각자 역할론 ‘부상’…승계 기반 본격 닦나

[일요서울 ㅣ 이범희 기자] 최근들어 얼굴을 본격적으로 드러내며 새롭게 떠오르고 있는 재벌가 아들들이 있다. 이들은 각자의 회사에서 경영수업을 받으며 자질을 키워가고 있다.

이들은 오너 승계 작업과 동시에 그룹 내 핵심임원 자리를 꿰차고 승계 기반을 위한 초석도 다진다. 일요서울은 내달 새롭게 출범하는 DB그룹 김남호(사진 왼쪽)와 GS그룹의 허윤홍을 주목해봤다.

[김남호]   김준기 창업주 갑작 퇴진으로 승계 앞당기나
[허윤홍]   3년 만에 계열사 주식 사들이며 후계구도 형성

재계에 따르면 DB그룹은 다음달 1일 공식 출범식을 진행할 예정이다. 주요 계열사의 사명에서 ‘동부’를 ‘DB’로 변경하는 작업을 대부분 완료했고 새로운 사명을 알리는 TV광고 등도 이미 시작했다.

동부그룹은 구조조정 과정에서 부실기업으로 실추된 그룹의 이미지를 쇄신하고 그룹의 정체성을 재정립하는 차원에서도 사명 변경이 필요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다만 DB그룹으로 새로운 출발을 하는 과정에서 동부그룹 창업하고 48년 동안 이끌어온 김준기 전 회장은 함께할 수 없게 됐다.

김 전 회장은 여비서 성추행 혐의로 피소되면서 지난달 불명예 퇴진했다. 현재 미국에 머물며 신병 치료를 받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김 전 회장의 퇴진으로 갑작스럽게 이근영 회장이 바톤을 이어받게 됐지만 결국은 김 전 회장의 장남인 김남호 상무 역할이 한층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아울러 올해 초 임원으로 승진한 만큼 당분간 일단 이 회장을 보좌하면서 경영수업에 매진할 것으로 보인다.

김 상무는 지난 2009년 입사해 동부제철, 동부팜한농, 동부생명을 거쳤고 현재 동부그룹 금융부문 전략을 총괄하는 동부금융연구소에서 일하고 있다. 제조업과 금융업에서 두루 경험을 쌓은 셈이다.

김 상무는 동부그룹 주요계열사의 지분을 상당 부분 보유한 최대주주이기도 하다. 김 상무는 ㈜동부 18.59%, 동부화재 9.01%, 동부증권 6.38%, 동부하이텍 2.04% 등의 지분을 보유하고 있다.

㈜동부는 동부그룹의 지주사 역할을 하고 있고 동부화재는 금융계열사를 지배하고 있다. 지분구조상 김 상무가 동부그룹 지배구조의 정점에 있는 상황이다.

김 전 회장이 물러난 상황에서 동부그룹 최대주주인 김 상무의 역할 확대는 불가피한 상황이지만 40대 초반의 젊은 나이가 걸림돌이다. 김 상무는 1975년생으로 올해 43세다.

결국 이 회장이 일단 전면에 나서는 모양새지만 김 상무도 동부금융연구소 외에 주요 계열사의 핵심 보직을 맡으며 역할을 확대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부의 대물림과 현장수업 병행

GS그룹도 최근 허창수 회장의 1남 1녀 중 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전무가 3년 만에 GS와 GS건설 주식을 동시에 사들이면서 후계구도를 위한 행보를 이어간다는 해석이 나돈다.

허창수 GS그룹 회장의 1남 1녀 중 아들인 허윤홍 GS건설 전무가 3년 만에 GS와 GS건설 주식을 동시에 사들였다.

지난 20일 금융감독에 따르면 허 전무는 전날 GS 주식 3만7810주(0.04%)와 GS건설 3만7900주(0.05%)를 장내매수했다. 매입 당일 종가 기준으로 각각 약 26억 원과 10억 원어치다. 2014년 이후 3년 만에 이뤄진 이번 주식 매수로 허 전무는 GS 지분 총 49만4888주(0.52%), GS건설 15만9318주(0.22%)를 보유하게 됐다.

GS그룹 오너 4세 중 GS 지분은 허남각 삼양통상 회장(79)의 장남인 허준홍 GS칼텍스 전무(42)가 168만여 주(1.73%), GS건설은 허진수 GS칼텍스 회장(64)의 장남 허치홍 GS리테일 부장(34)이 43만여 주(0.61%)를 보유해 가장 많이 들고 있다.

회사 안팎에선 허 전무가 기업가치 상승에 대한 자신감과 책임경영 의지를 드러내는 차원에서 지분을 매입한 것으로 해석하고 있다. 유가증권시장에서 GS와 GS건설은 지난 8월 1일과 7월 24일 전고점을 찍은 뒤 하향곡선을 그리고 있다.

이후 GS는 10.95%, GS건설은 20.95% 하락했다. 이날 GS는 전날과 같은 6만8300원, GS건설은 400원(1.48%) 오른 2만7350원에 마감했다.

GS그룹 관계자는 “개인적인 판단에 따른 매수로 배경은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미국 워싱턴대에서 경영학 석사(MBA)를 마치고 2013년 GS건설에 입사한 허 전무는 현재 사업지원실장으로 근무하고 있다.

허 전무의 지분 취득과 별개로 아버지인 허창수 회장은 지난 19일 GS건설 주식 19만4000주, 약 52억 원어치를 재단법인 남촌재단에 증여했다. 허 회장은 2006년 이후 11년 동안 매년 남촌재단에 주식을 넘기는 방식으로 모두 약 440억 원어치 75만6160주를 기부했다. 남촌재단은 소외계층 자립 기반을 지원하는 사회 공헌 활동을 펼치고 있다.

세대교체…우려와 기대

재계 전문가들은 대대적이면서 동시다발적으로 이뤄지는 한국 재계의 세대교체에 우려와 기대를 동시에 표명하고 있다.

창업주와 2세들에 비해 검증되지 않은 인물이 많기 때문이다. 또 경영권 승계 분쟁이 가시화할 경우 기업 가치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런 승계작업과 분쟁관련 소송, 지배구조 개편과 구조조정으로 인해 투자은행(IB) 업계의 ‘먹거리’가 늘어날 가능성도 기대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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