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 1월 22일 한국 정치사를 뒤흔드는 사건이 발생했다. 13대 대선에서 야권 분열로 가까스로 대통령에 당선된 노태우 대통령이 집권 후 실시된 13대 총선에서 125 대 164라는 여소야대 정국에 직면한 것이다. 이에 노 대통령은 야당 대표들을 상대로 ‘여야합당’이라는 전대미문의 정치적 야합을 시도한다. 김대중 평민당 총재는 반대했으나 김영삼 통일민주당 총재와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합당에 찬성하면서 거대 여당인 민주자유당이 창당되었다. 이른바 ‘3당 합당’이었다.  
이 같은 이질적 정당들의 합당이 ‘정치 야합’으로 맹비난 받은 것은 당연하다. 당시 노 대통령은 여소야대 정국에서 5·18 광주 민주화 운동에 대한 진상조사와 5공화국 수장인 전두환 전 대통령의 국회 청문회 개최를 요구하는 야당의 압박 속에서 정국을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기가 어렵다고 판단했다. ‘양김(兩金)’ 분열로 정권 획득에 실패한 김영삼 총재는 총선에서 김대중 총재의 평민당에 뒤지자 이러다가는 김대중에 휘둘려 결국 대권에 실패할 것이라는 불안감에 시달렸고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개헌 후 총리가 되어 실권을 장악하려는 야심이 있었다. 
결국 노 대통령의 정국 타개를 위한 궁여지책에 김영삼 총재의 묻지마 대권욕, 김종필 총재의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한 3인3색의 조합이 이루어졌다. 이해관계가 다른 세 가족이 한 지붕 밑에 억지로 세 들어 사는 형국이었다. 예상대로 민주자유당은 이후 내부적으로 엄청난 혼란과 정쟁이 벌어지면서 14대 총선에서 참패당하고 말았다.
오직 김영삼 총재만 치밀한 정치적 계산을 깔아놓고 ‘3당 합당’을 한 후 14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반면 노 대통령은 전두환 전 대통령과 함께 자신이 밀어준 김영삼 대통령에 의해 법정에 서는 신세가 됐다. 김종필 총재는 내각제 실현이 불발하자 김 대통령과 결별한 뒤 김대중 총재와 연합해 진보정권 탄생을 도왔다. 이후 김 대통령은 1995년 지방선거에서 민자당이 참패하자 민정계를 대거 축출하고 민주계를 중심으로 민주자유당을 개편하기에 이른다.
그는 또 교원 민주화를 주장하면서 전교조 해직자들의 복직을 허용해 전교조 합법화에 다리를 놓아주었다. 훗날 전교조와 함께 대한민국 양대 정치세력이 된 민노총도 김영삼 대통령 시절 창립됐다. 
대한민국의 보수는 이 때 이미 몰락의 길을 마련한 셈이다. 박근혜 정부의 탄생으로 보수의 부활이 잠시 기대됐으나 최순실 국정농단 사태로 박 전 대통령이 탄핵되고 정권을 진보 진영에 다시 내주면서 보수는 그 명맥이 완전히 사라질 위기에 놓였다. 
근래 야권 일각에서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론 또는 통합론이 들려왔다. 정체성이 다른 당들의 합당론이라는 점에서 과거 ‘3당 합당’이 오버랩된다. 합당을 추진하려던 주체들의 속내 역시 그때 주역들의 그것과 닮았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와 유승민 바른정당 의원 둘 다 내년 지방선거에서의 패배는 곧 자신들의 정치생명과 직결된다는 점을 잘 알고 있기에 선거공학적인 합당 유혹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이념적 이질 정당들이 원칙을 무시하고 어떤 형태든 정략적으로 통합을 할 경우 자기부정의 행위에 다름 아니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이미 당 내부적으로도 분열해 있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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