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오웰은 소설 ‘동물농장’을 통해 러시아 혁명의 타락 과정과 실패를 적나라하게 고발하고 있다.

한 농장의 동물들이 인간의 착취가 없는 ‘모든 동물이 평등한 이상주의’를 건설하기 위해 인간 농장주에 대항해 반란을 일으킨다. 나폴레옹과 스노우볼 등 돼지들이 주동자다. 쿠데타에 성공한 이들은 “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라고 외친다. 그러나 이 두 지도자는 혁명노선에서 이견을 보이며 갈등을 빚는다. 결국 나폴레옹이 선수를 친다. 일단의 추종자들과 함께 스노우볼 제거에 성공한 나폴레옹은 원래의 취지와는 달리 인간이 주인이었을 때보다 더 혹독하게 동물들을 다룬다. 심지어 두 발로 걸으며 이웃 인간하고 거래도 한다. 그의 농장은 인간사회와 별 차이 없는 사회가 되고 만다. 오히려 인간 주인보다 더 나쁜 동물 주인이 됐다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사회주의 신봉자였던 오웰이 사회주의를 이토록 신랄하게 비판하는 것은 참으로 역설적이다. 그러나 그는 러시아 혁명이 당초 예상과는 달리 권력놀음에 부패한, 성공이 아닌 실패한 혁명으로 흐르자 크게 실망했다. 이에 주인만 바꾸는 혁명은 권력 자체만을 목표로 할 뿐 본질적 사회 변화를 가져오지 못한다는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우리 사회에 거대 ‘정치세력’으로 군림하고 있는 민노총이 만날 외치는 구호가 있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 그렇게 오랫동안 투쟁해오면서 그들은 마침내 ‘귀족노조’가 됐다.

일각에서는 ‘귀족노조’라는 단어에 강한 거부감을 드러낸다. 이 말에는 노동자는 하등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개념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노동3권 활동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형성하기 위해 보수언론들이 이 말을 만들어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동안의 민노총 행태를 보면 딱히 그렇지도 않아 보인다. 민노총이 이미 객관적으로 충분한 혜택을 받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약자 프레임을 통해 무리한 요구 사항들을 제시하고 파업을 선동함으로써 비노조 노동자들에게도 피해를 주고 있다는 시각이 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노조로서 노동자의 정당한 권리를 주장하는 것이 아니라, 비조노 노동자들과 대비되어 귀족처럼 행세하고 더 많은 권리를 누린다는 것이다.

어느 주장이 타탕한지에 필자는 관심이 없다. 오직 그들이 외치는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구호에만 관심이 있을 뿐이다. “동물이 주인 되는 농장을 만들자”라고 외쳤던 돼지들의 구호와 별로 달라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두 발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라고 했던 동물들처럼 지금 그들은 자신들과 생각을 달리 하는 사람들을 모두 적으로 간주하고 있지 않은가, ‘적폐청산’이라는 미명하에 말이다.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은 도대체 어떤 세상인가. 동물이 주인 되는 농장과는 분명 달라야 할 것인데, 과연 그렇게 될까? 빌려준 돈 안 갚고, 어떡하든 세금 안 내거나 한 폰이라도 적게 내려는 게 인간 본성의 발현이고 보면 ‘모든 인간이 평등한 세상’이라는 구호는 그저 실현 불가능한 이상주의적 발상에 불과한 게 아닌가.

동물들이 농장의 주인은 됐지만 그 속에서 또다시 지배자와 피지배자 구조가 생겼다. 당연하다. ‘우리 식으로’를 외치고 있는 북한의 사회주의 역시 마찬가지다. 모든 노동자가 주인이 된다고 치자. 그 다음은?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2분법 구조 탄생이 필연적이다.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순진한 생각이다.

사족을 달자면. 노동자가 주인이 되면, 주인은 노동자가 되는 것인가? 그리 되면 노동자와 주인의 위치만 바뀐 것일 뿐 무엇이 달라지는가? 노동자가 된 전 주인들은 또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 만들자”고 외칠 게 아닌가?

모두가 평등한 세상을 추구하는 사회주의는 허상이다. 신기루일 뿐이다. 사회생물학적 측면에서 봐도 그렇다. 정자가 난자와 결합하는 과정을 보았는가. 수억 마리의 정자들이 난자를 향해 돌진하는 장면에서 우리는 서로 경쟁할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알 수 있다. 태생적으로 결코 평등해질 수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이렇게 말하면 분배 문제를 들고 나올 것이다. 그러나 경쟁과 분배는 또 다른 차원에서 다루어야 한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을 만들자”라는 말은 현실적이지 않다. 이 구호가 자신들의 배만 채우고 노동자들을 착취하는 ‘악덕’ 주인들은 퇴출돼야 한다는 의미임을 누가 모르겠는가. 당연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그런다고 모두가 평등해지는가?

주인이든 노동자든 서로 상대를 존중하고 권리를 인정하면서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 순리다. 주인 없는 노동자가 있을 수 없고, 노동자 없는 주인도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를 역행하는 순간 주인과 노동자는 공멸한다. 동물이 주인 되는 농장이 있을 수 없듯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 돼서는 안 되는 까닭이다.

장성훈 국장  seantlc@ilyoseoul.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