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 노선 놓고 곳곳서 충돌…‘끝장토론’으로 결판 낸다

<뉴시스>
[일요서울 | 권녕찬 기자] 안철수 대표와 호남 중진 의원 간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 최근 일주일 동안 이들의 발언을 보면 돌아올 수 없는 강을 건넌 것 마냥 ‘말폭탄’을 주고받았다.

창당 때부터 정체성 논란을 빚었던 국민의당은 지난 대선, 8월 전당대회, 최근엔 바른정당 통합 문제를 거치며 ‘당 노선’ 문제를 두고 사사건건 부딪쳤다. 당의 존재 기반인 정체성 문제를 매듭짓지 않는다면 또다시 같은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점에서 결국 분당 수순으로 가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安 ‘적폐 청산=복수’ 발언 시점 갈등 폭발…쌍방 말폭탄 ‘살벌’
“딱 초딩수준…정치적으로 종친 사람 vs 비수 꽂는 말에 기절할 지경”
대선 패배·전당대회·바른정당 통합 거치며 ‘정체성’ 논란 거듭
중도 보수 ‘우클릭’ 安, 정체성 안 맞다는 反安…결국 갈라서나

 
이번 내홍은 안철수 대표의 ‘적폐 청산=정치 보복’ 발언으로 그 서막이 올랐다. 안 대표는 이달 초 독일·이스라엘 해외 출장을 간 자리에서 현 정부의 적폐 청산 기조에 대해 ‘복수’라는 표현을 썼다. 적폐청산에 관한 한 기존 보수 야당과 같은 인식을 드러냈다는 거센 비난에 휩싸였다.
 
호남을 기반으로 하는 정당에서 이 같은 발언은 당장 호남 의원들을 자극했다. 전북 출신의 3선 유성엽 의원은 당 의원과 지역위원장들이 참여하는 바이버 메신저방에 ‘중대한 결단’을 거론하며 안 대표를 비판했다. 유 의원은 ▲바른정당과의 통합 논란 ▲지역위원장 일괄사퇴 분란 등도 거론하며 안 대표의 리더십을 강력 비판했다.
 
이에 안 대표는 “오래 참고 있던 몇 마디를 하겠다”며 페이스북에 글을 올렸는데, 유 의원을 겨냥해 사실상 ‘당을 떠나라’는 식의 발언으로 당 내홍이 확전 양상으로 치달았다.
 
이후 당내에서는 “망언이다. 딱 초딩(초등학교) 수준(유성엽 의원)”, “선을 넘었다. 정치적으로 종친 사람(이상돈 의원)”, “(바른정당 통합 추진에) 저의가 있다. 닭 쫓던 개 신세 됐다(박지원 전 대표)” 등 안 대표를 맹비난하는 발언들과, “비수를 꽂은 말에 기절할 지경(박주원 최고위원)”, “당 파괴 자제해 달라(최명길 의원)” 등 안 대표를 두둔하는 발언이 충돌하며 독한 설전을 주고받았다.
 
감정의 골을 드러낸 국민의당은 이번 일을 계기로 심리적 분당 사태를 맞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무엇보다 안 대표의 리더십이 타격을 받았다는 지적이다. 정동영 의원은 “당 대표가 의원에게 ‘나가라’고 말하는 게 온당한 리더십인지 의문”이라고 했으며, 이상돈 의원은 라디오 인터뷰에서 “안 대표와 최고위원회의의 리더십은 상당히 추락했다”고 말했다.
 
반면 친안(親安)계는 안 대표를 향한 비판이 지나치다면서 ‘배은망덕’이라는 입장이다. 국민의당 한 당직자는 “(지난해 4·13총선 때) 난파선에 있던 사람을 살려줬더니 이제 와서…”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당 창당부터
‘어색한 결합’

 
이 같은 분란은 애초부터 예견된 것이라는 진단이 나온다. 국민의당은 당 창당부터 ‘어색한 결합’이라는 정치권 안팎의 비판이 있었다. ‘친문 패권주의·반문재인’을 기치로 결합해 지난 총선을 불과 3개월 앞두고 창당했다. 부산 출신으로 중도 성향인 안 대표와 호남 의원들 간 급조된 정당이라는 지적이 제기됐다.
 
총선에서 호남 유권자는 그간 지역에서 ‘일당 독재’ 모습을 보여준 민주당에 회초리를 들었지만, 국정농단 사태를 거치며 ‘개혁 노선’을 명확히 한 문재인-민주당에 압도적 대선 승리를 안겨줬다. 이후 안 대표 측과 호남 중진들은 대선 패배에 대한 책임 문제, 8·27 전당대회,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에서 번번이 부딪쳤다.
 
안 대표는 지난 9일 당 의원들을 두루 접촉하며 당 내홍 수습에 나섰다.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에 대해서 “정체성을 해치는 통합은 없다”는 입장을 피력했다. 이날 오찬 자리 이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햇볕정책과 호남이 자신이 추구하는 정체성이냐’는 질문에 “저희들이 가고 있는 중도개혁의 길, 큰 범위 내에 다 포함이 된다”고 했다.
 
