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하철·동호회서 당당하게…‘우리 사귑시다’

<뉴시스>
연애, 헌팅(이성에게 호감을 느껴 길거리에서 데이트를 요청하는 일), 동호회 등은 더 이상 젊은 층의 전유물이 아니다. 최근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도 남녀 간의 ‘애틋한’ 사랑이 싹트는 일이 다반사다. 특히 과거와 다른 점이 있다면 ‘공개적’이라는 것. 그동안 고연령층의 ‘작업(이성을 꾀는 일)’이 일부 유흥업소나 인적이 드문 장소에서 이뤄졌다면, 지금은 당당하게 장소 구분 없이 이뤄지고 있다고 한다. 이는 ‘황혼 로맨스’에 대한 인식 변화의 반영으로 풀이된다.
 
#. A(65·여)씨는 최근 외출을 하고 지하철 노약자석에 앉아 집에 가던 중 한 70대 남성이 다가와 “시간이 있느냐”며 근처에서 차나 한 잔 하자고 말을 걸어왔다. 평일 오전이었기 때문에 승객은 거의 없었다. A씨는 ‘나잇값 못 한다’며 남성에게 핀잔을 줬다. 이 남성은 대수롭지 않은 듯 다음 칸으로 넘어갔다. A씨는 “세상이 참 많이 변한 걸 느꼈다”고 말했다.
 
#. 운동 삼아 자전거를 타기 시작한 B씨(61)는 주변의 권유로 한 자전거 동호회에 가입했는데, 이 동호회는 자전거보다 친목도모에 더 관심이 있었다. 일주일에 서너 차례 모임을 가졌지만, 자전거를 타는 시간보다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시간이 더 길었다. 심지어 자전거를 갖고 있지 않은 회원도 있었다. B씨는 이후 동호회를 탈퇴했다.
 
최근 60대 이상의 연령층에서 ‘인생 2막 연애’가 공공연하게 이뤄지고 있다는 전언이다. 2000년대 초반만 하더라도 음지에서 성행하던 황혼 연애는 최근 들어 공개적·적극적이라고 전해진다. 당시 콜라텍, 캬바레, 성인나이트 등에서 ‘작업’이 이뤄졌고, 데이트는 주로 등산을 하며 은밀히 이뤄지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최근 해당 연령층의 인구가 증가하고, 황혼 연애에 대한 인식이 개방됨에 따라 장소를 불문한 ‘구애 활동’이 빈번하다고 한다.
 
특히 ‘동호회’는 파트너를 찾는 최적의 공간이다. 취미 활동을 하며 자연스럽게 데이트 상대를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동호회 가입 목적이 순수하게 관련 활동이 아닌 ‘연애 상대 찾기’인 경우도 다반사다. 일각에서 동호회는 ‘불륜의 메카’로 불리기도 한다.
 
이 가운데 최근 가장 인기 있는 동호회는 ‘노래 강좌’ 동호회와 ‘배드민턴·탁구’ 동호회다. 노래 강좌는 수업이 끝난 뒤 동호회 멤버와 함께 노래방으로 가 그날 배운 노래를 부르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이 자리에서 음주가 곁들여지면 남녀 사이의 ‘뜨거운 분위기’가 자연스레 형성된다.
 
배드민턴과 탁구는 다른 스포츠와 달리 ‘복식’ 경기가 가능하다. 남녀 한 쌍이 팀을 이뤄 호흡을 맞추다 보면 어느새 정이 들고 친해진다고 전해진다. 운동도 하고 연애도 하는 일석이조 동호회인 셈이다.
 
이 같은 동호회는 구색 맞추기에도 알맞다. 복식으로 이뤄지는 경기를 개최하면 좋든 싫든 함께 연습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이를 빌미로 자주 만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한 동호회 운영자는 “동호회 안에서 연애를 하는 건 남녀 간의 정이 자연스럽게 생기는 것이기 때문에 막을 수 없다”며 “연애를 목적으로 가입하는 사람은 받지 않는다. 분야를 막론하고 여기저기 가입하는 노인들은 동호회 입장에서도 원치 않는다”고 설명했다.
 
남의 시선을 의식해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다녔던 과거와 달리, 요즘에는 드러내 놓고 당당하게 연애를 한다는 게 공통된 의견. ‘황혼 연애’ ‘황혼 이혼·재혼’ 등에 대한 국민의 인식이 개방적으로 변화했다는 점도 한몫 했다는 평가다.
 
이는 통계 수치로도 분명하게 드러난다. 꾸준히 증가해온 황혼 이혼은 지난해에도 남녀 모두 사상 최대치를 기록했다. 고령 여성의 재혼 역시 꾸준한 상승세를 바탕으로 가장 많았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7 고령자 통계’에 따르면 지난해 우리나라 65세 이상 남성의 이혼 건수는 6101건으로 전년 대비 4.3% 증가했고, 여성의 이혼 건수는 2910건으로 전년보다 9.6% 늘어났다.
 
반면 지난해 전체 이혼건수는 10만7328건으로 전년에 비해 1.7% 감소했다. 전체적인 이혼 건수는 줄었으나, 황혼 이혼은 증가한 셈이다. 65세 이상 남성의 이혼은 ▲2000년 1321건 ▲2005년 2589건 ▲2010년 4346건 ▲2015년 5852건 등으로 증가했다. 여성의 경우도 ▲2000년 423건 ▲2005년 916건 ▲2010년 1734건 ▲2015년 2655건 등으로 증가세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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