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시스>
北 도발, 베트남전 참전, 무장간첩, 서해교전 등 역경과 시련 이겨내고 성장
일제가 남긴 38.99식 소총과 M1 소총 → M16과 K-2 소총으로 대체

 
6.25전쟁이 발발할 당시 전차와 전투기 한 대 없었던 우리 국군(國軍)은 1948년 건군(建軍)이후 69년이 지난 현재 첨단 무기로 무장한 선진 정예 강군으로 탈바꿈했다.
 
48년 창설(創設) 당시 거의 빈손으로 출발한 것과 다름없었던 국군은 5만여 명의 병력과 일본군이 두고 간 99식 소총 등 재래식 병기를 기반으로 탄생했다. 국군은 6.25전쟁과 휴전 뒤에도 계속된 북한의 도발, 베트남전 참전, 무장간첩, 서해교전 등 온갖 역경과 시련을 이겨내고 정예 대군으로 성장했다.
 
국군의 뿌리는 1940년 9월 17일 중국 충칭(重慶)에서 창설된 한국광복군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영국군과 연합해 미얀마에서 심리전 활동을 펼쳤던 광복군은 미국 전략사무국(OSS)과 협약을 맺고 특수공작 훈련을 받은 뒤 국내진공작전을 계획했다.
 
이 계획은 일제의 항복으로 실현되지 못했다. 광복군은 이후 1946년 6월 미(美)군정에 의해 해체됐으나 일부가 같은 해 6월 15일 창설된 조선경비대 요원으로 참여해 대한민국 건군에 기여했다.
 
1948년 8월 15일 정부 수립과 함께 국군도 새롭게 탄생했다. 정부조직법에 따라 국방부가 설치되고 이어 국군조직법과 국방부 직제령이 공포됨에 따라 정식으로 통위부가 국방부로 개칭됐다. 이어 조선경비대와 조선해안경비대가 각각 육군과 해군으로 편입, 법제화돼 국군이 공식적으로 탄생했다.
 
그러나 소총 한 정, 탄환 한 발까지도 미국의 원조 없이는 확보할 수 없었던 국군의 현실은 가혹할 수밖에 없었다. 1949년 국민 성금으로 구입했던 당시 해군 최대 규모의 전투함 백두산함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에서 연안 경비용으로 운용했던 450톤급의 PC-461 초계정이었다.
 
1949년 창설된 공군은 6.25전쟁 발발 전까지 단 한 대의 전투기도 보유하지 못했고 육군 역시 105mm 수준의 야포 정도만 확보했을 뿐이었다. 전차는 전무했다. 그러나 6.25전쟁은 이런 우리 군(軍)에 엄청난 시련인 동시에 성장의 기회였다.
 
북한 인민군은 우리 군의 3배가 넘는 병력과 소련제 탱크 등 월등한 장비를 앞세워 1950년 6월 25일 새벽 38선을 넘어 침공했다. 군은 1953년 휴전 때까지 30만여 명의 인명피해를 겪으면서도 영토와 자유를 수호하는 본연의 역할을 수행했다.
 
휴전협정으로 잠정적 평화가 찾아왔으나 휴전선을 넘나드는 각종 도발과 병력증강, 신무기 도입, 무장간첩 남파 등 대남 적화야욕을 포기하지 않는 북한군과 대치하며 한순간도 방심할 수 없는 긴장의 연속선상에서 우리 군은 수없는 도전과 응전을 되풀이해왔다.
 
이런 와중에도 군은 1965년 베트남전에 참전하고 1990년대부터는 소말리아 등에 유엔평화유지군(PKO)을 파견하기 시작해 외국으로부터 ‘꾸리(한국) 넘버 원’, ‘평화유지활동의 본보기’라는 찬사를 받기도 했다.
 
1964년 9월 11일 제1이동외과병원 요원과 태권도 교관에 이어 1965년 3월 비둘기부대, 1965년 10월 청룡부대의 베트남 파병을 거쳐 2004년 자이툰부대와 다이만부대의 이라크.쿠웨이트, 2007년 동명부대의 레바논 파병까지 연결되면서 자랑스러운 파병역사를 가지게 됐다.
 
