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출 사기당한 70대 사업가 “발급 신청·위임한 적 없다”

[일요서울 | 오두환 기자] 각종 신분증, 증명서 위·변조 등으로 인한 피해가 꾸준히 발생하고 있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만큼 위·변조 기술이 더욱더 정교해지면서 각종 범죄에 악용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 신분증을 비롯한 각종 증명서 위·변조 문제는 피해자에게 금전적인 피해는 물론 정신적인 피해까지 안겨줄 수 있는 만큼 정부 기관의 철저한 감시·검증 시스템이 마련돼야 한다. 더불어 각종 신분증, 증명서 발급 업무를 담당하는 공무원들도 각별히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구청서 한 달에 발급되는 인감증명서 2만 건
위조 신분증으로 증명서 발급 받아도 ‘공무원 모른다’


2014년 4월 박모씨와 최모씨는 서울 신설동의 한 커피숍에서 공범 2명과 짜고 용인시장 명의의 주민등록증 1매를 위조했다. 

박 씨와 최 씨는 위조한 주민등록증으로 허위 인감증명서를 발급받았다. 이후 이들은 용인시 수지구 소재의 토지를 계약금 5억 원, 잔금 12억 원에 매도한 것처럼 부동산 매매계약서를 꾸며 지방의 한 법무사 사무실에 소유권 이전등기 업무를 의뢰했다. 

범행 사실을 알아채지 못한 법무사 사무실 직원은 같은 해 7월 부동산 소유권이전등기를 끝내고 등기서류 등을 등기소에 비치했다. 

이들은 부동산 매매계약서와 소유권이전등기 등을 근거로 시중은행에서 대출받으려다 덜미가 잡혔다. 결국 이들은 구속됐고 법원으로부터 각각 징역 2년 6월, 징역 1년을 선고받았다. 

위조 신분증, 부정 발급 
증명서 피해 심각


주민등록증, 운전면허증 등 신분증 위조로 인한 사건은 남의 일이 아니다. 출근하다가 학교에 가다가 잃어버린 신분증 등이 각종 사기사건에 연루되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그 심각성을 알지 못한다. 자신이 직접 겪지 못한 일이기 때문이다.

70대 중반의 이모씨는 지방에서 사업을 하고 있다. 부동산 등 다양한 개발 사업에 손을 대 적지 않은 부를 축적했다. 이 씨는 지난 2007년 국방부 소유의 땅을 구매해 개발 사업을 진행하려고 했다. 총 300억이 넘는 매매대금 중 일부를 금융권에서 대출 받아 지불하기로 하고 한 저축은행을 통해 대출을 받았다.

중간 금융 컨설팅 담당자의 일처리가 매끄럽지 않았지만 대금 납부일이 촉박해 서둘러 일 처리를 진행했다. 그런데 사고가 터지고 말았다. 대출 당일 저축은행에 가서 들은 자기자본금 액수가 컨설팅 담당자에게 들었던 액수보다 10억 원 정도 많았던 것이다. 

저축은행 측에서는 부족한 10억여 원에 대해 개인보증을 서면 대출이 가능하다고 해 할 수 없이 이 씨는 다음날 현금 입금 시 근저당 설정을 해제하는 조건으로 개인보증이 아닌 근저당권 및 근보증으로 대출을 받아 토지대금 납부를 완료했다.

문제는 다음 날 이 씨가 10억여 원을 마련해 저축은행에 송금했음에도 불구하고 근저당권 및 근보증 설정을 해제해 주지 않으면서 발생했다.

이 씨는 당시 사건으로 인해 당시 근저당권 및 근보증 설정을 했던 부동산 외에 개인 소유의 다른 토지 그리고 국방부와 매매계약을 체결했던 땅 모두를 잃었다. 물론 대출이자 연체 등의 이유도 있었지만 가장 황당한 사실은 최근 소송으로 인한 재판에 제출된 증거물 중에 이 씨가 발급받지 않았던 인감증명서가 첨부돼 있었다는 점이다.

사인까지 위조해
발급받은 인감증명서


이 씨는 저축은행과의 대출과정에서 인감증명서를 직접 발급받은 적도 위임장을 써 준 적도 없었다. 하지만 소송 과정에서 자신의 인감증명서가 상대 측 증거자료로 법원에 제출된 사실을 확인하고 의아해 했다. 하지만 당시에는 소송에 신경 쓰느라 인감증명발급 건에 대해 경위를 확인하지 못했다. 

그러던 이 씨는 오랜 시간이 지난 2015년 인감증명서가 발급된 것으로 확인된 서울의 한 구청을 방문했다. 인감증명서가 어떻게 발급이 됐는지 경위를 알고 싶었기 때문이다. 이 씨는 구청에서 인감증명 발급내역서와 인감증명발급대장 한 부를 뗐다.     
발급내역서를 살펴보니 2008년 6월 2일 오전 9시 25분에 직접 구청을 방문해 인감증명을 발급 받은 기록이 남아 있었다. 인감증명발급대장 수령인 칸에는 이 씨의 이름으로 사인까지 돼 있었다. 하지만 그 사인은 이 씨의 사인이 아니었다.

누군가 이 씨를 사칭해 구청에 들러 직접 인감증명서를 떼어간 것이었다. 이 씨는 너무나 황당했지만 경위를 알아야 했기에 인감증명발급내역서에 이름이 적혀 있던 당시 발급자를 찾았다. 하지만 담당 공무원은 이미 오래전에 구청을 그만뒀다. 

이 씨는 담당 부서에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당시 담당자가 어디로 갔는지 등의 정보를 요청했지만 개인정보라는 이유로 자세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았고 담당 과장은 이 씨를 기다리게 한 채로 도망을 쳤다.

이 씨에게는 사실을 확인한 뒤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해당 구청에서는 아무런 연락도 없었다. 그 뒤로도 이 씨는 두세 번 더 구청에 들러 사실 확인을 요청했지만 아무런 정보도 얻을 수 없었다.

너무 오랜 시간이 흐른 뒤에 사실 확인에 나선 것은 이 씨의 잘못이다. 하지만 타인의 인감증명서를 아무런 제한없이 발급해 갈 수 있었던 점은 큰 문제다.   

구청 관계자
“소송·이의 제기해야”


기자는 지난 8일 사고가 발생했던 해당 구청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연결된 구청 관계자는 인감증명서 발급 사고가 있었는지조차 알지 못했다. 담당 부서에서 보고를 하지 않으면 알 수 없다는 게 관계자의 답변이었다.

구청 관계자는 “구청에서 한 달에 발급되는 인감증명서 건 수가 약 2만 건이다”라며 “(이 중에 부정 발급이 있는지 여부는) 피해자가 법적 절차에 의해 소송을 걸거나 이의를 제기하기 전에는 구청에서 알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이 씨 사례를 설명하자 구청 관계자는 “담당이 신분증 확인을 조금 소홀히 했을 수도 있고, 아니면 위조한 신분증을 가져왔을 수도 있고, 그것도 아니면 위임장을 가져왔는데 전산상으로 본인 발급으로 (잘못) 나갔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 씨처럼 당시 발급업무를 담당했던 공무원의 퇴직·이직 여부를 묻자 “유선상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개인정보라는 이유였다. 다만 구청 관계자는 “구청 홈페이지에서 직원들의 이름을 검색해 볼 수는 있다”고 부연 설명했다.  

마지막으로 구청 관계자는 이 씨의 안타까운 사연에 대해 “2008년의 경우 주민등록증 (진위 여부는) 확인은 되지만 운전면허증이나 타 기관 신분증은 조회시스템 연동이 안됐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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