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경제는 어디로? 정치적 이해관계 악습 되풀이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지난달 30일 국회 정무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금융권 ‘올드보이의 귀환’과 관련해 비판적 견해를 보인 바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강휘호 기자] 우리나라는 1960년대 군사정권 시절, 정부가 경제 성장을 주도하면서 관치라는 그림자가 처음으로 경제에 드리웠다. 물론 전쟁 직후라는 시대적 특수성으로 정부 개입 없이는 정상적 경제 발전이 힘든 상황이었다. 이후 60여년 흐른 지금은 자연스러운 시장 경제 체제를 구축했고, 관치 경제는 편협한 정치적 이해관계를 돕는 수단쯤으로 퇴색했다. 정경유착, 낙하산 인사 등 관치 경제가 낳은 폐단 역시 정부가 해결해야 하는 최대 과제이자 의무로 남아 있다. 그런데 촛불민심이 낳은 문재인 정부가 또 다시 관치 경제를 반복하는 듯한 모습을 보이며 많은 우려를 낳고 있다.

거래소·손보협 등 금융권 가장 심각…비금융권도 마찬가지
새 회장 맞는 은행연·생보협 등도 낙하산 내릴까 ‘노심초사’


문재인정부의 관치는 금융 수장 인사가 가장 심각하다는 평가다. 손해보험협회부터 한국거래소까지 은퇴한 전직 관료들이 금융협회장직을 장악하면서 보은성 인사 혐의가 짙어졌다.

지난달 31일 손해보험협회는 김용덕(67) 전 금융감독위원장을 신임 회장으로 선임했다. 김용덕 신임 회장은 행정고시 15회, 최종구(60·행시 25회) 금융위원장보다 10년 선배로 재무부에서 공직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지난 2007∼2008년 장관급인 금융감독위원장을 지낸 바 있는 그가 지난 대선에서 문재인캠프 정책 자문단으로 참여한 이력이 문제다. 이른바 보은 인사라는 시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무엇보다 김 회장 선임을 두고 대내외적으로 “참여정부 시절 고위직들이 금융권 요직에 다시 등용되는 등 관치와 올드보이의 귀환이 동시에 진행되고 있다”며 날카로운 지적이 이어진다.

한국거래소도 정지원 한국증권금융 사장을 새 이사장으로 추대했다. 거래소는 지난달 31일 서울 여의도 사옥에서 임시 주주총회를 열고 이사후보추천위원회가 단독 추천한 정 사장을 6대 이사장으로 선임했다고 밝혔다.

정 신임 이사장의 임기는 2020년 11월1일까지 3년이다. 정 이사장도 관료 출신으로 거래소는 관치 논란을 피하기 어렵다. 정 이사장은 부산 출신, 행시 27회 관료로 금융위원회에서 은행감독, 감독정책과장 등을 거쳤다.

애초 정 이사장이 거론되기 전 유력후보였던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이 추가 공모 뒤 자진 사퇴했고, 정 이사장은 증권금융사장 임기가 1년도 더 넘게 남아 있던 터라 내정설이 나오기도 했다.

줄줄이 이어지는 관치 인사에 대한 반발도 뒤따르고 있다. 거래소 노동조합은 거래소 정 이사장을 두고 낙하산 인사로 낙인찍고, 돌려막기 회전문 인사라면서 거세게 반발했다.

노동조합 측은 “(정 이사장은) 돌려막기 회전문 낙하산 인사”라면서 “권력 갈등설, 부산 홀대론이 흘러나오자 추가 공모를 통해 김광수 전 금융정보분석원장 대신 거래소 이사장에 지원한 것”이라고 힐난했다.

현 수장들의 임기 만료를 앞둔 금융협회장 자리도 자칫 관치 논란에 기름을 부을 하마평이 나오고 있다. 차기 은행연합회장에는 홍재형(79) 전 경제부총리가 후보로 부상하고 있다. 후보군인 김창록(68) 전 산업은행 총재, 윤용로(62) 전 외환은행장도 관료 출신이다.

오는 12월 임기가 만료되는 생명보험협회장직도 문재인 정부와 관련된 인물이 취임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감사를 비롯한 임원 인사를 앞둔 금융감독원도 기획재정부나 금융위원회 출신 인사들이 내려올 가능성도 점쳐진다.

최흥식 금감원장도 관료 출신은 아니지만, 굳이 따지자면 1999년 공식 출범을 앞둔 금감원의 감독기구경영개선팀장으로 발탁돼 밑그림을 그렸다는 이력 때문에 관료 출신으로 분류되기도 한다.

특히 비금융권 인사에서도 정부의 입김이 작용하고 있다는 정황들이 포착되면서 관치 경제의 민낯은 더욱 드러나고 있다. 이러한 의심은 김인호 한국무역협회장이 지난달 24일 임기를 4개월가량 남겨두고 물러나면서부터 시작됐다.

박근혜 정부 때 취임한 김 회장은 사임 발표 직후 “정부가 사임을 희망하는 취지의 메시지를 보내왔다”며 사실상 압력이 작용했다고 밝힌 것. 김 회장의 사례를 제외하더라도 무역협 역대 회장 17명 가운데 순수 기업인은 3명에 불과하다.

무역협회도 관료나 정치인 출신으로 취임 때마다 낙하산 논란 벌어지는 온상 중 한 곳이라는 이야기다. 김 회장의 뒤를 이을 수장이 관료 또는 정치인 출신이라면 문재인 정부가 자신들의 관치를 공공연히 드러내는 꼴이 될 수 있다.

그 외에도 공정거래위원회의 재벌 개혁을 비롯해 통신비 인하 공약, 보편적 요금제 도입과 분리공시제, 초대기업과 초고소득자로 대상을 좁힌 증세안, 방미(訪美) 경제인 명단 확정 때도 관치라는 비판이 따라다녔다. 

심지어 국민연금공단의 의결권 행사가 매년 증가하는 점에 미뤄봤을 때 연금공단이 관치 경영, 정치적 논리를 대변할 수 있다는 걱정도 있다. 의결권 행사는 2014년부터 2775건, 2015년 2836건, 2016년 3010건이었고 올해는 4월까지 2635건으로 꾸준히 늘었다.

해당 조사를 실시한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윤종필 자유한국당 의원은 “국민연금이 주식에 투자하는 비중이 늘어나는 만큼 의결권 행사가 관치경영, 정치적 논리를 대변한다는 우려를 불식하도록 절차가 투명하게 공개돼야 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되니 “적폐 청산을 하겠다던 정부마저도 관치 논란을 일으키면 어떡하나”, “정부 행정의 지지율이 높을 때 멀리 봐야지, 당장의 실익을 위해 꼬투리 잡힐 만한 행동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목소리까지 나온다. 

한편 일각에서는 문재인정부를 옹호하는 견해도 존재한다. 왜 지난 모든 정권이 저지른 잘못을 문재인정부에 뒤집어 씌우냐는 논리다. 또는 아무리 자유로운 시장경제가 안정화됐다고 해도 어느 정도의 관치는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다.

관치 논란을 부른 협회장직들은 정부와의 교감이 필요한 자리이기 때문에 관료 출신이나 정치인 출신이 가서 앉는 것 아니냐고 반박한다. 관치라는 오명을 얻고 시작한 인사들이 향후 어떤 모습을 보여주는지에 따라 정부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이 명약관화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