1990년대 중반 이후 국군 장병이 파병된 곳이 연평균 5개국을 넘어설 정도로 분쟁지 평화유지가 우리 군의 중요 임무로 자리매김했다. 세계 각지에서 맡은 바 임무를 성공적으로 완수하고 있는 장병의 모습은 건군 69주년을 맞은 우리 군이 세계 평화에 기여하는 선진 군대로 성장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으로 평가된다.
 
우리 군은 1994년 평시작전통제권을 환수한 이후 전력 증강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최첨단 무기체계를 갖춘 막강한 군대로 눈부신 변화를 이룬 우리 군은 꿈의 구축함으로 불리는 이지스함과 동북아 최강의 F-15K 전투기, 차기전차(K-2) 등 첨단무기를 보유했다.
 
지난 2007년 1월 이지스 구축함인 세종대왕함(KDX-Ⅲ.7천600t급)을 진수함으로써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5번째로 이지스함을 보유한 국가로 기록됐다. 세종대왕함은 국내에서 개발한 함대함 유도탄으로 150km에서 적(敵) 수상함을 공격할 수 있고 5인치 함포로 25km에서 적 함정을 격파할 수 있다.
 
장거리 대잠수함 어뢰와 경어뢰를 탑재, 수십 km 거리의 함정과 잠수함도 공격할 수 있다. 특히 5인치 함포로 120km 떨어진 육상의 적 핵심시설을 공격할 수 있기 때문에 육·해·공군의 통합작전 능력을 획기적으로 끌어올렸다. 함에 장착된 다기능 위상배열 레이더(SPY-1D)는 1천54km 밖의 비행물체 900개까지를 동시에 탐지, 추적하면서 17개를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이 함은 길이 166m, 폭 21m에 최대 30노트(55.5km)의 속도를 낼 수 있다. 함대공·대유도탄방어·함대함 유도탄과 장거리 대잠수함 어뢰, 경어뢰 등 근접방어무기체계인 골키퍼(Goal Keeper)를 장착하고 있다. 대잠수함 및 구조용 헬기 2대가 탑재됐다.
 
아시아에서 가장 큰 수송.상륙함인 독도함(1만8천800t급)도 우리 군의 자랑거리다. 헬기나 수직 이착륙기 20여대를 탑재할 수 있고 상륙작전 때는 헬기 7대와 전차 6대, 상륙돌격장갑차 7대, 트럭 10대, 야포 3문, 고속 상륙정 2척, 상륙군 700명을 태우고 작전을 수행한다.
 
유사시 지상.공중.해상 통합군의 지휘함으로 활용하기 위해 지휘통제장치를 비롯, 미사일 방어용 RAM 대함 유도탄 방어 미사일과 대공포인 골키퍼도 장착되어 있다. 공군은 F-15K와 적의 동굴진지를 격파할 수 있는 JDAM(정밀유도폭탄)을 갖췄다.
 
육군은 차기전차(K-2)와 K-9 자주포 등 막강한 화력을 보유하고 있다. K-2는 깊이 4.1m의 물속에서도 기동할 수 있는 전차다. 포탑까지 물속에 완전히 잠기는 전차는 세계에서 우리나라가 처음 개발했다. 지난 2008년 당시 4억 달러의 기술료를 받고 K-2 전차 기술이 터키에 이전됐다.
 
1999년 생산이 시작된 K-9 자주포는 최대 사거리 40km로 분당 2발을 지속적으로 발사할 수 있으며, 북한의 170mm 자주포를 격파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것으로 평가된다. K-9 자주포와 K-2 전차는 한국이 개발한 세계적인 ‘명품무기’로 꼽힌다. 이와 함께 일제가 남기고 간 38.99식 소총과 M1 소총은 M16과 K-2 소총으로 각각 대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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