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고정현 기자] 자유한국당이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를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과 관련해 검찰에 고발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인 권양숙 여사와 아들 노건호·딸 노정연·조카사위 연철호 씨,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등 5명이다. 문재인 정부의 ‘적폐 청산’ 움직임에 맞서는 ‘원조 적폐’ 카드를 꺼내 든 것이다. 그런데 노 전 대통령 일가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사건은 이미 지난 2009년 ‘공소권 없음’으로 종결 처리된 사건이다. 최근엔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측이 재고발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각하했다. 이는 한국당 고발 건 역시 각하될 공산이 크다고 뜻이다. 그럼에도 한국당이 이 사건에 집착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단순히 현 정부에 맞서기 위한 여론전일까. 일각에서는 한국당에 예상치 못한 노림수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내놓는다.
 
<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박근혜-최순실 ‘공모공동정범’이라면 盧 일가도 다르지 않다!
- 특수부 아닌 형사부 배당… “형평성에 어긋나”


자유한국당은 현 정부의 전 정권은 물론 전전 정권까지 겨냥한 이른바 ‘적폐 청산’의  대응책으로 최근 두 위원회를 출범시켰다. 김성태 의원이 위원장인 정치보복특위가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의 ‘원조 적폐’를 주로 다루는 곳이라면, 김광림 의원이 위원장인 신적폐특위는 문재인 정부에서 새로 발생하는 ‘신적폐’를 다루는 곳이다.

정치보복대책특위가 타깃으로 삼은 노 전 대통령 일가 640만 달러 의혹은 2009년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 정·관계 로비’ 수사 과정에서 나온 얘기다. 한국당은 “이들은 노 전 대통령과 공모해 박 회장으로부터 2007년 7월에서 2008년 2월까지 3차례에 걸쳐 640만 달러 규모의 뇌물을 수수했고, 박 회장은 이 뇌물을 공여했다”며 “640만 달러를 주고받은 것은 지난 검찰 수사에서 적시된 팩트”라고 했다.

그러면서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는 노 전 대통령의 서거로 공소권 없음 처분이 내려졌지만, 뇌물 수수 사실은 검찰이 수사를 통해 확인했을 뿐만 아니라 노 전 대통령도 자신의 홈페이지를 통해 시인한 사안”이라며 “재조사가 반드시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박사모 측 고발 사건 ‘각하’
“한국당 건도 각하 가능성 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당 내 두 특위의 활동에는 근복적으로 한계가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생각이다. 여론에 호소하는 것 말고는 실질적으로 현 정권에 맞설 수단이 없기 때문이다.

일단 검찰의 반응부터가 미지근하다. 최근 검찰은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과 관련 ‘박근혜를 사랑하는 모임(박사모)’ 측이 고발한 사건을 각하했다.

지난 16일 사정 당국에 따르면 서울중앙지검 형사1부(부장검사 홍승욱)는 박사모 회장 정광용 씨가 지난 2월 640만 달러 뇌물수수 혐의로 권양숙 여사 등을 고발한 사건을 지난달 중순 각하 처분했다. 2009년 대검찰청 중앙수사부가 수사해 종결한 사안과 실체가 동일하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자유한국당이 같은 사건을 고발해 새로 수사 절차가 진행돼도 결과가 바뀔 가능성이 낮다는 뜻이다. 물론 한국당 고발 건은 피고발인 일부가 추가되긴 했지만 기본적으로 앞서 ‘박사모’측의 고발 내용은 동일하다.

검찰사건사무규칙은 ‘동일 사건에 관해 검사의 불기소 처분이 있는 경우’를 각하 사유로 정하고 있다. 검찰 출신 한 변호사 역시 “중수부 수사기록 외에 새로운 증거가 발견되는 등의 특별한 사정 변경이 없으면 한국당 고발 건도 결국 각하될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이를 모를 리 없는 한국당이 왜 노무현 전 대통령 일가의 640만 달러 수수 의혹 카드를 다시 꺼내 든 것일까. 단순히 현 정부의 ‘적폐 청산’에 맞선 여론전일 뿐일까.

이에 일각에서는 한국당이 노 전 대통령 뇌물 수수 의혹 사건으로 현재 진행 중인 박근혜-최순실 재판에 ‘물타기’ 하려는 의도라고 추측한다. 박근혜-최순실 재판의 쟁점은 두 사람 사이 뇌물 공모 관계가 인정되느냐 여부다.

박 전 대통령이 직접 뇌물을 수수 했다는 증거가 명확히 드러나지 않은 상황이다. 박 전 대통령 역시 자신이 직접 이득을 본 게 한 푼도 없는 만큼 뇌물죄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며 검찰의 공소 내용을 전면 부인하고 있다.

“실행행위 가담 안 해도
공동정범 면할 수 없다”


그러나 재판부는 최근 삼성이 최순실 씨에게 제공한 승마 지원금 72억 원에 대해 박근혜 전 대통령이 직접 받은 것과 다름없다며 ‘공모 관계’로 판단했다. 공무원이 민간인에게 뇌물을 대신 받게 했더라도 공모 관계가 인정되면 직접 받은 것이나 다름없는 뇌물죄의 ‘공모공동정범(共謀共同正犯)’이라는 것이다.

공모공동정범이란 2인 이상의 자가 공모하여 그 공모자 가운데 일부가 공모에 따라 범죄의 실행에 나아간 때에는 실행행위를 담당하지 아니한 공모자에게도 공동정범이 성립한다는 이론이다.

대법원도 일관하여 ‘공동정범에 있어서 범죄행위를 공모한 후 그 실행행위에 직접 가담하지 아니하더라도 다른 공모자가 분담 실행한 행위에 대하여 공동정범의 죄책을 면할 수 없다’고 판시하며 이 이론을 인정하고 있다. 이 판례를 근거로 직접 돈을 받지 않은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도 뇌물수수죄 적용이 가능하다는 게 재판부 판단의 골자다.

그런데 바로 이 부분을 한국당이 역이용하고 있다는 것이다. 박 전 대통령이 뇌물을 직접적으로 받지 않았음에도 최순실 씨가 뇌물을 받는 데 공모했다는 이유로 뇌물죄를 면할 수 없다면 노무현 전 대통령에겐 공소권이 없을지라도 그의 일가를 공모공동정범으로 처벌해야 함이 마땅하다는 논리다.

다만 이 같은 한국당의 노림수가 현실화되기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당장 한국당의 노 전 대통령 고발 건은 특수부가 아닌 형사부에 배당됐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13일 한국당이 “640만 달러 의혹을 재수사해 달라”며 노 전 대통령 가족과 박 회장 등을 고발한 사건을 이날 형사6부(부장검사 박지영)에 배당했다.

이에 한국당 정우택 원내대표는 “노무현 정권 수사에 대해서 당연히 특수부에 배당해야 하는데 형사부에 배당됐다”며 “전혀 형평성에 어긋난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국당의 한 관계자 역시 “검찰이 노 전 대통령 관련 사건을 권력형 부정부패 사건을 다루는 특수부가 아닌 일반적으로 고소·고발을 맡는 형사부에 배당한 것은 적폐 청산 수사가 이명박·박근혜 정부에만 치우쳐져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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