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보이는 것’과 ‘시행되는 것’의 괴리 커져
- 하강은 한순간에 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문재인 정부 지지율의 고공행진은 현재진행형이다. 27일 공개된 한국갤럽의 주간 정기조사에서 대통령 직무 수행 평가에 대한 긍정 의견은 73%에 달했다. 이는 전주에 비해 3% 오른 수치다. 해당 조사에서 긍정 의견이 70% 밑으로 내려간 것은 9월 2주차와 4주차가 유일했고 곧 다시 반등했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유권자의 호감을 떠받치는 것이 일련의 이벤트라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다. 대통령과 현 정부는 지금까지 연설문과 행사, 그리고 이미지 정치에서 강점을 보였다. 물론 이것을 단지 쇼라고 폄하할 수는 없다. 애초 대통령과 현 정부 핵심 구성원의 정신세계가 직전의 보수 정부 인사들과는 달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이를테면 지난 26일 전남 여수에서 열린 제5회 지방자치의 날 기념식에서 송기섭 충북 진천 군수가 셀카를 찍을 때 문재인 대통령이 스윽 다가와 함께 찍힌 사진의 경우가 대표적이다. 이 사진의 구도는 소탈한 대통령의 이미지를 드러냈는데, 사실은 문 대통령이 뒷자리에 앉아 있었던 것 자체가 우연히 아니었다.

의전을 중시하는 보수 정부 대통령들이 행사에 참석할 때 맨 앞자리 중앙에 앉았다면, 이날 행사에서 대통령은 ‘지방자치의 날’이란 이유로 맨 앞줄엔 광역단체장, 두 번째 줄엔 기초단체장을 앉히는 식으로 자리를 배치했다. 그렇기에 세 번째 줄에 앉아 있던 대통령이 진천군수의 셀카에 깜짝 등장할 수 있었던 것이다.

소탈한 이미지 다 연출된 건 아니지만...

또한 이날 행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은 지방분권형 개헌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문 대통령은 대선 직후 사실상 첫 주요 행사였던 5.18 기념식 때엔 5.18 정신의 헌법 명문화를 추진하는 개헌을 약속했고, 5월 19일 여야 원내대표를 청와대로 초청한 자리에서도 내년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진행하겠다는 대선 공약을 확인했으며,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도 그 사실을 재확인했다.

이러한 행보도 함의가 있다. 사실 현행 헌법의 권력구조는 대통령 및 집권 여당, 그리고 제1야당에 유리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정권 초엔 개헌을 말하지 못하다 정권 중반기 이후 개헌을 띄운다. 이때엔 차기 주자들이 개헌에 난색을 표해서 성사가 어렵다.

지금도 지난번에 살폈듯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가 ‘지방선거 때 개헌할 필요 없다’고 나름의 사인을 보낸 상황이다. 이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이 별도의 답변 없이 개헌을 천명한 것은 본인은 공약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겠으며, 지켜지지 않을 경우 본인 책임이 아니라 한국당 책임으로 몰겠다는 수를 보여준 것으로 풀이된다. 이런 지점에선 제 야당들이 지리멸렬한 상황에서 정부와 여당의 대처가 빛나는 부분이 있다.

그러나 ‘이벤트 정치’의 한계가 느껴지는 시점이 왔다. 여소야대라는 한계를 분명히 감안해야겠지만, 정부가 천명한 것들과 실제로 시행되는 것 사이의 괴리가 체감되는 시점이 왔다.

임기 초 한국 사회의 변혁을 위한 수많은 의제를 던졌지만, 뒤집어보면 하나하나 간단하지 않은 의제들을 테이블 위에 올리기만 했을 뿐 성과는 없는 상황이다. 신고리 공론조사 결과 발표가 숙의민주주의의 긍정적인 가능성을 보여준 것은 사실이지만, 정부 공약에 대한 평가를 한다면 먼 길을 돌아서 제자리로 온 것에 해당한다.

이벤트의 역효과 나타나기 시작, 기본의 중요성

특히 이제는 이벤트의 역효과까지 관측된다. 25일 한국시리즈 1차전의 시구자는 원래 해태 타이거즈의 전성기를 이끈 감독이었던 김응용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으로 예고되었다. 그러나 경기 당일 시구자는 문재인 대통령으로 드러났다. 경기 몇 시간 전부터 웹에서 문 대통령이 시구자일 거란 소문이 돌기는 했다.

이러한 이벤트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대통령이 공약을 지켜서 기분이 좋다’고 반응했지만, 어떤 이들은 ‘굳이 연막작전까지 벌일 필요가 있었느냐’가 되묻기도 했다. 너무 만들어진 것 같은 이벤트에 사람들이 식상할 수 있다는 점이 간과되었다.

민주노총의 불참 선언으로 반쪽자리가 된 지난 24일 노동계 대표단과의 만찬회동은 이벤트에 집중하느라 실질을 놓친 사례였다. 물론, 기왕에 펼쳐진 판에 참여를 거부한 민주노총 측의 행보도 따로 비판할 수 있다. 그 정도 규모의 조직이라면 청와대가 이벤트를 준비했을 때 그 이벤트를 역이용했어야 옳았다는 식의 비평도 가능하다.

하지만 그와 별개로, 청와대가 가을전어·추어탕·콩나물밥 등의 메뉴와 그 함의를 언론에 미리 공개하면서도 민주노총 측의 참석 여부조차 조율하지 못한 것은 사안의 우선순위를 판단하는 능력에 문제가 있었음을 의미한다.

협상이나 논의에는 당사자가 있다. 당사자와 사안 및 논점을 조율하고 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하면서 최대한 본인들이 원하는 결과를 이끌어내는 것이 핵심이다. 이 사건에서 나타난 청와대의 대처는 그러한 핵심보다는 제3자인 국민들에게 보일 그림만 중시한 것이었다. 불참 선언은 그러한 대처가 낳은 결과였다.

현재는 지지율이 높기에 지지층이 민주노총의 행보를 비판하면서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 있다. 민주노총 역시 그간 국민들에게 신망을 주는 행보를 못하기도 했다. 그러나 청와대의 문제 대처가 이런 식이라면, 여러 논의에서 당사자에게 실망을 주고 실질적인 문제해결이 어려울 수 있다.

또한 개별 사안에서 이번 불참선언과 같은 파행이 누적되면, 처음에는 파행을 일으킨 상대방에게 문제가 있는 줄 알았던 유권자들도 결국엔 청와대의 미숙한 대처를 문제삼기 마련이다.

지금은 제 야당의 형편이 지리멸렬하기에 정부 여당의 시간이다. 하지만 이런 국면이 언제까지나 계속될 거라 기대할 수는 없다. ‘가랑비에 옷 젖는다’란 속담처럼 사건들이 누적되면 실망은 한순간에 퍼진다. 고공행진에 이은 하강 국면은 완만하게 오지 않고 급작스럽게 올 수도 있다. 정부 여당 입장에선 지방선거까지  지금의 구도를 끌고 가기 위해서라도 더욱 신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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