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수공작비냐 주머니 쌈짓돈이냐…도마 오른 ‘묻지마 예산’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국가정보원의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이슈가 대한민국을 강타하고 있다. 박근혜 정부의 최고 실세였던 ‘문고리 3인방’이 국정원으로부터 뒷돈을 상납받은 사실이 알려지면서 파문이 일파만파 커지고 있다.

특히 이재만(51)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은 이 같은 행동에 박 전 대통령 지시가 있었다는 ‘폭탄 진술’까지 해 논란이 더욱 커지는 상황이다. 청와대가 사용처를 알기 어려운 국정원 특수활동비를 쌈짓돈처럼 받은 것이 드러나면서 특수활동비에 관한 사회적 관심이 높아지는 가운데 ‘눈먼 돈’을 손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부처 총 특활비 중 55% 차지… 총액은 투명·내역은 불투명
‘흔적’ 안 남기니 각종 부작용 발생…‘눈먼 돈’ 개혁 필요성 대두

 
특수활동비는 ‘기밀 유지가 요구되는 정보나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 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를 가리킨다. 특수활동비는 국정원뿐 아니라 국회나 주요 정부 부처에도 배정되는데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이 기획재정부에서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정부의 지난해 특수활동비는 8870억 원, 올해는 8990억 원에 달했다.
 
이 가운데 국정원은 정보기관 특성상 가장 많은 특수활동비를 배정받는다. 올해 국정원 특수활동비 예산은 4947억 원으로, 정부 전체 특수활동비 예산의 55%를 차지했다.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는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 2013년 이후 매년 증가해 왔다. 2013년 4672억 원이던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지난해 4930억 원으로 증가 추세를 보였다. 국정원은 본예산 외에도 매년 4000억 원 규모의 예비비를 별도로 배정받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진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대북 공작이나 대테러 첩보, 기밀수사 등에 사용되는 것이 원칙이다. 국정원법 제12조에 의하면 ‘국정원 예산은 총액으로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제출하고 그 산출내역과 이에 따른 첨부서류는 제출하지 않아도 된다’고 규정돼 있다. 예산을 쓰되 어디에 썼는지 ‘흔적’을 남기지 않아도 무방하다는 뜻이다.
 
국정원 특수활동비는 국회 예산 심사는 물론 감사원의 실태 점검도 받지 않는다. 국정원 예산은 모두 특수활동비로 구성되고 ‘비밀유지’ 필요성 등에 비춰 타 기관과 성격이 다르다는 이유에서다.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관계자는 “국정원 특활비는 예산·결산 심사를 예결특위가 아닌 국회 정보위에서만 비공개로 진행돼 용처를 확인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렇다 보니 특수활동비를 둘러싼 용처 논란이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특히 이번 사태는 국정원 특수활동비 중에서도 ‘특수활동공작비’를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그 심각성이 더하다는 지적이다.
 
특수활동공작비는 국민 안전을 위해 급히 쓰이는 예산을 비롯해 해외 공작 사업, 대북 첩보 사업 등에 사용되는 예산이다. 국정원 출신인 더불어민주당 김병기 의원은 “특수공작사업비는 국민의 안전을 위해 갑자기 돈이 필요할 수 있어서 공작금을 쓰지 않고 놔두는데 그걸 썼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향후 검찰 수사는 특수활동공작비 등을 포함한 특수활동비의 용처를 밝히는 데 수사력이 집중될 전망이다.
 
고위공직자 ‘인마이포켓’ 논란
국정원, 불법 정치활동에 써 ‘심각’

 
특수활동비는 그간 식사 접대나 유흥비, 골프 접대 등 고위공직자들의 쌈짓돈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지적이 수차례 제기됐다. 2007년 5월 노무현 정부 시절 김성호 법무부 장관은 부산시 정계 인사 등과의 저녁 식사에 특수활동비로 600여만 원을 써 논란에 휩싸인 바 있다. 당시 법무부는 이를 특수활동비라고 인정했으며, 김 장관은 뒤늦게 사비 처리하며 논란을 수습했다.
 
특히 국정원의 경우는 특수활동비를 불법 정치활동에 쓴 사실이 여러 차례 드러나 더욱 심각하다는 지적이다. 이명박 정부 시절 국정원이 민간인 댓글부대인 사이버외곽팀을 운영하며 일 년에 30억 가량의 예산을 쓴 사실이 밝혀진 바 있다. 국정원 개혁발전위원회에 따르면, MB 국정원은 2009년 5월~2012년 12월까지 30개 댓글팀을 운영하며 인건비로 한 달에 2억5000만~3억여 원을 지급했다.
 
2012년 5월에는 군 사이버사령부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받아 여론공작을 위해 인터넷 언론을 설립해 운영했다는 의혹도 제기된 상태다. 국정원은 사이버사에 매년 30억~60억 원의 특수활동비를 지원했으며, 이 가운데 일부는 사이버사 심리전단 부대원들에게 수당 성격의 활동비로 지급된 것으로 알려졌다.
 
특활비, ‘수술 필요’ 목소리
한국당 “국회 감시↑…DJ·盧 의혹도 수사”

 
박근혜 정부 청와대가 국정원의 특수활동비를 상납받았다는 파문이 터지자 재발 방지를 위해 ‘눈먼 돈’을 손 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는 지난달 31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정원 특수활동비와 관련해 “국정원 예산은 국정원법에 의해 재정당국 통제 바깥에 있다”며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고 본다”고 밝혔다.
 
국회 기재위 소속 민주당 박영선 의원은 1일 페이스북에서 “아무도 들여다보지 않는 예산, 우려했던 일이 이미 벌어지고 있었다”며 “더는 국정원 특활비를 청와대 쌈짓돈처럼 가져다 쓰는 일이 없도록 국정원 예산도 기재부의 비밀인가를 얻은 예산전문가의 통제를 받아야 한다”는 견해를 밝혔다.
 
자유한국당은 국회의 감시 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이번 청와대 상납 파문과 관련해 법의 심판이 필요하다고 밝히면서도 전 정부뿐 아니라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 특수활동비 유용 문제도 살펴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3일 한국당 정치보복대책특위 장제원 의원은 노무현 정부 당시 대통령 특수활동비를 횡령한 혐의로 구속기소된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관리하던 특수활동비 3억 원이 권양숙 여사에게 흘러갔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장 의원은 “국정원 특수활동비가 대통령의 비자금으로 쓰였다면 이를 철저히 규명하고 법의 심판을 받아야 마땅하다”면서도 “검찰은 지금부터 제기하는 노무현 정권 당시 청와대 특수활동비로 보이는 돈이 권양숙 여사로 흘러들어간 의혹에 대해서도 철저한 수사에 즉각 착수하기 바란다”고 주장했다.
 
한편, 서훈 국정원장은 국정원 특수활동비 파문에 대해 지난 2일 정보위 국감에서 “현 상황을 참담하게 받아들인다”며 “국정원 문제를 국민 앞에 공개하고 신뢰받는 기관으로 재탄생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시기에 관계없이, 정권과 상관없이 조사하겠다”고도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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