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소프트 윤송이 사장의 부친이자 김택진 대표의 장인 윤모씨를 살해한 혐의로 구속된 피의자 허모씨가 3일 오후 검찰에 송치됐다. 경찰은 현재까지 수집한 증거만으로도 혐의 입증은 충분할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하지만 여전히 허 씨가 입을 다물고 있어 사건의 구체적 실체는 드러나지 않은 상태다.
 
그는 경찰에 체포된 직후 처음에는 부인하다가 ‘주차 문제로 시비가 붙어 살해했다’고 인정했다. 하지만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서 “시동이 걸린 윤 씨의 벤츠를 훔쳤지만 살해하지 않았다”고 말을 바꿨다.
 
경찰은 경제적인 이유 때문에 범행이 이뤄졌을 것으로 보고 있다. 유력한 살인 동기는 허 씨가 지고 있던 8000만 원가량의 빚이다. 허 씨는 원금과 이자를 포함해 매월 200~300만 원을 상환하고 있으며, 최근 채권자로부터 빚 독촉을 받아온 것으로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허 씨가 엔씨소프트가 개발한 리니지 게임에서 사용되는 200만~300만 원 상당의 고가 아이템을 구매하려 한 적이 있다며 계획 살인을 주장하지만, 현실성은 낮은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현재까지의 수사 상황을 종합해보면 허 씨는 피해자가 누구인지 모르고 살해했을 가능성이 높다. 경찰은 허 씨가 대상을 특정하지 않고 부유한 사람을 범행 대상으로 삼으려던 중 발생한 것으로 보고 있다.
 
허 씨의 범행이 계획적이었는지 우발적이었는지에 대해서도 아직 확실히 밝혀진 건 없는 상황이다. 이번 사건에는 범행 전과 후로 나뉘어 두 가지 가능성이 모두 존재한다.
 
계획적이라고 볼 경우 그의 범행 전 행적이 주목된다. 허 씨는 계획 살인을 암시하는 단어를 휴대폰으로 검색했다. 경찰에 따르면 그는 범행 하루 전 수갑, 가스총, 핸드폰 위치추적, 고급빌라 등을 검색했다. 대상 선정과 협박·납치 수단, 그리고 도주 등을 준비한 정황인 셈이다.
 
허 씨는 범행 당일 자신의 휴대전화를 꺼둔 채 이동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범행 직후에는 살인, 사건사고 등을 검색했다. 특히 도주하는 과정에 편의점에 들러 밀가루를 구입한 것도 증거를 인멸하기 위한 것이라는 추측이 가능하다.
 
허 씨는 사전 탐색도 진행한 것으로 전해진다. 범행 당일 허 씨는 경기 양평군 서종면에 위치한 윤 씨 자택 인근을 오후 3시부터 한 시간 간격으로 세 차례나 찾았고, 색소폰 동호회 활동을 마친 피해자 윤 씨는 오후 7시 25분쯤 집 앞 주차장에 도착했다.
 
허 씨는 윤 씨를 10여 차례 칼로 찔렀다. 준비한 흉기가 있다는 점과 10여 차례나 찔렀다는 점은 우발적 살인과는 차이가 있다는 게 경찰 측의 설명이다. 흉기 상흔은 대부분 몸싸움 과정에서 나타난 방어흔으로 추정되며, 사망으로 이어진 치명상은 목과 왼쪽 가슴 등 5곳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범행 이후 허 씨의 행동을 보면 계획적인 범행이었다고 단정하긴 어렵다. 그는 피해자의 시신을 주차장에 놔둔 채 윤 씨의 차량을 타고 현장을 빠져나갔다. 계획 살인이었다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가지 않는 부분이다.
 
허 씨가 휴대폰 위치추적을 검색했다는 건 도주에 신경을 썼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는 시신을 은닉한다면 더욱 용이할 뿐 아니라 시간을 벌 수도 있다. 경찰 역시 살인보다는 실종에 무게를 둔다면 확보할 수 있는 도주 시간은 더 길어진다.
 
실제로 허 씨는 범행 20시간 만에, 윤 씨의 아내가 경찰에 신고한 지 10시간 만에 붙잡혔다. 윤 씨의 차량 역시 제대로 숨기지 않았다. 허 씨는 범행 직후 윤 씨의 벤츠 차량 키를 훔쳐 차를 몰고 달아났다. 하지만 윤 씨의 자택에서 불과 5km 떨어진 공터에 버려뒀다. 여기에서 허 씨는 본인의 차량으로 옮겨 탄 뒤 도주했다.
 
특히 허 씨는 전북 임실의 국도에서 경찰에 붙잡혔는데, 검거 당시 그는 범행 과정에서 옷과 신발에 튄 혈흔이 그대로 있었다. 범행 후 20시간이 지나도록 옷을 갈아입거나 지우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셈이다. 경찰은 우선 범행 동기에 대해 허 씨가 강도 범행을 계획하고 흉기를 소지한 채 양평으로 갔다가, 예상치 못하게 윤 씨를 살해한 것으로 잠정 결론 내린 상태다.
 
아직 풀리지 않은 의문은 또 있다. 범행 도구다.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은 지난 31일 오후 전북 순창군 팔덕면의 허 씨 부친의 묘소 근처에서 과도와 밀가루 봉지를 발견했다.
 
이 과도가 범행에 사용된 것으로 경찰은 보고 있다. 하지만 국립과학수사연구소는 이 흉기에서 ‘피해자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다’는 구두 소견을 경찰에 통보했다. 이에 경찰은 허 씨의 동선을 추적해 수색을 강화하고 흉기의 정밀 감정을 진행하고 있다.
 
일단 경찰은 흉기에서 피해자의 DNA가 검출되지 않았지만 범행도구일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고 있다. 시신에 남은 흉기 상흔의 깊이가 모두 흉기의 날 길이인 8㎝ 미만인데다, 흉기 발견 장소가 특이하고 흉기가 비교적 새것이라는 점 등을 감안하면 범행도구일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또 범행 후 허 씨의 행적이 완벽히 조사되지 않아 흉기에 남은 혈흔을 제거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흉기가 허 씨의 부친 묘소 인근에서 발견되고 편의점에서 구매한 밀가루가 뜯지 않은 채 발견된 점도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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