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심 쟁점 ‘권력구조’ 논의 ‘걸음마’…개헌 골든타임 놓치나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내년 지방선거에서 동시 개헌 투표를 실시하기로 돼 있지만 쉽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 섞인 전망이 나오고 있다. 개헌 사항 가운데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가 지지부진하기 때문이다. 이 문제에 대해 당청이 적극
 
적이지 않다는 지적과 함께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도 동시 개헌 투표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여 개헌이 다시 미뤄지는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오는 상황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시민단체 등에서는 ‘공론화위원회’를 통해 개헌 논의를 진행해 보자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대통령·여당 ‘뭉그적’…정부형태 관한 개헌 의지 ‘후퇴’ 지적
제1야당도 地選 고려 ‘소극적’…‘공론화위’ 도입 목소리 나와

 
개헌 논의는 크게 권력구조(정부형태), 지방분권, 기본권 등 세 가지를 중심으로 이뤄지고 있다. 국회 헌법개정특별위원회는 올해 1월부터 관련 논의를 이어오고 있는데 10개월이 지난 지금 지방분권, 기본권에 대한 논의는 비교적 순항하는 상태다. 그러나 현행 5년 단임제인 권력구조를 어떻게 바꿀 것인가에 대해선 합의에 이르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권력구조 개편 필요성은 대통령에게 과도하게 집중된 권력을 분산하고 견제장치를 마련하자는 공감대에서 출발했다. 대표적으로 대통령 권한을 부분적으로 축소한 4년 중임 대통령제, 의회 다수당 소속 총리가 국정을 운영하는 의원내각제, 국민이 직선하는 대통령과 국회가 선출하는 총리가 권력을 분점하는 이원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혼합정부제)가 있다.
 
4년 중임이냐 이원집정부제냐 ‘씨름’
여야정, 地選 앞두고 셈법 작용

 
현재 국회 개헌특위 자문위원회 산하 정부형태 분과에서는 위원 11명 중 6명은 이원집정부제, 2명은 4년 중임제, 2명은 내각책임제, 1명은 절충안 제시 등 입장이 갈리는 것으로 알려졌다. 개헌특위는 내년 2월까지 특위 차원의 개헌안을 마련하고, 3월 중 개헌안을 발의한 뒤 5월까지 본회의 의결 절차를 마무리하자는 큰 틀만 합의한 상태다.
 
지방선거가 7개월 앞으로 다가왔지만 핵심 쟁점인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는 걸음마 단계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배경으로 우선 정부·여당이 개헌 논의에 소극적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1일 국회 시정연설에서 개헌과 관련해 지방선거 동시투표, 지방분권형 개헌, 국민 기본권 보장 등 기존 입장을 재차 밝혔다. 하지만 정작 논의가 지연되고 있는 권력구조에 대해선 언급이 없어 이에 대한 의지가 후퇴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정치권에서 나오고 있다.
 
국민의당 김철근 대변인은 “개헌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편에 있다”며 “문 대통령은 합의가 가능한 지방분권과 국민기본권만 언급하고 가장 중요한 제왕적 대통령제 권력구조 개편엔 미온적 태도를 보이고 있어서 대단히 우려스럽다”고 말했다. 한 정치권 관계자도 “시기상으로 지금 굉장히 촉박한데 너무 원론적 얘기에 그쳤다”면서 “개헌의 핵심 쟁점에 대한 생각을 밝혔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개헌으로 국정 이슈가 집중되면 국정 스포트라이트가 대통령에서 개헌으로 이동하는데 (원론적 발언에 비춰보면) 개헌을 대통령 국정 장악력을 위한 보조수단으로 활용하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라고도 했다.
 
이러한 문 대통령의 개헌 기조에 여당이 발맞춰 가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한 야당 관계자는 “지방선거가 다가오니까 여당 입장에서도 현상 유지가 좋을 것”이라며 “괜히 개헌 문제 건드려서 국정 주도권을 개헌에 내주고 싶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개헌의 키를 쥐고 있는 한국당도 당초 입장과 달리 개헌에 소극적 입장으로 돌아선 분위기다. 홍준표 대표는 지난달 한 언론 인터뷰에서 “개헌을 지방선거에 덧붙여 투표하는 것은 옳지 않고, 지방선거 이후에 개헌 일정을 갖는 것이 맞다”며 연기 입장을 밝혔다. 국회에서 개헌안이 가결되려면 재적 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하는데 107석의 한국당이 반대하면 개헌은 불가능한 상황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정치적 득실 계산이 작용했다는 분석이 나오는 가운데 다른 야당의 한 관계자는 “야당 입장에선 (개헌과 지방선거를) 따로 하는 게 좋긴 좋다”며 “따로 떼놓으면 여당과 각을 세울 수 있는데 개헌이 끼면 존재감을 뺏겨 선거에 악영향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권력구조 논의를 제외하고 지방분권과 기본권 등 다른 사안에 대한 개헌안이라도 우선 도출하자는 의견이 여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하지만 권력구조를 뺀 개헌은 야당에서 어불성설이라는 입장이어서 합의 도출이 쉽지 않을 전망이다. 시기적으로도 집권 초기인 내년을 놓치면 개헌 추진은 물 건너갈 공산이 크다.
 
국회 논의 지지부진하자
‘원전 공론화위’ 모델 도입 주장

 
국회 개헌 논의가 공전하는 가운데 개헌의 구체적 방향을 국민이 참여하는 공론화 방식으로 결정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와 주목된다. 최근 신고리 5, 6호기 원전 건설 재개 여부를 두고 공론화위가 구성, 숙의 과정을 거쳐 재개 권고안을 내놓았듯 지지부진한 개헌 쟁점에 대해서도 공론화 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지난달 31일 국회에서 열린 ‘개헌의 아킬레스건 정부형태, 국민개헌 공론화위가 대안인가’ 토론회에서 전직 노동부 장관인 이상수 개헌특위 자문위원은 “개헌 공론화위를 구성해 개헌작업을 진행해야 한다. 정부형태나 사회적 기본권의 확충범위, 지방분권 등 주요 사안에 논의가 집중되도록 의제를 줄이되 경우에 따라선 정부형태 개헌에 관해서만 (공론화위에) 넘겨도 된다”고 밝혔다.
 
이 위원은 국회 개헌특위 산하에 공론화위를 설치해 13명 내외의 공론화위원을 특위가 선임하고 무작위로 추출한 국민 배심원단(1000명)과 전문가 위원(20명)을 구성, 최종의견은 배심원단이 결정하자는 방식을 제안했다.
 
헌법개정여성연대 신필균 공동대표는 토론회에서 “공론화위를 구성해 정부형태 개헌을 논한다는 건 (특정 정부형태의) 옳고 그름을 얘기하는 게 아닌, 국민의 선호도를 도출해보자는 것”이라며 “공론화위가 낸 결론을 국회가 수용할 수 있도록 양측이 사전 합의를 할 필요도 있다”고 말했다.
 
반면 공론화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신좌섭 서울대 의대 교수는 “개헌은 수십 년을 내다보고 해야 한다”며 “3개월의 공론화로 숙의가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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