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부 권력 투쟁·노사정 트라우마’ 끝에 둔 악수(惡手)

<뉴시스>
지난 7월 ‘靑-재계’ 만남 이어 이달 24일 ‘靑-노동계’ 회동
본관 접견실·전태일 음식 등 정상급 대우 준비했으나 ‘나홀로 불참’
‘청와대 일방적 추진·노사정위원장 참석’에 반발…“형식적 이벤트”
정치권·노동계조차 비판 일색…“기득권 버리고 대화 나서야”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지난 24일 청와대에서 열린 ‘노동계 초청 대화’를 놓고 잡음이 이어지고 있다. 전국민주노동조합총연맹(민주노총)은 특정인 배제 요구와 청와대 기획을 문제 삼자 청와대가 이를 제지했고, 이에 반발한 민주노총은 불참을 선언, 여진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나 정치권을 비롯해 노동계에서조차 이번 민주노총의 행태에 대해 비판이 제기되는 상황이다. 노동계의 대표적 인물인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을 배제해 달라고 요구하고 친노동 기조를 보이는 정부와의 대화를 거부한 이번 행보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이에 따라 내부 권력 투쟁 등 불참한 진짜 이유가 다른 데 있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과 노동계의 이번 회동은 각종 노동 현안이 산적한 가운데 이뤄진 만남이어서 노동계의 이목이 쏠렸다. 최근 양대 지침 폐기와 노동계의 대화기구 제안 등 노정대화 복구 기대감이 커지고 있던 상황이었다.
 
청와대는 노동계 대표단 만찬에 앞서 1부 순서로 양대 노총인 민주노총과 한국노총 지도부와 환담을 준비했고, 장소도 상춘재가 아닌 ‘본관 접견실’에서 대화하기로 예정했다. 상춘재는 외빈 접견이나 비공식 회의를 위한 장소로 주로 쓰이는 반면, 본관 접견실은 정상급 외빈과의 만남에 사용하는 장소다.
 
지난 7월 대기업 총수 등 재계와의 만남이나 여야 대표회동도 상춘재에서 이뤄진 점에 비춰 볼 때, 노조 지도부를 본관 접견실에서 만나겠다는 것은 노동계 인사들을 해외 정상급으로 모신다는 의미로 풀이됐다. 보수 진영 일각에서는 재계보다 높은 대우에 불만 섞인 비판이 나올 정도로 대우에 신경 쓰는 모습이었다.
 
청와대는 차(茶)와 식사에도 노동 관련 상징적 음식을 선보였다. 식사에는 추어탕과 콩나물밥 등이 나왔는데, 추어탕은 산업화의 일익을 담당했던 청계천 지역을 중심으로 서민의 보양식으로 발전한 음식이다.
 
전태일 열사가 즐겨 먹은 것으로 알려진 콩나물밥을 상에 올린 것 역시 노동계와 교감하겠다는 의미로 읽혔다. 앞서 티타임에는 ‘평창의 고요한 아침’이라는 차를 제공했는데, 이는 해외 정상에게 선물로 증정하기 위한 것으로 노동계 인사에게 처음 선보였다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끝내 ‘반쪽’ 회동
“靑, 민노총 존중 안 해”

 
그러나 이날 회동은 민주노총 지도부가 끝내 불참을 선언하면서 반쪽으로 진행됐다. 민주노총이 당일 입장 자료를 내며 밝힌 간담회 불참 사유는 두 가지다. 노사정위원회 문성현 위원장이 참석했고, 민주노총은 산하 단위노조 16개를 전부 초청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청와대가 일부를 개별 접촉해 조직 체계와 질서를 훼손했다는 것이다.
 
민주노총은 간담회 추진 과정에서 보여준 청와대의 태도에 대해 ‘민주노총의 진정성 있는 대화 요구를 형식적 정치적 이벤트 행사로 만들었다’, ‘민주노총을 존중하지 않은 청와대의 일방적 진행’ 등을 문제 삼았다.
 
남정수 민주노총 대변인은 간담회 이후 가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인터뷰에서도 “(청와대가) 대화보다 행사를 중요하게 생각했다”고 공식 입장을 되풀이하며, 노사정위원회보다 노정 대화와 같은 당사자 간 교섭이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민주노총이 과거 노사정위와 관련해 극심한 내부 갈등을 겪었다는 점을 충분히 감안하더라도 청와대와의 대화에 사회적 대화기구의 수장이자 정부 측 인사인 노사정위원장 배제 요구는 납득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게다가 민주노총 출신인 문성현 위원장은 민주노총의 ‘산파’ 역할까지 한 것으로 평가받는데 ‘친정’에서 이토록 배격하자 여야 정치권은 물론 노동계에서조차도 비판이 나오는 상황이다. 기존에 받았던 ‘강성 귀족 노조’라는 비판을 자초했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바른정당 하태경 최고위원은 “민노총은 귀족 집단답게 평민 노동집단과는 겸상할 수 없다는 오만을 보여줬다”며 “귀족노동자 특권을 우리가 해체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는 민주노총이 정부에 각종 노동 개혁안을 요구하고 있는 점을 들어 민노총은 (대화) 자리에 나오지도 않으면서 과도한 요구를 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친노동 정당인 정의당에서도 비판의 목소리가 나왔다. 노회찬 원내대표는 T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책임이 어디에 있든 그런 이유로 (대화가) 안 됐다는 게 납득이 안 간다”며 “이렇게 적극적인 대화를 거부하는 식으로 비춰지는 것은 민주노총에게도 마이너스”라고 말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인 김영훈 정의당 노동본부장도 “많은 노동자와 시민이 불참에 대해 아쉬움을 토로하고 있다”며 “지금 사회적 대화를 위해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상대를 배려하려는 역지사지와 현재 난관을 타개하려는 강력한 용기”라고 했다.
 
