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 권위주의 국가와의 협력엔 위험 부담 존재
- 한국인의 대중 경계심이 높아진 것이 역설적 성과

 
사드 배치로 인한 한중 갈등이 봉합되는 단계에 들어섰다. 지난 10월 31일 외교부는 ‘한중 관계 개선 관련 양국 간 협의 결과’라는 보도자료를 발표했다. 해당 자료엔 한국과 중국 양측이 기존의 입장을 수정하지 않으면서도 봉합하는 내용이 담겼다.
 
“중국도 한국이 표명한 입장에 유의했고 한국측이 관련 문제를 적절하게 처리하기를 희망했다”는 애매한 문구가 삽입되었다. 향후 한중이 전략적 협력동반자 관계 발전을 추진할 것이라 설명하면서 “모든 분야의 교류협력을 정상적인 발전 궤도로 조속히 회복시켜 나가기로 합의했다”고 밝혔다.
 
중국 측은 자신들의 ‘3불’ 요구를 한국 측이 수용한 것이라 해석한다. 보도자료 발표 전날인 30일 강경회 외교부장관은 국정감사에서 사드 추가 배치 없음, 미국의 미사일방어(MD) 체계에 참여하지 않음, 한미일 3국 안보협력을 군사동맹으로 격상하지 않음 등의 입장을 질의에 답하는 형식으로 밝혔다.
 
한편 관계 회복에 대한 합의는 이루어진 반면 중국 측이 그간 경제보복을 했다는 사실이 명시되지는 않았다. 이는 중국이 그간에도 보복 자체를 인정하지 않았고, 민간의 자발적인 선택으로 선전해 왔기 때문이다.
 
형식이야 어떻든 서로의 속내는 확인되었다고 볼 수 있다. 사드 배치는 애초부터 한국이 계속 미국의 요구를 거절하기는 어려운 사안이었다. 아마도 중국 측에 미리 충분한 양해와 협의를 구했다면 이처럼 노골적인 갈등 양상이 벌어지지는 않았을 것이다. 전임 정부의 일들이 아직 정확히 복기는 안 되지만 시진핑 주석의 경우 자신의 면이 상했다고 느꼈을 수 있다. 그리하여 일 년여에 걸친 갈등 정국이 조성되었다.
 
최근 시진핑 주석은 자신의 권력기반을 공고히 했다. 덩샤오핑 이후 유지되던 집단지도체제를 끝내고 일인지도체제를 수립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가 중국 측에 꾸준히 접촉했다면, 시진핑 주석 역시 체면치레를 했다고 생각했을 수 있다. 애초 비록 한국 측의 손해가 더 크다 할지라도 교류협력의 물길을 막는 것은 중국 경제에도 손해로 작용하는 상황이기도 했다.
 
친미, 혹은 친중
구도로 보기는 어려워

 
그런데 이 합의에 대해서도 말들이 많다. 보수파에선 이 합의가 ‘친중’이라는 이유로 못마땅해 하고, 진보파에선 반대로 ‘친미’라는 이유로 못마땅해 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렇게 판단하는 것은 다소 단순논리인 구석이 있다. 한국은 미국과는 안보적으로 긴밀하게, 중국과는 경제적으로 긴밀하게 엮여 있다.
 
비록 미국 쪽에 비중을 싣는 것이 여러 모로 바람직하다고 판단한다 하더라도 균형추를 한 번에 무너뜨릴 수는 없다. 이른바 ‘사드 보복’으로 인해 한국이 본 직접적인 손실액만 18조 원 규모인 것으로 보도되고 있다. 이 상황을 타개하기 위한 노력은 숨구멍을 틔우기 위한 것으로 봐야지 친미나 친중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지금 한국 정부의 외교적 노력도 운신의 폭을 넓히기 위한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누울 자리를 마련하기 위해 다리를 뻗어 보고 있는 셈이다. ‘3불’의 약속을 했다지만, 양측 모두 부담을 줄이기 위해 문서화하지도 않은 약속이다. 일단 관계 복원을 약속했다지만 수틀리면 발을 뺄 여지도 양측 모두에게 있다고 봐야 한다.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문제
 

오히려 문제는 다른 곳에 있다. 이번 ‘사드 보복’ 사태는 권위주의 국가와의 외교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을 인지하는 계기가 되었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동시에 발전한 나라끼리의 외교 관계에서는 경제협력 관계가 강화되고 긴밀하게 얽히는 경우 그것이 단숨에 반전되어 갈등상황으로 치닫기는 어렵다.
 
갈등이 일어나면 손해를 보는 이해 당사자의 숫자가 늘어나고, 그러한 이해 당사자가 정치권에 압력을 행사할 것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현재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특유의 협상술로 한미FTA 협정을 뒤흔들고 있지만 그렇다고 재협상을 추진하는 것일 뿐 일방적으로 파기할 수는 없다.
 
그러나 민주주의 체제가 아닌 중국의 경우 상당수 이해 당사자들이 손해를 보더라도 그것을 감수하면서 제재라는 선택을 할 수 있었다. 경제주체들이 당국의 명령에 확실히 복종하지만 명령이 있다는 사실이 드러나지도 않았다. 그렇기에 실질적인 경제 보복에도 딱히 어디 제소할 수도 없었고 관계 복원 상황에서도 그것이 있었던 사실을 밝힐 수도 없었다.
 
이는 우리에게 ‘중국 경제에 긴밀하게 얽히는 것이 과연 우리에게 득이 되는 일인가’라는 질문을 던지게 한다. 중국과의 교역을 포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 비중이 지나치게 늘어나는 것을 경계하는 계기로 삼을 일이다. 당장 롯데마트와 이마트의 경우 중국 사업 철수를 선언했지만 이를 번복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이번에 큰 손해를 본 허다한 식품업체들 역시 수출시장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교훈을 얻었을 것이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의 허다한 시민들이 중국에 대해 부정적인 인상을 가지게 되었다. 자국 주도의 아시아 인프라 투자은행(AIIB) 등에 합류를 요청할 때엔 한국에게 구애하던 중국이, 상황이 바뀔 때 다른 나라를 대하는 방식이 어떤지를 알게 되었다.
 
그렇게 본다면 이번의 보복 사태는 장기적으로 중국에게 손해가 될 수도 있다. 한국이 중국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할 만큼 깊게 엮였을 때가 아니라, 지금 시점에서 중국 문제를 유의해야 한다는 교훈을 주었기 때문이다. ‘사드 보복’ 자체는 한국 정부의 실책에 기인했지만, 훗날엔 중국 정부의 실책으로 기록될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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