하지만 이미 당 노선을 두고 수차례 충돌한 상황에서 이 같은 발언으로 ‘화학적 결합’은 쉽지 않아 보인다. 안 대표는 논란을 일으킨 지난 페이스북 글에서 “응당 가야할 길을 비정상으로 인식한다면, 끝까지 같이 못할 분이 있더라도 가겠다”는 입장을 밝힌 바 있다.
 
안 대표가 지난 8월 당권을 잡은 후 줄곧 ‘중도보수’로의 우클릭 행보를 보이고 있는 점을 비춰 볼 때 바른정당과의 연대·통합을 추진하는 상황에서 호남 중진들과 ‘극적 합의’를 이룰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은 국민의당 전당대회 직후 손학규 전 경기지사가 안 대표와 교감 후 본인을 찾아왔다고 밝힌 바 있다. 오랜 기간 중도 보수 세력화에 공을 들여왔음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비록 바른정당과의 성급한 통합 추진으로 당내 반발에 부딪히긴 했으나 안 대표의 우클릭 기조는 지속될 전망이어서 호남 중진들을 중심으로 하는 반안(反安)계와 결국 갈라서지 않겠냐는 관측이 나온다.
 
두 세력은 물과 기름?
‘정체성’ 난상토론서 가닥

 
당장 반안계가 탈당하기는 쉽지 않다. 바른정당 분당이 현실화된 것은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위기의식을 느낀 보수층의 ‘대통합 요구’라는 명분이 있었지만 진보 진영에선 그럴 만한 명분이 부족한 상황이다.
 
하지만 통합 재추진과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호남 여론이 맞물릴 경우 분당이 앞당겨질 수도 있다. 친안계를 중심으로 바른정당과의 통합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발언이 나오고 있다.
 
안 대표 비서실장인 송기석 의원은 지난 9일 CBS 라디오에 출연해 “여전히 (바른정당과의 통합)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말하면서, 기존 ‘12월 통합 선언’ 주장이 “유효하다”고 확인하며 ‘안 대표도 공감하냐’는 질문에 “그렇다”고 답했다. 바른정당 잔류파도 이에 화답하는 분위기다.
 
이럴 경우 호남계에서 다시 반발할 가능성이 다분하다. 만약 바른정당 잔류파에서 자유한국당으로의 추가 탈당이 나올 경우 한국당이 원내 제1당으로 올라갈 수 있다는 점에서 민주당과 국민의당 간 통합 요구가 불거지면 호남계로서는 탄력을 받을 수 있다.
 
게다가 이대로 간다면 국민의당은 지방선거에서 필패가 예상되는 만큼 그 전에 당에서 나와야 한다는 인식도 탈당 움직임을 부추기는 요소다. 친안계로 분류되는 국민의당 당직자는 “그냥 (이대로) 가선 안 된다. 죽든 살든 결단을 내려야 한다”며 “(양 측이 서로) 임계점에 다다르고 있다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일각에서는 친안계와 반안계가 분당은 공멸이라는 인식을 함께하면서 결국에는 타협점을 찾지 않겠느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를 위해 국민의당은 오는 21일 ‘끝장토론’을 벌여 바른정당과의 통합 문제를 매듭짓기로 했다. 이날 토론에서 당 노선에 대한 가닥이 잡힐 것으로 보인다.
 
당내에선 바른정당의 추가 탈당을 점치며 결국 국민의당과의 연대·통합 문제도 흐지부지될 것이라는 주장과 바른정당 잔여 의원들이 국민의당과의 통합 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어 결국 통합을 택할 것이라는 주장이 대립하고 있어 토론에서도 격렬한 논쟁이 오갈 것으로 보인다.
 
송기석 의원은 지난 9일 광주CBS 매거진에 출연해 이 같이 밝히면서, “일단 선거 연대 여부에 대해 논의하고, 더 나아가 통합에 대해서도 집중 토론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이어 “바른정당이 국민의당과 함께하고 싶다는 의사가 있더라도, 우리 당 대부분 의원들이 ‘당 정체성에 맞지 않다’, ‘외연 확장에 도움이 안된다’고 최종 결론이 나오면 (통합은) 어려운 것 아니겠느냐”고 했다.
 
이어 ‘끝장토론에서 바른정당과는 안 된다고 결론 나면 안철수 대표도 통합 논의를 중단할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그렇죠”라고 밝혔다.
 
한편 바른정당 탈당파 대변인을 지낸 황영철 자유한국당 의원은 10일 YTN 라디오에 나와, 바른정당 의원들의 추가 탈당 및 자유한국당 복당 가능성에 대해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간의 통합 논의 과정에서 일부가 갈려서 나올 수 있을 것 같다”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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