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억 5000만 원 받고도 살해해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청산가리를 탄 소주를 먹여 내연 관계에 있는 남성의 아내를 살해한 40대 여성에 대해 대법원이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최근 일명 ‘어금니 아빠’ 사건 등 충격적인 범죄가 잇따르는 가운데 ‘사형제도’가 부활해야 한다는 여론까지 형성되는 상황이다.

28차례 걸쳐 살인 방법 검색···검거 당시 스스로 목숨 끊으려 시도
가해 여성, 피해자 남편의 살해 가능성 주장···재판부 “근거 없어”


대법원 2부는 내연남의 부인을 살해한 혐의(살인)로 구속 기소된 A씨의 상고심에서 무기징역을 선고한 원심 판결을 확정했다고 지난 23일 밝혔다.

A씨는 지난 2015년 1월 내연 관계에 있던 B씨의 아내 C씨에게 함께 술을 마시자고 권유한 뒤 서울 송파구의 한 아파트로 찾아가 청산가리를 탄 소주를 먹게 해 살해했다.

A씨는 지난 2014년 2월 초등학교 동창 모임에서 B씨와 만난 뒤 내연 관계를 이어 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B씨와 그의 아내 C씨가 이혼할 것으로 기대하고 자신과 B씨의 관계를 C씨에게 알렸다.

그러나 C씨는 자식을 생각해 이혼을 거부했다. C씨는 A씨에게 3억5000만 원을 건네면서 남편과 다시 만나지 않을 것을 약속받기도 했다.

A씨는 돈을 받은 이후에도 B씨와의 관계를 유지했지만 C씨는 결혼생활을 지속했다. A씨는 C씨를 살해할 목적을 가지고 여러 경로로 청산가리 구입을 문의하는 등 범행을 계획하고 실행에 옮긴 것으로 조사됐다.

경찰 조사 결과 A씨는 지난 2014년 7~9월 7차례에 걸쳐 이메일을 통해 청산가리 구입희망 메일을 보냈으며 28차례에 걸쳐 ‘청산가리 살인법’, ‘청산가리로 죽이기’ 등 청산가리와 관련된 인터넷 검색을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C씨는 청산가리를 마시고 사망한 하루 뒤에야 집으로 돌아온 남편에게 발견됐으며 부검 결과 청산가리가 검출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A씨는 재판 과정에서 C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었을 가능성과 B씨가 아내를 살해했을 가능성을 주장했으나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밖에 A씨는 검거당시 유치장에서 묵비권을 행사하다가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으며 정신병원에 입원했다가 2015년 3월경 퇴원한 바 있다.
 
징역 25년
→무기징역

 
1심은 A씨의 주장에 “C씨는 A씨와 남편의 불륜 사실을 알면서도 3억5000만 원을 주면서 가정을 지키려 했고, 딸을 위해 잘 살겠다는 메모도 남겼다”며 “C씨가 딸이 안방에서 자는 상황에 충동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고 볼 수 없다”고 판단했다.

또 “C씨의 남편이 귀가해 A씨에게 C씨가 사망한 것 같다고 전화한 시간까지 간격은 6분이 채 되지 않는다. 그 사이에 청산가리가 든 소주를 마시게 했다고 보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내연 관계에 있던 C씨 남편에게 집착하고 일부러 불륜 사실을 C씨에게 발각되도록 한 점, 부부 사이를 계속 이간질한 점 등을 고려할 때 C씨가 이혼하지 않는 것에 앙심을 품고 살해한 것으로 보인다”며 A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불륜 관계 유지를 위한 살인으로 동기가 불량하고 계획적인 살인”이라고 양형 이유를 밝혔다.

2심은 “A씨의 범행은 한 생명을 빼앗고 그가 필사적으로 지키고자 했던 가정까지 파괴한 것”이라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이어 “A씨는 ‘피해자 역시 다른 남자와 친밀한 관계에 있었다’는 취지로 주장하며 고인이 된 피해자를 근거 없이 모독하고 피해자로부터 받은 3억5000만 원을 피해자의 딸 등 유족에게 반환할 의사도 없다고 분명히 발언했다”며 “범행 후 정황 역시 참작할 만한 점이 전혀 없다”고 판시했다.

대법원은 “원심 판결에 잘못이 없다”며 상고를 기각했으며 무기징역형을 확정했다.
 
한국, 사실상
‘사형폐지국’

 
한편 최근 일명 ‘어금니 아빠’ 이영학 사건, 인천 초등생 살해 사건 등 충격적인 잔혹 범죄들이 속출하면서 ‘사형제도’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흉악범들에게는 형법에 엄연히 존재하는 제도인 사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것이다.

흉악범죄에 세간의 이목이 집중될 때마다 ‘사형제도’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끊임없이 나왔다. 지난 2012년 여성을 납치해 잔혹하게 살해한 오원춘에게 서울고법은 1심의 사형선고를 깨고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당시 사형보다 낮은 형량이 내려진 것에 대해 비판적 여론이 들끓은 바 있다.

한국에선 사형이 선고된다 해도 집행으로 이어지지는 않는다. 1997년 12월 30일 이후 20년 가까이 사형을 집행하지 않았다. 사실상 사형폐지국이나 다름없다. 국제 인권운동 단체인 국제앰네스티는 10년 이상 사형을 집행하지 않는 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가로 분류하고 있다. 실제로 유영철, 강호순 등의 연쇄살인범들도 사형을 선고받은 지 오래지만 현재 교도소에 수감 중이다.

제도 자체가 유명무실하다면 아예 폐지하자는 주장도 나오고 있으나 본격적인 논의는 이뤄지지 않고 있다. 헌법재판소는 1996년, 2010년 두 차례에 걸쳐 사형제가 합헌이라고 결정했다. 국회에서는 사형폐지특별법안이 7차례나 발의됐지만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문턱을 넘지 못한 채 폐기됐다.

국민 정서가 사형제 존치에 쏠려 있는 상황에서 폐지 논의는 시기상조라는 인식이 작용한 결과로 풀이된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사형제 ‘찬성’ 응답률은 70~90% 수준을 기록해왔다. 피해자의 가족을 심적으로 위로하고 흉악범죄를 사회 정의 차원에서 엄벌로 다스려야 한다는 논리다. 사형이 흉악범죄 예방으로 이어진다는 기대감도 있다.

임준태 동국대 경찰행정학과 교수는 “형벌의 본질적 기능은 엄벌이다. 죄를 지은 사람이 그에 상응하는 대가를 치르는 게 사회적 정의에 부합한다”며 “심각한 범죄를 저지른 사람을 교도소에 계속 수감하는 것도 사회적 비용”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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