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홍준철 기자] 문재인 정부와 검찰이 ‘적폐 청산’ 미명하에 한몸처럼 움직이는 형국이다. 당초 문 정부 취임 초기만 해도 ‘적폐 청산’을 위한 개혁 대상 1호로 검찰을 지목했다. 하지만 이명박·박근혜 보수 정권 9년 ‘적폐 청산’수사가 속도를 내면서 검찰 개혁은 후순위로 밀려난 형세다. 특히 검찰 수사 특성상 ‘고구마줄기식’으로 실적이 많이 쌓일 경우 문 정부로서 고생한 검찰조직에  ‘토사구팽식’ 개혁을 단행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나오고 있다.
 

- 검찰, 국정원 ‘고구마줄기식 수사’ 개혁 ‘희생양’ 삼나
- 文 대통령 ‘검경수사권 조정’ 발언에도 검·경개혁 ‘懷疑’


검찰의 이명박·박근혜 정권에 대한 적폐청산 수사의 칼날은 국정원을 향하고 있다. 검찰은 지난 8월14일 국정원 댓글부대의 민간인 팀장 30명을 수사 의뢰했다. 보름 뒤인 30일에는 18명의 민간인 외곽팀장을 추가 수사 의뢰하면서 국정원 수사가 본격화됐다.

8월23일에는 양지회와 보수단체 등 국정원의 댓글공작에 동원된 ‘사이버 외곽팀’을 압수수색해 MB 국정원 수사의 물꼬를 텄다. 이 사건은 ‘연예인 퇴출 압박’, ‘박원순 서울시장 제압’, ‘공영방송 장악’, ‘여야 정치인·교수 공격’ 등으로 사건수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검찰은 원세훈 전 국정원장과 김주성 국정원을 수사 의뢰했다. 10월16일에는 민간인과 공무원 사찰에 관여한 추명호 전 국정원 국장에 대해 국정원 개혁위의 수사 의뢰가 있었다.

10월23일 국정원 개혁위는 보수단체 매칭지원, 채동욱 전 검찰총장 혼외자 유출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논두렁 시계’ 사건 배후에 국정원 고위 간부가 개입됐다며 3건에 대해 한꺼번에 수사의뢰를 했다.

국정원 發 수사 의뢰…
‘활기 띠는’ 검찰 왜


검찰은 10월25일 MB 정권 두 번째 국정원장인 원 전 원장 시절 전경련을 창구로 삼아 삼성, SK 등 일부 대기업과 보수단체를 연결해 ‘매칭사업’을 주도, 십수억 원의 규모의 자금을 지원하는데 관여한 의심을 받는 박원동 전 국익정보국장에 대해 영장을 청구했고 출국금지 시켰다.

박 전 국장은 문재인, 박근혜 두 대선 후보가 박빙의 승부를 보이던 2012년 대선 직전 국정원 여직원 댓글사건이 막판 변수로 떠올랐을 때 경찰이 ‘아무 문제가 없다’는 발표를 한 배경에 개입한 혐의도 받고 있다. 박 전 국장은 당시 김용판 서울경찰청장과 통화했고 부하 직원도 보도 자료를 작성한 경찰 간부와 닷새 동안 50차례 넘게 통화한 것으로 드러났다.

또한 검찰은 같은 날 박근혜 정부에서 검찰의 ‘국정원 댓글 수사’를 방해한 의혹을 받는 김진홍 전 심리전단장도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김 전 단장은 ‘사이버 외곽팀’ 운영 등으로 구속기소된 민병주 전 심리단장의 후임자다.

그는 2013년 윤석열 현 서울중앙지검장이 이끌던 검찰 특별수사팀이 국정원 심리전단 사무실을 압수수색할 당시 관련 없는 다른 사무실을 진짜 사무실처럼 꾸며 수사에 혼선을 준 점과 소속 부하직원들에게 허위 증언·진술을 사주한 의혹도 사고 있다. 이로 인해 박근혜 정부 초대 국정원장인 남재준 전 원장도 수사선상에 올라 출국금지됐다.

특히 원세훈 전 원장의 경우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 수사 때 불거진 ‘논두렁 시계’ 사건 배후로 지목된 상황이다. 국정원 적폐청산TF에 따르면 원 전 원장은 검찰 수사팀에 “중요한 사안이 아니니 언론에 망신 주기용으로 흘리자”고 말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KBS가 4월22일 단독으로 ‘노 전 대통령 명품시계 수수 의혹’을 보도했고 뒤이어 SBS 역시 단독으로 ‘노 전 대통령이 명품시계를 논두렁에 버렸다’고 보도했다.

