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대웅 기자> photo@ilyoseoul.co.kr
- 지리멸렬했던 보수3당 체제, 바른정당 복귀로 끝나나
- 보수의 새로운 리더십과 노선이 서느냐가 큰 문제
 
2016년 총선에서 국민들은 의외의 선택을 했다. 요동치는 민심의 총합은 당시 야권이었던 민주개혁세력이 분열된 선거 지형에서도 여권을 심판하고, 그 도구로써 민주당과 국민의당을 적절하게 활용하는 결과를 낳았다.
 
새누리당이 국회선진화법 저지선인 180석은 물론 개헌 저지선인 200석을 넘어설 거란 예상은 허망하게 깨졌고 무소속까지 합쳐도 과반을 넘지 못한 가운데 국민의당이 교섭단체 구성 요건인 20석을 한참 넘어 제3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후의 격동하는 정치적 사건들도 결국 이 총선 결과로부터 이끌어졌다.
 
최순실 게이트와 대통령 파면 정국은 새누리당을 분열시켰고 자유한국당과 바른정당을 탄생시켰다. 국민의당 안철수 의원이 대선 정국에서 보수파들의 지지를 얻으면서 보수정당이 사실상 삼분하는 초유의 상황이 왔다. 사실 2016년 총선 결과가 민심의 양당제에 대한 염증을 보여줬다 하더라도 현행 선거제도는 양당제에 유리하다.
 
1) 소선거구제는 양당체제를 낳고, 2) 비례대표제는 다수정당 체제를 낳는다는 ‘뒤베르제의 법칙’은 특히 1)의 영역에선 막강한 것으로 취급된다. 비례대표제를 확대한다 해도 다수정당 체제가 오리라는 확신은 없지만, 비례대표제를 확대하지 않을 경우 양당제의 동력이 훨씬 크다는 것은 확실하다는 것이다.
 
‘뒤베르제의 법칙’?
그러나 현실은...

 
세계적으로도 뒤베르제 법칙의 예외 사례는 특정 지역에서 제3정당이 강세를 보여 자리잡은 정도다. 87년 체제 이후 한국에서 존속한 제3당들도 그래서 보통은 양당이 강세를 보이는 영호남에 포섭되지 않는 충청도 기반의 정당이었다.
 
그런 식의 지역적 기반이 없었던 진보정당계의 경우 여의도 입성과 세 확장에서 한계가 분명했고 지금까지도 그 악전고투가 진행 중이다. 민주당 이외의 선택지를 원했던 호남 지역민의 민심에 힘입어 유지되는 현재의 국민의당도 큰 틀에서 보면 그런 입지를 가지고 있다. 단적으로 말하면 지금의 보수 3당 구조는 그들이 뭘 잘해서 유지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유지되어야 할 이유가 딱히 없는데 유지되는 정국, 한마디로 지리멸렬이다.
 
이 상황이 가장 괴로운 것은 오히려 자유한국당일 것으로 추정된다. 자유한국당의 희망적인 계산 속에서라면, 지금쯤이면 양당구도로 복귀해야 했다. 적어도 지방선거 전에는 완료해야 한다는 생각이 클 것이다.
 
그러나 비록 최근 바른정당에서 대폭 귀순자가 발생하면서 바른정당이 교섭단체 미만 정당으로 대폭 축소되기는 했지만, 상황이 자유한국당에게 그리 녹록지가 않다. 홍준표 세력과 친박 세력의 대립 속에서 바른정당 복당파들이 어떤 선택을 내릴지가 불분명하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이 별다른 긍정적 요인이 없이 악수를 남발하면서도 서로를 지탱하는 모양새인 것도 특이하다. 국민의당의 경우 지방선거까지는 자신들의 지역적 기반인 호남 민심에 기대는 게 상대적으로 나은 선택이었다.
 
비록 호남 지역의 문재인 정부 지지율이 압도적이지만, 그와 별개로 호남인들이 매번 민주당만 기표하는 선거지형에 염증을 느끼고 있음이 지난 몇 년간 드러났고 국민의당이 존속할 만한 지지를 주는 상황은 바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전남지사 출마를 시사한 박지원 의원의 정세 파악이 정확한 것이었다고 할 수 있겠는데, 안철수 의원은 이에 대해 아무 관심이 없는 분위기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합당을 추진하면서 안철수 의원과 호남지역구 의원들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게 됐고 국민의당이 헤매는 계기가 됐다.
 
양당체제 변수는
국회선진화법!

 
문제는 국민의당이 이러면서 바른정당을 도와줬다는 것이다. 안철수 의원의 악수가 없었다면 바른정당은 더욱 신속하게 자유한국당으로 흡수되는 수순이었다. 흡수된 이후의 자유한국당 내부 정치의 복잡다단함은 남아 있더라도 말이다.
 
그런데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흡수통합 논의가 나오니 역설적으로 안철수 의원은 국민의당 내부에서 고립되어 가고 있는데 바른정당의 주가가 상승하는 풍경이 펼쳐졌다. 유승민 의원은 특별히 뭘 잘한 것도 없이 존재감을 표시하게 됐다.
 
이 기묘한 정국을 유지하는 동력 중 하나가 국회선진화법이란 사실을 부인할 수 없다. 국민의당이 존속할 수 있는 큰 이유 중 하나는 한때 한뿌리였던 여당이 그들을 흡수통합하는 데에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국민의당을 접수해봐야 과반이 될 뿐이지만, 국회선진화법 체제에선 150석이 아니라 180석이 더 중요하다.
 
국민의당을 흡수해봤자 정국 운영의 동력이 확실히 생기는 것도 아니고 자유한국당으로의 구심력만 강화될 것이니 애초에 추진을 하지 않는다. 자유한국당은 개헌은 하지 않아도 된다는 사인을 보내는 등 현행 선거제도가 양당제를 추동하는 동력에 기대어 정계개편을 하고 싶어 하는 눈치지만 민주당은 오히려 대통령이 나서서 개헌을 요구하는 식으로 자유한국당을 곤혹스럽게 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이 지리멸렬의 핵심은 포스트 박근혜 시대의 한국 보수정당을 이끌어갈 리더십과 노선의 부재다. 지난 대선에 후보로 출정했던 홍준표·안철수·유승민 삼자 모두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하기에, 문재인 정부의 개별 정책에 불만을 지니는 유권자들도 특정 정당을 향한 지지로 기울어지지 않는다.
 
다만 역사의 무대에서 퇴장하기 싫어 저항하는 친박도 대안이 못 됨은 물론이다. 자유한국당이 문제의 핵심을 인지하지 않고 구도의 재편만으로 양강구도로 복귀하려고 든다면, 이와 같은 지리멸렬이 지방선거까지 유지되는 보수세력으로선 최악의 사태가 오지 않으리라는 법이 없다. 겨울이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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