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설명검찰이 지난 7일 우리은행 채용비리 의혹과 관련해 우리은행 본점에 대한 압수수색을 실시한 후 압수품이 든 상자를 옮기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금융권이 떠도는 괴소문에 뒤숭숭하다. ‘자리 만들기용 사정국면이 이어지고 있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지난 3월 BNK금융지주를 시작으로 5곳(우리은행 KB NH 하나금융지주 금융감독원)에 대한 검·경 수사가 이어지면서 이 소문이 기정사실처럼 받아지는 분위기다. 일각에서는 연임성공 CEO의 물갈이 의도라는 주장이 제기된다.

금융권 한 관계자는 “비리에 대한 책임을 지고 고위 임원이 용퇴를 결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또 다른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닌가하는 의구심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고 귀띔한다. 수사 대상에 오른 수장 대부분이 전 정권에서 선임된 인물이기 때문이다.

3월 BNK 시작 5곳 검경 수사…‘연임성공 CEO 물갈이 의도’
외부인사 가능성도 배제 못해…“정권 입맛 따라 교체 구태” 우려


금융권에 권력의 칼날을 동원해 금융권 수장을 교체한 뒤 금융을 장악하려는 시나리오가 전개되고 있다는 소문이 퍼지고 있다.

이미 특혜채용과 비자금 조성 등의 의혹으로 최고경영자(CEO)가 직접 수사선상에 오르자 전 정부에서 임명된 금융권 인사를 대거 물갈이하기 위한 정지(整地) 작업이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현재까지도 금융권에는 채용비리, 비자금 조성, 연임 설문조사 조작 혐의 등 은행권 수장들에 대한 전방위적 수사가 진행되고  있다.

줄 잇는 CEO 수사

지난 6일 금융권에 따르면 채용비리로 검찰수사를 받고 있는 이광구 우리은행 행장이 2일 도의적 책임을 지고 전격 사퇴하면서 업계가 큰 충격에 빠졌다.

이 행장은 우리은행의 숙원이던 민영화를 성공시킨 주역으로 평가받던 인물이다. 재임기간동안에도 뚜렷한 실적개선을 견인하는 등 경영능력을 인정받아 올해 초 연임에 성공했다. 그러나 지난해 신입 공채 선발과정에서 특혜채용 의혹이 불거지면서 결국 중도 사퇴했다.

돌연 사퇴한 배경엔 박근혜 정권과의 인연이 한 몫 한 것 아니냐는 주장도 나온다.
이 행장은 2014년 은행장 취임 당시, 박근혜 정부와 가까운 서금회(서강대 출신 금융인 모임)와 관계돼 있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낙하산 인사’라는 비난에 시달린 바 있다.

검찰은 조만간 이 행장에 대한 소환조사를 진행할 것으로 보이며 지난 7일에는 우리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앞서도 지난 3월 BNK금융지주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금융감독원을 포함해 5곳의 금융회사가 검경의 수사를 받고 있다. 올 4월 검찰은 지주사 전환 과정에서 자사주 시세를 조종한 혐의로 성세환 전 BNK금융지주 회장을 구속 기소했다. 박인규 DGB금융 회장 역시 비자금 조성 및 횡령 혐의로 입건돼 두 차례 경찰 조사를 받았다.

9월부턴 채용비리와 연루된 금융사들이 대거 수사 대상에 올랐다. 감사원 감사 결과 신입직원 선발 과정에서 특혜채용이 있었던 것으로 확인된 금감원이 9월 말 압수수색을 당했다. 검찰은 이 과정에서 금감원에 청탁 전화를 했다는 의혹을 받는 김용환 NH농협금융지주 회장의 자택과 사무실을 10월 압수수색했다.

11월 들어서도 사정한파는 이어졌다. 3일 경찰은 서울 여의도 KB국민은행 본점을 압수수색했다. 9월 윤종규 KB금융 회장의 연임 찬반을 묻는 노조 설문에 사측이 개입했다며 노조가 고소했기 때문이다. 

윤 회장은 9월 KB금융 확대지배구조위원회에서 차기 회장 후보자로 선정됐지만 이달 20일로 예정된 임시주주총회를 거쳐야 최종 연임이 확정된다. 만약 주총 이전에 설문 조작 의혹이 사실로 확인될 경우 향후 어려움이 발생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하나금융그룹 역시 노사 갈등이 심화되면서 노심초사하고 있다. 하나금융 노조는 최순실 씨와 친분이 있는 인사를 본부장으로 승진시키는 특혜를 줬다는 이유로 경영진 퇴임을 요구하고 있다. 2일 하나금융 계열사 노조가 공식적으로 최고경영진의 연임을 반대하고 나서면서 긴장감이 더 높아지고 있다.

돌고 돌아 낙하산

이렇다보니 금융권 수장이 연쇄적으로 물갈이될 것이란 주장이 힘을 받고 있다. 수장 임기 만료를 앞둔 곳은 물론 임기가 끝나지 않은 곳도 사정의 칼날을 들이대 사퇴압박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자리를 낙하산 인사가 비집고 들어올 가능성도 제기된다. 

금융권 관계자는 “정권 초반 금융권 수장을 물갈이하는 기존 관행이 되풀이되고 있다”며 “은행장이 경영보다는 정치권 줄 대기에 신경써야하는 상황에서는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BNK금융지주 회장에 과거 문재인 캠프에서 활동해온 김지완 회장이 기용되면서 측근 인사라는 논란을 산 바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이렇게 많은 주요 금융사 CEO들이 동시에 수사 선상에 오른 적은 없었다”며 “임기가 얼마 남지 않은 CEO들이 압박을 받는 분위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과거 정권에서 금융계 수장으로 선임된 많은 금융계 인사들이 이런저런 이유로 이광구 행장의 전철을 밟지 않을까 전전긍긍 하는 분위기다. 최근 인사, 채용비리와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거나 문재인 정부 들어 ‘힘’을 과시하고 있는 금융노조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금융계 수장들이 당장 주 타깃이 될 전망이다.

한편 금융권에서는 우리은행 차기 행장 인선에서 공모자격을 외부로 공개할지를 주목하고 있다. 일단 이번 임원추천위원회에서는 우리은행 최대 주주인 예금보험공사가 참여할 것으로 보인다.

올 초 민영화 후 첫 행장 인선에서는 과점주주 매각 후 경영 자율성을 보장하자는 취지에서 임추위에 예보측 사외이사는 빠졌다. 하지만 이번엔 예보측에서 18% 넘는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만큼 임추위에 들어가야 한다는 입장이다.

예보가 우리은행 임추위에 참여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면서 우리사주조합도 목소리를 높이는 분위기다. 우리은행 노조가 이미 “낙하산 인사는 절대 용납할 수 없다”면서 “내부출신 인사가 돼야한다”는 입장을 밝힌 상태라 노조와의 갈등도 불가피할 전망이다.

우리은행 관계자는 “현재 여러 의견을 조율하는 단계”라며 “임추위 구성은 다음 이사회에서 결정하기로 했고, 개최시기는 아직 미정인 만큼 차기 행장 인선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시기상조”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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