폐쇄회로(CC)TV 등 감시용 카메라가 범죄나 화재 예방에서 ‘효자 노릇’을 하는 반면 ‘사생활 침해’의 도구로 전락하고 있어 관심이 집중된다. 한 언론 보도에 따르면 국내 수도권에 거주하는 사람은 하루 평균 83.1회나 CCTV에 찍힌다. 아파트 엘리베이터부터 시작해 출퇴근길은 물론 대중교통, 심지어 일부 근무지 내에서도 CCTV를 피할 수 없다. 이동할 때는 9초에 한번 꼴로 찍히는 것으로 조사된 만큼, ‘감시 카메라’는 이미 우리의 일상 깊숙이 자리하고 있는 셈이다.
 
#. 밥을 먹지 않고 시끄럽게 군다는 이유로 두살배기 원생을 폭행한 충북 영동 모 유치원장 수녀 A(44)씨가 경찰에 입건됐다. A씨는 지난 8월 28일 낮 12시 30분경 B군을 들어 복도 바닥에 쓰러뜨리고, 손바닥으로 뺨을 때린 혐의(아동복지법 위반 등)를 받는다. 경찰은 교실 안에 있던 CCTV 저장장치를 떼어내 국립과학수사연구원에 복원을 의뢰했다. 그 결과 A씨가 B군을 폭행하는 장면 등을 추가로 확인했다. 복원된 영상에서는 A씨가 B군을 밀치거나 강제로 주저앉히는 등 하루 24차례나 폭력을 가한 날도 있었다. 경찰은 A씨를 기소의견으로 검찰에 송치했다.
 
#. 지난 2일 경남 창원시 창원터널 앞에서 사고를 낸 5톤 트럭이 사고 전 결함이 있었을 가능성이 터널 내 폐쇄회로(CC)TV를 통해 확인됐다. 경찰이 터널 내 CCTV를 확인한 결과, 터널 안에서 2차로를 주행하던 트럭의 뒷바퀴 부분에서 수초동안 ‘반짝’거리는 것이 보였다. 경찰은 이 불빛을 스파크(불꽃)로 보고 사고 차량의 브레이크 계통에 문제가 있었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 사고 차량은 시속 약 100㎞로 주행 중이었던 것으로 파악된다.
 
위의 사례처럼 CCTV는 사건·사고의 중요한 목격자 역할을 한다. 인건비가 들지 않으며, 사람과 달리 24시간 내내 일 할 수 있다. CCTV가 인간을 대신해 각종 장소에서 감시자의 눈을 밝히고 있는 셈이다.
 
문제는 이런 이점이 악용될 때에도 똑같이 작용한다는 점이다. 최근 회사 또는 점주가 직원을 감시하는 수단으로 CCTV를 이용하는 사례가 늘고 있다. 한 커피 프랜차이즈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던 B씨는 “감시 당하는 느낌이 들어 3주 만에 일을 그만뒀다”며 “업무 시간에 점장에게 전화가 와서 ‘왜 가만히 서 있느냐’ ‘테이블은 왜 안 닦았느냐’ 등의 지적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 같은 사례를 겪은 사람은 A씨뿐만이 아니다. 알바노조 편의점 모임이 지난해 전·현직 편의점 아르바이트 노동자 368명(현직 202명·전직 16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벌인 결과, 아르바이트생 가운데 10명 중 4명(39.1%)가 CCTV로 근무 태도를 감시당하거나 업무지시를 받은 경험이 있다고 답했다.
 
이 때문에 사생활이나 초상권이 침해받는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아지고 있다. 현행법에 따르면 CCTV는 반드시 눈에 띄는 곳에 설치해야 하며 어떤 목적으로 어느 범위까지 찍는지에 대해 안내문으로 밝혀야 한다. 하지만 제대로 지켜지는 곳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에는 직원들 근태를 확인한다는 명분으로 근무지에 CCTV를 설치한 곳도 상당수다. 법적으로는 반드시 ‘노사 합의’를 거쳐야 하지만 아쉬운 말을 하기 어려운 직원들 입장에서는 사실상 무의미한 절차다.
 
사생활은 IP카메라를 통해 더욱 침해받고 있다. IP카메라는 유·무선 인터넷과 연결돼 있어 다른 기기로 영상의 실시간 송출이 가능한 카메라를 말한다.
 
경남경찰청 사이버수사대는 지난 2일 500여 곳에 설치된 IP카메라 2600여대를 해킹해 개인 사생활을 몰래 엿보고,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촬영한 혐의로 이모(29)씨와 전모(36)씨 등 30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경찰 조사 결과 이들은 지난 2016년 1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500여 곳에 설치된 IP 카메라를 12만여 회 해킹해 사생활을 엿본 것으로 밝혀졌다. 이들이 해킹한 IP카메라는 총 2600여 대로 가정집·학원·독서실·식당·사무실 등 다양한 장소에 설치됐다.
 
시민단체의 한 관계자는 “최근 CCTV가 미설치된 사각지대를 포함해 설치 영역을 확대해야 한다는 여론과 사생활 침해를 이유로 감시 카메라를 축소해야 한다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며 “감시용 카메라를 악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기 위한 여러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지난 9일 서울 여의도 이룸센터에서 ‘IP카메라 대책 마련을 위한 전문가 회의’를 주재한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은 모두발언을 통해 “IP카메라 안전 문제는 사물인터넷(IoT) 확산과 산업발전의 선결문제”라며 “생산·유통·이용 등 단계별로 보안성을 강화하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해달라”고 강조했다.
 
유 장관은 “4차 산업혁명 시대의 사이버보안뿐만 아니라 국민 안전을 지킬 수 있도록 정책 대상을 확대해야 한다”면서 “IP카메라를 시작으로 일상생활 안전을 위협할 우려가 있는 사물인터넷 전반의 보안까지 확대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