청와대가 일부 단위노조만을 초청하려 했던 것과 관련해 청와대 측은 민주노총의 요구를 받아들이면 실질적 대화 형식을 갖추기가 어렵다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청와대는 1부 간담회 참석자를 늘리자는 수정 제안을 했지만 민주노총은 끝내 행사에 불참했다.
 
한편, 민주노총의 이번 불참은 시기적으로도 부적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28일(내일) 촛불집회 1주년을 맞은 가운데 광화문 촛불집회 행사 중 ‘청와대 행진’이 포함된 사실이 알려지면서 진보 진영에서 논란이 인 것이다.
 
1주년 행사에 이른바 ‘촛불 대통령’을 향해 행진하는 것이 적절한가라는 비판이 진보 진영에서 나왔고, 이런 가운데 민주노총의 간담회 불참은 ‘촛불 청구서’를 요구한다는 오만으로 해석되기도 했다. 게다가 문 대통령 지지자들이 ‘청와대 행진’에 반발해 여의도 국회 주변에서 집회를 개최하는 등 촛불이 ‘분열’하는 데 원인 제공을 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게다가 민주노총이 촛불집회에 주도적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받지만 이를 계기로 정부에 무리한 ‘빚 독촉’을 하고 있다는 비판도 제기된다. 지금도 성급한 친노동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현실에서 민주노총의 이같은 ‘독촉’에 청와대가 난감해하는 모습도 포착된다.
 
실제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일자리위원회에서 “노동계는 (그간) 억눌려 왔기 때문에 아마도 새 정부에 요구하고 싶은 내용들이 아주 많을 것”이라면서도 “그러나 시간이 필요하다. 적어도 1년 정도는 시간을 주면서 지켜봐 주셨으면 좋겠다”며 우회적으로 난감한 속내를 내비쳤다.
 
진짜 불참한 속내는
‘내부 강온파 투쟁’ 지적

 
이렇듯 민주노총이 밝힌 불참 사유에 대해 이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오면서 진짜 불참하게 된 이유가 무엇인지에 관심이 쏠리는 상황이다.
 
아울러 민주노총이 수감 중인 한상균 위원장의 석방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고, 최근 한 위원장이 한 언론사와의 서면인터뷰를 통해 문 대통령과 노정 간 공개토론을 전격 제안한 상황에서 민주노총이 불참 결정을 내리자 그 배경과 연관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노동계 일각에서는 민주노총이 선거체제에 돌입하면서 내부 강온파의 이해관계가 얽혀 이견이 노출돼 불참했다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민주노총은 위원장을 비롯해 수석부위원장, 사무총장 등 새로운 집행부를 구성하기 위한 선거 체제에 본격 돌입했다.
 
청와대가 간담회 추진 과정에서 민노총 지도부를 거치지 않고 강경파 일부 노조와 온건파 노조만 따로 접촉해 초청하려 하자, 주류 강경파가 “정권 입맛에 맞는 노조만 부르려 한다”고 반발한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정위에 대한 민주노총의 사회적 ‘트라우마’도 작용했다는 분석이다. 민주노총은 김대중 정부 시절인 1999년 2월 노사정위를 탈퇴한 이후 18년 동안 노사정 대화를 거부하고 있다. 당시 지도부는 정리해고 법제화에 합의했다가 극심한 내부 반발과 갈등에 직면, 노사정위를 탈퇴했다.
 
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엔 노사정위 복귀를 두고 폭력사태까지 벌어졌다. 당시 온건파인 이수호 위원장이 노사정위 복귀 안건을 대의원대회에 상정하려 하자 내부 급진파가 회의장에 시너와 소화기를 뿌려 아수라장이 됐다. 폭력 사태로 복귀가 무산된 이후 민주노총은 강경파가 꾸준히 지도부를 장악했다.
 
이번 ‘대화 보이콧’을 두고 민노총의 현주소를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라고 지적이 나온다. 단위노조의 중앙조직으로서 각종 노동 현안에 대한 전문성이나 정책적 역량을 보여주지 못하고, 내부 권력 다툼이나 정치적 명분에만 치중해 ‘기득권화’ 되고 있다는 것이다.
 
윤인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과거엔 노조나 농민단체 등을 사회적 약자로 인식해 온정적 시선을 보냈다면 최근엔 이들 역시 하나의 기득권 집단이라는 인식이 커진 것 같다”고 지적했다. 한 노동계 인사는 “다수 국민의 지지가 필요한 노동 현안이 묻히고 정치적 논쟁으로 흘러선 안 된다”며 “민노총은 앞뒤 가리지 말고 서둘러 대화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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