청 관계자는 “2019년부터 한국형 수치 예보 모델 시범 운영에 들어간다”며 “한국형 수치 모델을 도입할 경우 우리나라 실정에 맞게 이상기후를 세부적으로 다 고칠 수 있다”고 전했다.

이어 “수치 모델이라는 게 지구를 다 바둑판으로 쪼개서 그물망으로 교차점마다 계산해서 예측하는 건데 지금은 우리나라 모델이 아니다 보니 어렵다”며 “모델 자체가 변화하는 기후환경을 반영하고 그물망을 좁혀야 한다”고 설명했다.
 
해상 기상 예보
정확도 왜 낮나

 
기상청에 해상 기상 관측 장비에 대한 대규모 예산이 투입됐지만 예보 정확도는 나아지지 않았다는 지적도 나온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김삼화 국민의당 의원은 지난 17일 국회에서 열린 기상청 국정감사에서 이같이 밝혔다.

김 의원은 기상청에 확인한 결과 “기상청이 지난 7년간 461억 원을 투자해 해상 기상 관측망을 구축하고도 지금까지 한 번도 해상 기상 관측 자료를 파랑수치예보 모델에 활용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기상청은 지난 2009년부터 지금까지 파랑수치예보 모델을 개발‧운영하는 데 21억8500만 원을 투자한 것으로 알려졌다.

파랑수치예보 모델은 기상청이 국내 최초로 국산화한 수치 모델로 파고의 움직임을 시간대별로 예측해 내는 컴퓨터 소프트웨어다. 해상 기상 관측 자료를 입력했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올지 예측하는 분석틀로 많은 해상 기상 관측 자료가 입력될수록 해상기상예보의 정확도를 높일 수 있다.

기상청이 김삼화 의원실에 제출한 ‘7년간 해상 기상 예보 정확도’에 따르면 파랑수치예보 모델의 예측 값과 해양기상 관측 값을 비교한 결과 전 지구 모델의 경우 유의파고가 연평균 0.60m, 지역 모델의 경우 연평균 0.28m, 국지연안 모델의 경우 3년 평균 0.30m의 차이가 나는 것으로 나타났다.

김 의원은 “기상청이 해양 기상 관측선(기상1호)를 수치예보 모델에 활용도가 높은 해역에 관측선을 배치하지 않고 연안 위주로 운항해 수치 모델에 입력할 수 있는 유의미한 관측 자료를 생산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기상청은 기상선진화 12대 과제를 추진하면서 지난 7년간 ‘해양 기상 관측망 확충 및 운영 예산’으로 총 461억 원가량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의원은 “파랑수치예보 모델에 실제 해상 기상 관측망에서 관측된 파랑 관측 값을 활용하는 자료동화기법(모수화)을 적용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감사원 자료에 따르면 기상청은 지난 2011년부터 해상 기상 관측을 위해 해양기상관측선 1대, 해양기상부이 17대, 파랑계 3대, 등표기상관측장비 9대, 파고부이 54대, 연안방재 관측 장비 18대, 선박기상관측장비 12대 등 총 7종‧114대의 관측 장비를 활용하고도 이런 관측 자료가 수치 모델에 활용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립기상과학원 관계자는 이와 관련해 “유럽과 미국 예보센터에서 파랑수치계산값 대신 실제 파랑 관측 값을 활용하는 자료동화기법을 적용하고 있다”면서 “해상예보 정확도가 초기 12시간까지만 지속되는 등 실효성이 크지 않아, 수치 모델의 해상도를 높이는 데 우선순위를 뒀다. 해상 관측망에서 관측한 실제 파랑 관측 값은 예보관들이 실황예보에서 활용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김 의원은 “기상청이 461억 원을 투자해 확충한 해양 기상 관측망에서 관측된 자료가 과학 예보를 위해 활용되지 못하고 예보관들이 실황예보를 하는 데 참고자료로 제공돼 왔다”고 비판했다.

이어 “수백억 원의 관측 장비 운용예산이 과학 예보를 위해 사용되지 못하고 예보관들의 경험치에 의존해 수동 예보를 하는 데 사용돼 왔다”며 질타했다.

이에 대해 남재철 기상청장은 “해상 관측 자료를 파랑모델 예보에 활용 못하는 것이 맞다. 직접적인 활용은 못해도 간접적인 활용은 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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