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의 대안이냐 선거공학적 이합집산이냐

<사진=정대웅 기자>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야권에 ‘통합 바람’이 거세지고 있다. 바른정당 내 자유한국당과의 통합을 추진하는 움직임과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꿈꾸는 움직임이 동시다발적으로 일어나면서 복잡한 양상을 띠고 있다. 최근 ‘보수대통합’이 주춤한 틈을 타 ‘국민의당-바른정당 통합론’이 급부상하면서 정계 개편의 소용돌이가 휘몰아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코너로 몰렸던 바른정당 자강파는 국민의당과의 통합론에 적극 화답하면서 반전을 꾀하고 있다. 당초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예상됐던 바른정당 자강파는 국민의당 손을 잡음에 따라 바른정당은 두 갈래로 명확하게 갈라지는 모양새다. 아울러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은 국민의당 분열과 더불어민주당에도 영향을 끼칠 것으로 전망되면서 대규모 ‘연쇄 정계개편’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정계개편 중심 바른정당, ‘두 갈래 분열’
‘통추위’, 보수 통합 가시화…이르면 이달 말·최대 15명
‘국민-바른’ 통합 급진전…安·劉 만나 의견 조율 시동
민주당도 사태 추이 촉각…연내 대규모 지각변동 가능성

 
지난주 주호영 바른정당 원내대표와 김동철 국민의당 원내대표의 비공개 회동에서 구체적인 통합 논의가 오가면서 야권 발 정계개편이 급물살을 타고 있다. 보수 대통합을 추진하던 세력들은 복병을 만난 듯 이를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하며 다시 보수 통합론을 띄우는 상황이다.
 
복병 만난 ‘통추위’
견제 날리며 통합 재시동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보수 통합 추진 모임인 ‘보수대통합 추진위원회(통추위)’는 지난 20일 오전 회의를 열고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 움직임에 대한 견제구를 날렸다.
 
김용태 바른정당 의원은 “바른정당은 바른보수라는 이름과 자강이라는 이름으로 당 정체성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이것은 말이고, 레토릭일 뿐”이라며 “(국민의당과의 합당 문제에 대해) 바른정당의 입장 없이 그냥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야합과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김 의원은 “당이 지금 한국당과의 통합이나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얘기하면서 우리 노선도 없이 자강이라는 것은 말뿐이라는 것을 스스로 자인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같은 당 이종구 의원은 유승민 의원과 안철수 대표를 싸잡아 비판하기도 했다. 이 의원은 지난 대선 전 자신이 한국당·국민의당·바른정당 후보 간 단일화를 주장한 점을 언급했다.
 
그는 “그 당시 안 후보는 (이에 대해) 선거 공학적으로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고, 유 후보도 국민의당과 안보 정책이 전혀 다르다고 얘기했다”며 “그런데 이제 와서 다시 정책에 별 차이가 없고, 우리는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다고 얘기하는 것은 정치인으로서 큰 정치를 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라고 비판했다.
 
보수 통합에 큰 걸림돌로 여겨졌던 박근혜 전 대통령 출당 문제도 가시화되고 있다. 이와 함께 친박계 좌장인 서청원·최경환 의원의 출당 문제도 주요 변수다. 지난 20일 한국당은 홍준표 대표의 요구에 따라 윤리위를 열어 위 3명에 대한 출당을 의결했다.
 
이미 당원권이 정지된 박 전 대통령은 현역 의원이 아닌 만큼 당헌 당규에 따라 자진 탈당을 권고받고 10일 이내에 탈당 신고서를 제출하지 않으면 자동으로 제명된다. 반면 현역 의원인 두 의원은 의원총회에서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받아야 제명된다.
 
한국당 관계자는 “윤리위 의결 이후 의원총회를 소집해야 하는데, 국정감사 이후인 11월 중에 두 의원의 제명 여부가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다만, 바른정당 통합파들이 그간 보수 통합 조건으로 박 전 대통령의 제명을 명분으로 내세운 만큼 두 의원의 제명 여부가 통합 흐름을 방해할 결정적 요소는 되지 않을 전망이다.
 
홍 대표는 미국 방문(23~ 27일)을 마치고 돌아온 뒤 30일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박 전 대통령 제명을 확정할 방침이다. 이르면 이달 말 또는 대부분의 국정감사가 끝나는 31일 이후 11월 초 바른정당 일부 의원들이 한국당에 합류할 것으로 관측된다. 홍 대표는 최근 바른정당과의 통합 시기에 대해 “이달 안에 마무리할 것”이라고 했다.
 
