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소송 두려워 현장 안 나가려 하기도

<뉴시스>
[일요서울 | 조택영 기자] 경찰, 소방관 등 국민의 안전을 책임지는 공무원들이 적극적으로 업무를 처리하다가 불이익을 당하는 사례가 증가하고 있다. 경찰을 자극해 폭행을 당한 후 과잉 진압이라며 소송을 하거나 불을 꺼준 소방관에게 손해배상을 청구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경찰 로또’, ‘공무원 로또’라는 말까지 횡행하고 있다.

경찰 자극해 폭행당한 후 고소하려는 수법
소방관, 불 꺼주고 소송 당해···소방법 개정안 발의


지난달 27일 홍대입구역 번화가는 핼러윈데이 여파로 축제 분위기를 물씬 풍겼다. 당시 현장에는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뤘다. 이 때문에 당일 사건‧사고가 잦았다. 외국인과 한국인의 충돌로 경찰까지 출동해 소동을 빚었다. 경찰의 중재로 상황은 일단락됐으나 소란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건 인근에 위치한 카페에서 일하는 직원은 “평소 (홍대 번화가에는) 취객들의 사건‧사고가 많다. 요즘 추세는 (싸움이 일어난 경우) 일부러 맞으려고 한다. 합의금을 받아내려는 속셈”이라며 “이런 형태가 변질돼 최근에는 경찰에게까지 행패를 부리고 돈을 받아 내려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직원의 말처럼 최근 유흥가에서는 상인, 취객 사이에 ‘경찰 로또’라는 신조어가 횡행하고 있다. 술을 마시고 경찰관에게 시비를 걸고 자극해 경찰관에게 폭행을 당한 뒤 고소를 해 수천만 원의 합의금을 받아내는 것이다.

경찰이 자신들을 붙잡을 때 조금이라도 물리력을 동원하면 ‘경찰 때문에 다쳤다’고 민원을 제기하거나 고소를 한 뒤 합의금을 받아 내는 방식이다.
 
경찰, 과잉진압 논란
 
지난 6월에는 10대가 심야 시간대에 소란을 피우다가 출동한 경찰관에게 저항해 테이저건에 맞고 체포됐다. 소란을 피웠던 10대는 기소 의견으로 검찰에 넘겨졌다.

당시 사건을 일으킨 A군은 출동한 경찰관에게 욕설과 함께 멱살을 잡는 등 공무집행을 방해한 혐의를 받았다.

주변에 있던 B군 등은 A군을 체포하는 경찰관을 잡아당겨 조끼를 찢기도 했다.

현장에 출동한 경찰관 4명은 “청소년들이 술을 마시고 싸우고 있다”는 신고 4건을 접수, 현장에 있던 청소년 20여 명에게 귀가할 것을 설득하고 있었다.

이 과정에서 A군 등은 경찰의 지시를 무시하고 멱살을 잡는 등 제압에 저항하며 폭력을 행사했고, A군은 전기충격 기능이 있는 테이저건을 4차례 맞고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A군은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자신이 테이저건으로 제압당하는 영상과 상처를 입은 사진 등을 올리며 경찰관이 과잉 진압했다고 주장했다.

논란이 잇따르자 경찰은 A군 일행과 당시 현장 주변에 있는 목격자 등을 상대로 조사를 벌여 A군이 먼저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증언을 확보했다.

경찰 관계자는 “경찰이 먼저 폭력을 행사했다고 하는 피의자쪽 주장과 A군이 먼저 물리적으로 저항했다는 진술이 엇갈려 주변 목격자를 확보해 A군이 먼저 물리력을 행사했다는 주장을 확보했다”면서 “또 이들에게 술을 판 편의점 업주와 직원도 청소년 보호법 위반 혐의로 입건했다”고 설명했다.

이 밖에도 최근 한국일보 보도에 따르면 서울 강남경찰서 소속 A형사는 폭행 신고가 접수된 현장에서 30대 남성을 체포했다가 곤욕을 치렀다.

경찰이 양 측을 뜯어말리는 과정에서 체포된 남성 몸에 상처가 났는데 A군이 “경찰이 먼저 때려 다쳤다”고 감찰 부서에 정식 민원을 제기한 것이다. 폐쇄회로(CC)TV에 당시 상황이 찍혀 남성을 공무집행방해로 추가 입건하는 것으로 마무리 수순에 접어들었으나 A형사는 “이후로는 되도록 현장에 나서지 않으려고 한다”고 밝혔다.

새 정부가 출범한 후 인권 경찰에 대한 목소리가 커지는 가운데 민원이나 사건 관계인의 눈치를 볼 수밖에 없다는 경찰들의 하소연이 들리고 있다.
 
불 꺼줬더니
‘보따리 내놔라?’

 
경찰 이외에도 소방공무원들이 소방활동 시 발생한 사고로 인해 민‧형사 소송에 휘말려 손해배상을 하는 등 문제가 제기되고 있다.

지난 2011년에는 항구에 정박한 배에서 불이 났다는 신고를 받고 출동한 태안소방서 소방관들이 고초를 겪었다. 화재 현장에 소화전이 없어 바닷물까지 끌어다 불을 껐지만 오히려 억대 소송에 휘말린 것이다.

당시 소방관들이 화재를 진압하는 사이에 선박 7척이 불에 탔다. 선주들은 소방관의 출동이 늦어 피해가 커졌다며 충남도와 태안군에 손해배상을 청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법원은 소방관들의 과실을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소방관들은 판결이 내려지기 전까지 법정을 드나들며 스트레스를 겪어야 했다.

한편 소방관들에게 중대한 과실이 없는 경우 소방활동 등으로 인한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고 이와 관련한 소송이 제기되면 국가가 소송수행에 필요한 지원을 하도록 하는 법안이 발의됐다.

지난달 30일 국민의당 이용호 의원은 ‘소방기본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 발의했다.

해당 개정안은 소방활동 등으로 인해 물건이 파손되거나 인명피해가 발생하는 등 사고로 민‧형사 소송이 제기됐을 때 소방청장 등이 소방공무원의 소송수행을 지원하도록 한다. 또 소방공무원의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을 경우 인명피해에 대한 형사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이 의원은 “소방관들은 국민의 재산과 생명을 보호하기 위해 목숨을 걸고 기꺼이 화마로 뛰어드는 사람들이다”라며 “이러한 소방관들의 희생과 노고를 국가가 보상은 못해줄망정, 공무 수행 과정에서 발생한 사고의 책임을 그들에게 떠넘겨서는 안 된다”라고 지적했다.

이어 “소방청이 국민안전처로부터 분리·신설된 만큼 보다 실효적인 법률자문지원단의 구성이 시급하다”면서 “이번 개정안을 통해 소방공무원이 국민에 대한 봉사자로서 자긍심을 가지고 근무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되길 바란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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