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미국 등 선진 민주정치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배워야
- 박 전 대통령 문제도 대승적인 차원에서 마무리 지어야


일반적으로 후발 민주화정권, 특히 대통령책임제국가에서 민주정치가 실패하는 원인을 살펴보면, 첫째, 국민의 총선거에 의해서 정상적으로 교체되는 정권교체를 놓고도 집권(執權)을 마치 승리자의 전유물처럼 운영하는 것들이 민주주의발전을 정체케 한다.

그 결과 현실정치를 피의자와 심판자로 분류하고, 지난 정권을 피의자로, 집권자를 심판자로 하여, 합헌적(合憲的)이고 수평적인 정권교체를 수직적인 적대관계로 대립시키고 있다. 이러한 대결정치는 언론자유를 중심으로 자유토론과 상호비판을 기본권으로 보장하는 자유민주주의 발전을 본질적으로 어긋나게 할 뿐만 아니라 협치(協治)와 타협의 소지를 단절시키고 있다.

그 결과 퇴임한 대통령들이 가지고 있는 성공과 실패의 자산을 활용하지 못하고, 퇴임 후 고립적인 생활을 하게하는 것이 일상화됐다.

둘째, 그와 같은 대결정치는 옳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민주적 정당성을 조금 어긴들 무슨 문제가 되겠느냐는 식으로 민주정치를 쉽게 운영하려는 데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한다. 민주정치란 결과에 대한 정치뿐만 아니라 절차적인 정당성까지도 함께 해야 하는 정치다. 그래서 민주정치를 두고 때로는 혼란하고 무능한 정치라고 폄하되기도 하지만, 민주정치에서 절차적인 정당성을 무시한 폐쇄적인 결단정치는 많은 부작용을 낳게 한다.

민주정치란 먼 길이요 돌아가는 듯, 한 길이기 때문에 쉽사리 지름길을 택하려 할 때에는 크게 왜곡시키고 만다. 예컨대 지난 민주화 정권들의 정책 중 대북문제나 금융·토지실명제·OECD가입·4대강보수공사 등등의 문제는 국민경제와 국가장래에 영향을 미치는 중대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몇 사람만의 결단으로 처리한 결과 인권이 침해되고, IMF의 지배를 받게 되는 등 적지 않은 부작용을 일으켰다.

그 중 몇 가지 정책들은 후에 훌륭한 결과를 낳았음에도 불구하고, 국가신용도가 추락하는 여파로 수많은 국민들이 파산의 소용돌이 속에서 노숙자로 전락, 회복불능의 큰 짐을 지워줬다.

셋째, 원칙 없는 사정(司正)이 문제였다. 사정 그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사정의 원칙과 기준이 불확실하다는데 문제가 있었다. 사정에는 사정의 주체가 명확해야 하고 사정전체에 대한 범위와 한계가 분명하여야 하며, 사정이 완료될 경우, 어떻게 달라질 것이라는 기대가능성도 제시해야 한다.

개혁이나 사정의 대상은 부정부패가 원인임에도 불구하고 무의식적 관행으로 행해지던 부정을 타파하는 것이기 때문에 자칫 정치적 보복으로 오인되어 사회분위기가 불안해지기 쉽다. 따라서 개혁적 사정은 개혁이념의 설득을 통해 사정에 대한 예측가능성과 안정성을 보여줄 때라야 국민통합으로 이어질 수 있는 것이다.

넷째, 우리나라에서 가신정치와 측근정치가 성행하게 된 것은, 오랜 민주화투쟁을 거치는 과정에서 비롯됐다. 권위주의정권하에서의 민주화투쟁이란 마치 비밀결사체가 작전을 수행하듯, 권위주의정권에 일대 타격을 가해야 되기 때문에 민주적 정당성보다는 비밀수호와 충성심을 제1의 요건으로 하게 된다.

그 결과 가신이나 측근들은 능력이나 직위와 직책보다 보수와의 거리에 따라 실세유무가 결정된다. 국가나 기업이나 그 흥망성쇠는 참모에 의해 이뤄진다. 따라서 민주화정권의 참모들은 투쟁경력보다 민주주의 신봉자들이 적합하다.
 
다섯째, 후발민주국가들이 미국의 민주정치에서 꼭 배워야 할 것이 있다면 대통령의 사면권(赦免權)을 적정하게 활용하여 대결정치화를 막는 것이다. 현대헌법에 있어서도 왕권정치에서나 타당할 수 있는 사면권(赦免權)을 대통령에게 부여하고 있는 것은, 권력분립의 원리에 의한 사법권을 국가이익과 국민화합을 위하여 적절하게 제한함으로써 좀 더 폭넓은 자유 민주정치를 실현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미국정치에서도 섣부른 도덕정치를 내세운 카터 대통령은 이란에서 급진파에게 대사관 직원 수십 명을 인질로 잡히게 했을 뿐 아니라 그들을 구출한다고 특공대원 8명을 희생시켰고, 부시 대통령의 ‘리크(leak) 게이트’는 해서는 안 될 이라크와의 전쟁을 일으켜 수많은 희생자와 국력을 소모했으며, 클린턴 대통령의 르윈스키 스캔들 등등, 닉슨 대통령의 워터게이트 사건이 있었지만, 탄핵까지 가기 전에 사면으로 마무리 지워 활용했다. 이렇게 미국정치는 정치적 해법을 사법적 해법에 앞세워, 전직 대통령을 국민통합의 도구로 활용한다.

우리도 이런 것을 배워, 민주정치의 넉넉함과 여유로움을 배워야 한다. 대통령의 탄핵판결을 헌법적 또는 정치적 판결이라 한다면, 박근혜 전 대통령도 일반법판결 이전에 좀 더 대승적인 차원에서 마무리를 짓고, 다시 일반국민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배려해야 하지 않았을까? 민주정치란 여유와 관용이 동반된다는 점에서 그 어떤 정치보다 많은 장점을 인정받는 정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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