탈당 규모는 10명에서 최대 15명으로 정치권 안팎에서 보고 있다. 바른정당 황영철 의원은 지난 13일 tbs 라디오와의 인터뷰에서 “현재로서는 (적극적 통합파가) 9명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도 YTN 라디오에서 “10명 내외의 바른정당 통합파가 이미 루비콘강을 건넜다”고 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전 대표는 “12명에서 15명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의 자강파, 반전모색
국민-바른, 이해관계 ‘일치’

 
당초 보수 통합 추진으로 바른정당 자강파는 또다시 정치적 위기에 몰렸으나 국민의당과의 통합 문제에 적극 화답하며 반전을 모색하고 있다. 유승민 의원은 지난 18일 한국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른정당과 국민의당, 자유한국당 내 중도·보수 세력이 통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필요하다면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도 만날 것”이라고 밝혔다.
 
안철수 대표도 지난 20일 국회에서 취재진과 만나 “필요한 사람들이 있으면 직접 만나서 얘기 해봐야 한다”며 유 의원과의 만남을 시사했다. 이르면 21~22일 주말 회동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안 대표는 전날 중앙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대해 ‘영·호남 통합에 의한 지역주의 타파’라고 강조하며 “대한민국 정치사 중에 이뤄진 적이 없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국민의당 의원 40명 중에 약 30명 정도가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긍정적이라고 송기석 의원이 밝히기도 했다.
 
두 당을 둘러싼 연대·통합 발언은 당 안팎에서 단발적으로 흘러나왔지만 이처럼 급물살을 타게 된 것은 보수 통합으로 위기 의식에 따른 반작용으로 보인다. 실제 보수 통합이 이뤄지면 한국당은 바른정당 통합파의 탈당 규모에 따라 제1당을 넘볼 수 있는 자리에 있다. 이 경우 한국당과 민주당과의 거대 양당으로 의회 권력이 재편돼 제3당인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입지가 급격히 축소될 수 있다.
 
또 최근 바른정당 자강파와 국민의당은 보수 통합에 따른 대안으로 공동교섭단체 구성을 추진했다. 하지만 현행 국회법상 구성 요건이 안 돼 이 같은 움직임도 좌초됐다. 국회법에 따르면 ‘국회에 20인 이상의 소속의원을 가진 정당은 하나의 교섭단체가 된다. 그러나 다른 교섭단체에 속하지 아니하는 20인 이상의 의원으로 따로 교섭단체를 구성할 수 있다’라고 돼 있다.
 
바른정당 통합파 탈당으로 교섭단체가 붕괴된 바른정당 자강파들과 국민의당을 나온 일부 의원들 간 공동교섭단체를 꾸리는 방안이 있지만 사실상 불가능한 시나리오다. 아울러 새 지도부를 꾸렸음에도 지지율 침체 중인 국민의당과 상황이 비슷한 바른정당이 처한 현실도 통합 급진전의 배경이 됐다는 분석이다.
 
이러한 움직임은 정치권 전체에 연쇄반응을 일으키고 있다. 주춤한 분위기였던 한국당과 바른정당의 보수 통합에 불씨를 당겼고, 한국당의 덩치가 커질 것으로 예상되자 민주당은 국민의당과의 연대·통합 문제에 대해 본격 논의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민주당 내 한 의원은 국민-바른 통합 움직임에 대해 “가만히 지켜만 볼 일이 아니다”며 “국민의당과 연결고리를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두 당의 통합이 순조롭게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국민의당 내 명확한 반대 목소리가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박지원·정동영·천정배 등 호남 중진 의원과 동교동계 원로 인사들은 반대 의사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대 의사도 ‘뚜렷’
국당-바른, 기회를 위기로?

 
앞서 유승민 의원은 국민의당과의 통합 선결조건으로 안보 노선 조정과 지역주의 탈피를 언급했다. ‘햇볕정책’ 포기를 주문한 것이다. DJ 정신을 정통 계승하는 국민의당 내 의원들과 접점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자강파들 간 화학적 결합이 쉽지 않을 것이라는 점, 선거를 앞둔 선거공학적 이합집산 등으로 현재의 합당 논의는 피상적이라는 분석도 있다.
 
한편, 안철수 대표와 지도부는 이들을 최대한 설득한다는 계획이지만, 이 과정에서 친안파와 비안파로 나뉘어 지난 전당대회에서 불거졌던 계파 갈등이 다시 부상할 가능성도 농후하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국민의당도 분당 수순을 밟게 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현재 국민의당 내부 사정도 좋지 않다. 최근 당 조직 개혁 방안으로 전국 시도당·지역위원장의 ‘일괄 사퇴’를 밝히면서 내부 반발이 이어지고 있다. 이 같은 조치가 바른정당과의 통합 전 정지작업이라는 것이 중론이다. 이에 따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민주당에 우호적이었던 지역위원장들이 민주당 측으로 돌아설 것이란 얘기가 나온다.
 
이런 맥락에서 양당 간의 통합 논의는 한국당과 민주당을 향한 제스처라는 분석도 있다. 바른정당 통합파 일부가 국민의당과의 통합을 모색하면서 몸값을 높이고 있으며, 국민의당 역시 연정을 모색하는 민주당을 향해 제스처를 보내는 것이라는 해석이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