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비전문가로 구성된 공론화위원회의 방식으로 국가대계를 흔드는 탈원전 문제를 결정하려고 했다. 그러나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공사 지속 여부에 대한 공론화위의 최종 결론은 ‘건설 재개’ 59.5%, ‘건설 중단’ 40.5%로 나왔다. 불행 중 다행이다.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로 만들어 강압으로 인정하게 함을 비유하는 ‘지록위마(指鹿爲馬, 사슴을 가리켜 말이라고 한다)’의 고사가 있다. 문재인 정부가 청와대 홈페이지에 탈원전 정서를 대변하는 동영상을 올릴 정도로 탈원전의 기치를 높이 들고 중단 쪽으로 분위기를 몰았지만, 471명의 집단지성이 급격한 탈원전을 막았다.

이번 사태는 지록위마 식 졸속 정책은 반드시 후과(後果)를 남긴다는 교훈을 줬다. 공론화로 초래된 손실만 1000억 원이다. 공론화위 뒤에 숨은 정부는 무책임했으며, 5·6호기 공사 중단은 법적 하자 논란을 자초했다. 정부는 탈원전에 따른 국론분열과 공사차질 및 원전 수출 차질을 초래한 것에 대해 분명한 책임을 져야 한다.

지난 7월에 60개 대학 과학기술 전공 교수 417명이 “전문가 의견 수렴과 합리적인 공론화 과정을 통해 장기 전력 계획을 수립하라”며 탈원전 정책 중단을 촉구한 바 있다. 이어서 지난 10월 10일 서울대 공대 학생회가 “정부의 독단적인 탈원전 정책 추진으로 차세대 원전 개발 사업 등이 위기에 처했고 학문이 존폐의 위협에 시달리고 있다”며 탈원전 반대 성명서를 발표했다.

마이클 셸렌버거 환경진보 대표 등 미국의 에너지·환경 관련 전문가와 석학 21명은 지난 10월 6일 “한국의 원전과 관련한 사실(fact)을 알리겠다”며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들은 성명서에서 “현재 한국의 전력 생산량을 태양광으로 충당하려면 서울의 7배나 되는 땅이 필요하고, 원전을 천연가스로 대체하면 최대 2700만대의 차가 더 다니는 것만큼의 탄소가 추가 배출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천연가스 구입비만 한 해 11조 원에 달할 것”이라며 “이는 일자리 34만3000개를 만들 수 있는 돈”이라고 했다.

유럽 내 대표적인 진보·좌파 지도자인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은 “포퓰리스트들은 원전 정보보다는 탈원전만을 너무 성급하게 이야기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나아가 ‘탈원전’ 이슈와 관련해 “합리적인 에너지 믹스(조합)가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난 17일 호주언론에 따르면, 호주 정부가 풍력, 태양광 등 신재생에너지를 강화하려던 방침을 포기하고 석탄, 가스, 수력 등 전통적인 발전 방식에 계속 의존하는 에너지 정책으로 선회했다. 우리나라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할 좋은 사례들이라 하겠다.

급격한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전기요금 폭등 등 국민 부담을 키울 수 있다는 지적이 국감에서 나왔다. 지난 18일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이철우 의원(자유한국당)은 “캐나다의 급격한 신재생에너지 전환 정책으로 온타리오주 전기요금이 2003년에 비해 400% 인상됐다”고 주장했으며, “온타리오주의 급격한 신재생에너지 전환이 가져온 국민의 전기요금 부담 가중과 산업 위축 문제는 문재인 정부의 급격한 탈원전 정책과 닮았다”고 지적했다.

탈원전 문제는 이념이나 정치색을 초월하여 멀리 보고 종합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국익에 부합하지 않는 대선공약을 군사작전 하듯이 집행해선 국가백년대계가 무너진다.

현재 우리나라가 글로벌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산업은 반도체, 자동차, 조선, IT 산업 등과 원전산업뿐이다. 우리나라는 세계 6위의 원전 운영국이자 수출국이다. 탈원전 추진은 세계에 한국의 ‘원전 폐업’을 홍보하는 것이 되어 수출 기회를 스스로 걷어차는 국익 자해(自害) 정책이 될 수 있다.

전 세계적으로 수력, 풍력, 태양광 등의 신재생에너지가 가파르게 성장하고 있다. 신재생 에너지 중 태양광발전의 비약적인 성장은 높아진 경제성과 소음이나 경관, 안전 등 사회적 수용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 중에서도 회전식 수상 태양광 발전은 토지비용이 들지 않아 경쟁력이 있으며, 고정식에 비해 발전량도 약 10% 많다.

그러나 정작 정부와 공기업들이 대기업 위주의 정책을 펴고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의 세계적인 특허 기술들이 사장되고 있어 아쉽다. 현 정부가 중소기업 육성을 위해 중소기업벤처부를 신설한 것에 발맞추어 신재생 에너지 활성화를 위한 특단의 중소기업 지원 대책이 수립돼야 한다.

원전은 국가 백년대계와 관련된 국책사업이다. 김대중·노무현 정부도 저렴한 비용으로 다른 산업의 경쟁력을 제고(提高)할 수 있는 원자력 에너지의 효용을 포기하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는 졸속 탈원전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한다. ‘신재생에너지 발전비율을 2030년까지 20%가 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정부 여당의 방침은 쉬운 일은 아니지만 꼭 이뤄지길 바란다.

‘선 신재생에너지 확보, 후 원전 축소’ 정책이 옳은 방향이다. 국가 경영은 ‘나무 대신 숲’을 보는 안목이 필요하다. 포퓰리즘 정책은 외눈박이 정책으로 미래 세대에 부담을 떠넘기는 정책이다. 망국으로 가는 지름길이 될 수 있다. “탈원전으로 가면 경제도, 안보도, 환경도 모두 득 될 게 없다는 건 현재의 과학으로 보면 자명하다”고 한 서울공대 정정아(20) 양의 울분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우종철 자하문연구소장  ilyo@ilyo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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