논두렁 시계’ 사건,
원세훈, ‘망신 주기용’ 활용


이 과정에서 국정원 직원이 ‘적극 보도해 달라’고 해당 방송국에 요청했고 특히 최초 보도한 KBS 고대영 국장(현 KBS 사장)에게는 ‘국정원 수사 개입 의혹’건을 쓰지 말아 달라면서 협조 명목으로 200만 원을 집행했다고 진술했다. 하지만 고 사장은 “받지 않았다”고 부인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우병우 전 민정수석의 대학 동기이자 검찰 출신으로 국정원에 파견된 최윤수 2차장도 우 전 수석을 감찰하던 이석수 특별감찰관을 사찰해 우 전 수석에 보고한 추명호 전 국장의 보고를 받은 정황이 드러나 출국 금지됐다.

검찰은 청와대와 국정원 수사 의뢰 사건이 10건이 넘으면서 외형상 ‘정치적 부담’을 상당히 느끼는 듯한 제스처를 취하고 있다. 자칫 청와대 하명 수사 논란에 따른 정치적 논란과 윗선 수사에 대한 부담, 나아가 쏟아지는 수사의뢰에 인력난을 호소하면서 “후배들이 죽을 고생을 하고 있다”(윤석열 중앙지검장)는 등 고충을 토로하기도 했다.

하지만 경찰에서는 국정원 적폐 청산 수사에 묻혀 검찰개혁이 물 건너 가는 게 아니냐는 우려 섞인 시각이 나오고 있다. 한 고위 경찰관은 “검찰이 하명 수사든 고소·고발이든 수사를 하면 고구마 줄기식 결과물이 쌓이게 되고 그러다 보면 실적도 나오고, 고마운 현 정권이 검찰 개혁에 대한 관심도가 떨어질 수 있다” 진단했다.

실제로 검찰이 전 정권에 대한 적폐 청산 수사가 본격화되면서 검찰 개혁 목소리는 잦아드는 분위기다. 문재인 정부 출범 초만 해도 국정기획자문위는 검찰개혁의 핵심인 검찰 수사권 축소를 위한 ‘수사권 조정안’을 올해 안에 만들어 입법화하고, 2018년에는 수사권 조정을 시행토록 했다. 또 한 축인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 신설도 약속했다.

하지만 검찰 자체 개혁기구인 검찰개혁위 추진 내용을 보면 ‘검경 수사권 조정’은 언급하지 않고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검찰수사심의위원회 도입’을 통한 검찰 수사와 기소의 적정성을 따질 수 있도록 하자는 ‘셀프개혁안’이 마련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문무일 검찰 총장 또한 인사청문회 당시 검경 수사권 조정 관련 “수사와 기소를 분리할 수 없다”는 반대 입장을 밝혔고 공수처 설치에 대해서는 “입장을 서둘러 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고 유보적인 태도를 보였다.

반면 박상기 법무부장관은 공수처 설치에 대해 찬성하고 있다. 하지만 법무검찰개혁위원회가 공수처 소속 검사를 최대 50명까지 둘 수 있도록 했지만 법무부가 발표한 안에는 25명으로 반토막 냈다.

이와 관련 경찰 고위 인사는 “법무부는 공수처를 찬성하면서 유명무실하게 만들고 검찰은 수사권 조정에 반대하는 것은 전형적인 검찰 개혁을 물타기”라며 과거 박근혜 정부 당시 검찰은 중수부 폐지와 수사권 조정을 맞바꿨다는 점을 예로 들었다. 유명무실한 공수처 설치를 방패 삼아 수사권 조정안을 좌초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엿보인다.

한편 구정권 적폐 청산으로 검찰 개혁이 더디게 진행되는 게 아니냐는 여론이 높아지자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섰다. 문 대통령은 10월20일 경찰의 날 기념행사에서 “검경 수사권 조정은 꼭 필요한 일”이라며 “내년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문 대통령의 발언에 맞춰 여당 주류 측에서도 공수처 설치와 수사권 조정을 단계적으로 추진하지 말고 동시에 추진하자는 의견을 청와대에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과거 집권 세력이 검찰의 막강 권한에 취해 검찰개혁이 유야무야됐듯 문재인 정부도 전철을 밟을지 정치권은 예의주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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