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와 노란 카펫처럼 거리를 덮고 있는 낙엽을 보며 가을이 깊어짐을 느낀다. 선선해진 날씨에 마음은 차분해지고 잔잔한 음악과 예술 그리고 커피가 잘 어울리는 계절이다.

과거 많은 예술가들은 다른 음료와는 달리 유독커피를 사랑하였다. 커피로부터 많은 예술적 창작의 영감을 얻었기 때문이다.

커피하면 빼놓을 수 없는 예술가 중 한명은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작가인 오노레 드 발자크이다.

그는 방대한 양의 단편, 장편으로 이루어진 연작 <인간희극>을 발표하였는데 뛰어난 관찰력과 인물의 사실적인 묘사, 논리 정연한 줄거리의 전개 등을 특징으로 하는 정통 고전소설의 기법을 확립한 소설가의 한 사람으로 인정을 받고 있다.

그는 글을 쓰는 동안 늘 블랙커피를 함께 마셨고 매일 14~15시간 가량 글을 쓰며 커피를 50잔 이상 마셨다고 하니 그의 높은 관찰력과 기억력에 커피가 큰 역할을 하였을 것이다.

또 무라카미 하루키는 비가 오는 날, 테이블이 하나밖에 없는 조촐한 카페에서 잔잔한 째즈 음악과 함께 음미하던 커피를 글로 표현하며 커피의 맛과 함께 커피가 있는 풍경에 대한 예찬을 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음악가 중에는 바흐와 베토벤, 브람스 등이 유명한 커피 애호가들이었다. 특히 바흐는 ‘커피 칸타타’로 알려진 바흐의 칸타타 BWV211을 작곡하였고 이 곡은 독일의 라이프치히 커피하우스에서 작은 오페라 형식으로 공연이 되었다.

이 작은 희극의 내용은 당시 여성들도 커피에 대한 애착이 많았는데 독일에서는 커피가 불임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이유로 여성들은 커피하우스에 출입을 하지 못하였고 이를 풍자하듯 딸에게 커피를 끊으라고 강요하는 아버지와 이를 거부하는 딸의 실랑이가 주된 내용이다. 결국 딸을 이기지 못한 아버지의 이야기로 마무리 된다.

커피와 함께 카페문화에 빠져들기도 하였는데 18세기 파리의 카페는 수많은 예술가들의 아지트였다. 많은 교류를 할 수 있고 따뜻한 커피와 함께 예술적인 영감을 얻을 수 있으며 난방비도 절약할 수 있어 가난한 예술가들은 아침부터 해가 질 때까지 카페에 머무르곤 하였다.

예술가들의 커피와 카페문화에 대한 사랑은 작품에 그대로 녹아들어 빈센트 반 고흐와 기 드 모파상은 그들의 작품을 통해 밤늦도록 반짝이는 거리의 카페들과 그 안의 군중들을 묘사하고 예찬하였다.

우리나라 예술가들 역시 커피와 카페문화를 사랑하고 빠져들었는데 메밀꽃 필 무렵의 작가 이효석 선생은 누구보다 카페 분위기를 사랑하는 사람 중 하나였다. 그리고 천재 시인 이상은 커피를 무척이나 좋아하여 1933년 '제비'라는 다방을 열기도 하였다.

이처럼 수많은 예술인들은 카페에서 위안을 얻었고 커피를 통해 영감을 받으며 창작의 고통을 덜어내었다.

커피가 대중적인 음료로 자리 잡기 시작한 역사는 깊지 않지만 커피의 진한 향은 예술가들을 빠르고 강렬하게 사로잡았다. 그리고 이 작지만 깊이를 알 수 없는 커피는 이제 예술가들 뿐 만 아니라 많은 이들의 위안과 영감을 주는 음료가 되었다.

하루키처럼 작은 카페에서 잔잔한 선율과 커피향에 취해 깊어가는 가을을 만끽하고 잠시나마 커피와 함께하는 풍경을 음미해보면 어떨까한다.

가을비가 내리는 날이면 더할나위 없을 것이다. 내가 있는 풍경이 비록 소박할지라도 커피의 향만큼 마음과 생각은 진하고 깊어질 것이다.

이성무 동국대 전산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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